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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감정을 기록하는 사람

감정은 쓰면 가벼워진다.

by 수요일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별것 아닌 말 한마디에 기분이 곤두박질치고, 마음 한구석이 쿡 하고 아팠지만,
왜 그런지조차 설명할 수 없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닌지,
지나치게 감정적인 사람은 아닌지 스스로를 의심하곤 했다.
심지어 그런 내 모습이 못마땅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감정들은 나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신호였다.
마치 작은 상처를 놓치지 않으려는 나의 방식처럼,
혹은 위험을 감지하고 잠시 멈춰 서게 만드는 경고등처럼 말이다.


그런 감정들을 무작정 다그치기보다는, 조금 더 천천히 들여다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듯.
“왜 울어?” 하고 다그치기보다, 옆에 조용히 앉아
“그래서 넌 왜 그렇게 느꼈던 거야?” 하고 묻는 것처럼.


그날부터 나는 하루의 끝에 감정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주 간단하게.


‘오늘 나를 기쁘게 한 한 가지.’
‘오늘 나를 불편하게 만든 한 가지.’


놀랍게도, 이 작은 습관은 나에게 큰 변화를 가져왔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쁨은 흐릿한 기억이 되고,

불편함은 이유 모를 덩어리가 되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런데 기록하는 순간, 감정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말투에 유독 약하구나.’
‘누군가의 무관심보다 기대를 더 무겁게 느끼는구나.’
이런 작은 깨달음들이 내 마음을 조금씩 더 이해하게 해주었다.


우리는 회의록, 일정표, 할 일 목록처럼 일을 기록하는 데는 참 익숙하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내 마음은 늘 뒷전이었다.
감정을 적어두지 않으면, 그날의 ‘나’는 온전히 사라져버린다는 걸 깨달았다.


어딘가 서운했던 말, 묵직했던 침묵, 기분 좋았던 햇살,
불안했지만 잘 견뎌냈던 나.
그 모든 것을 스쳐 보내지 않고 문장으로 붙잡아 두는 일.


그건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잘 쓰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괜찮아, 너 오늘 잘 버텼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주기 위한, 가장 따뜻한 기록이었다.


감정을 기록한다는 건 나 자신을 조금 더 존중하겠다는 조용한 다짐이고,
지나간 하루를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마음이 소란스러운 날에는 일보다 먼저 감정을 적어보자.
기분이 왜 그런지 모를 때는 그 ‘모름’마저도 솔직하게 써보자.
감정은 적는 순간, 비로소 선명해진다.


감정은 기록하지 않으면 흐려지고,
적어두면 나를 위한 가장 든든한 내 편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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