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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요일 Apr 20. 2020

그럼 나는 홍시랑 살겠네.

김설 원 님의 [내게는 홍시뿐이야]를 읽고

김 설원님의 장편소설 [내게는 홍시뿐이야] 제목을 보면서 제목 속의 "홍시"가 뭘까? 하는 궁금증을 우선 만난다.  그리고 책을 읽어가며 궁금하던 그 "홍시"를 알게 된다. 


우선 이 책은 제12회 창비 장편소설상 ( 창비 장편소설상은 참신한 상상력과 힘찬 서사를 발굴해 한국 소설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창비가 제정한 상이다.) 수상작품이다. 첫 장을 열면서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소설 속에 나를 데리고 가는 느낌으로 공감을 받으며 읽게 되는 마력이 있다. 여리지만 당찬 주인공과 주인공이 맞선 현실을 보면서 어딘가 나와 많이 다를 수도 혹은 비슷할 수도 있기에 끝까지 그녀를 향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책의 내용은 간단하게 요약하면,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고등학교 자퇴 주인공 아란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부모님은 자식을 늘 보살피고 캐어해야 한다는 상식을 넘어 이 소설에서는 부모님들이 또는 보호자가 자식을 또는 보호해야 하는 대상을 매몰차게 현실로 내보낸다. 스스로 독채의 집도 구하고 일자리도 구하면서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런 힘들고 벅찬 하루하루 속에서도 주인공은 홍시를 사고 홍시를 가장 좋아하던 사람을 계속 그리워한다. 아란이 스스로 얻고 살아가는 집, 그러나 벽도 없는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단잠을 자는 곳. 아란의 주위에 만나고 대화하면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아란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세상 살아가는 그런 맛과 내음이 나서 좋다. 


특별히 [내게는 홍시뿐이야]의 소설에서는 한 대상을 바라보는 아란의 독특한 시선을 문장으로 표현한 것들이 책을 읽는 재미와 속도를 내게 한다는 것이 가장 크다. 이러한 표현들이 아란의 시선을 따라 진행하는 내용 속에서 툭툭 나오는 데, 작가의 상상력에 나도 모르게 빠져든다.


모든 문장을 다 읽도록 이미지화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뭔가 너무 아쉽다.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자에게만이 주고 싶은 상 같은 것이라고 해두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만 그 부분을 그대로 필사해본다. 우리도 사실은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본 적이 있을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다는 것을 몰랐을 뿐... 



 나는 평소 휴대전화의 '연락처'를 정원이라고 생각했다. 맨드라미, 제라늄, 채송화 등이 피어 있는 아기자기한 정원. 휴대전화 연락처에 새로 저장되는 번호는 씨앗이다. 그 씨앗과 자주 연락하면 탐스럽게 꽃이 피고 그 반대라면 움튼 싹이 자라다 만다. 나의 정원에는 만개한 꽃보다 누렇게 뜬 싹이 더 많았다. 

책을 읽다 문득 내 핸드폰의 연락처를 찾아본다. 나의 정원은 아란의 정원과 다른가? 같은가? 


매일 만나는 대중교통의 '종점'을 나는 어떻게 바라보고 살고 있는지 질문을 주는 대목이다. 이 문장도 한참 되뇌며 읽고 다시 읽게 한다. 본 책에서는 흘러가는 듯한 아란의 하루하루 이야기 속에서 이런 보석 같은 문장을 만나게 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돌아보게 하고 질문을 던지게 하는 매력이 넘친다. 




'종점' 은 나에게 상반된 감정을 갖게 한다. 일을 마치고 어두컴컴한 종점에서 내리면 불쾌한 긴장감이 나를 사로잡고 , 아침에 일터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르면 포만감 비슷한 감정이 발끝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온다. 


나도 한 때는 이렇게 회사를 다녔던 초기 사회생활을 생각해본다. 아침엔 일할 곳을 나간다는 희망에 부풀어 종점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저녁엔 녹초가 되어 돌아오는 버스 마지막 종점에서 내리면 하루가 또 이렇게 갔구나 하는 허전함이 기다리던 그때를 기억나게 한다. 



또 오래되니까 살갗이 터진 것처럼 문드러졌다. 홍시를 하나씩 하나씩 방바닥에 내놓고 다섯 개씩 줄을 맞춘다. 홍시는 총 스물일곱 개다. ~ 중략 ~ 백개를 채워볼까. 이백 개도 좋지. 그럼 나는 홍시랑 살겠네. 홍시라도 괜찮아. 내게는 홍시뿐이야 






홍시를 그리워하고 그리워하는 아란의 생각 대목이자 이 책의 제목 [ 내게는 홍시뿐이야]가 나오는 이 문장에서 눈물이 난다. 이제 몇 장 남지 않았는데 한참을 책을 뒤집어 놓았다가 다시 펴 든다. 


주인공 아란이 행복하기를 소망한다. 적어도 5000원어치의 홍시를 살 수 있고, 맘 놓고 이백 개 넘게 모아둘 수 있는 집이 있기를.. 그리고 함께 이 홍시를 가장 맛나게 먹어줄 한 사람을 꼭 다시 만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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