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비로소 알아가는 것들 [10]
동물원의 [혜화동] 노래를 선택한다.
오늘은 잊고 지내던 /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 /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 어릴 적 함께 뛰놀던 / 골목길에서 만나자 하네 / 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 찾아가는 그 길 /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 잊고 살아가는지
주위 TV 프로그램에서 [도전] 하는 우렁찬 연예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게임 룰이 준비가 된 사람은 먼저 [도전]을 외쳐야 하는가 보다. 노래와 오버랩이 되며, [도전]이라고 외치고 시작했던 옛날 생각이 짤막 짤막 떠오른다.
30번 쌩쌩이 도전의 의미란?
초등학교 5학년 - 내 시절은 국민학교라 칭했지만 - 체육시간, 쌩쌩이 줄넘기 30번이 시험이었다.
준비가 된 사람부터 선생님께 도전을 외치고 시작한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반드시 30개를 해야 한다는 강한 목표의 도전을 외치고 시작을 한다. 20, 21, 22... 소리 내던 22라는 숫자에서 한 발이 걸렸다. 체육점수를 망쳤다며 대성통곡하고 울었던 기억이 스쳐간다.
소리 내어 밖으로 도전을 외치지는 않았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 대회, 글씨 잘 쓰기 대회 - 경필 대회라고 함 -, 독후감 잘 쓰기 대회 등 모두 참여하면서 반드시 1등 상을 타겠다는 목표로 늘 도전을 외쳤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 도전은 무조건 최고 목표를 반드시 이루어야 하고, 가장 좋은 일등상을 타기 위한 다짐의 의미였다. 그 시절, 30번 쌩쌩이 도전이 왜 그렇게 중요했던 걸까? 가장 좋은 일등상을 타면 뭐가 정말 좋았던 걸까?
단 하나의 목표! "대학 합격 도전"의 의미란?
중, 고등학교의 도전은 대한민국 학생이라면 대부분 다 동일한 대상의 목표를 향하지 않았을까?
<대학 합격>, 바로 이 도전을 위하여 그 좋은 학창 시절을 학교 - 집 - 학원만을 쳇바퀴 돌듯이 돌며 지냈다. 같은 반 친구가 전학을 갔는데 그 친구가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 다른 곳에서 전학을 왔던 친구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녀의 얼굴도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다.
꽤 공부를 잘하던 모범생 친구가 천식이 심해서 학교를 나오지 않는다던 소문도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뿐 더 이상 신경 쓰지 못했다.
그 시절 내 주위에는 많은 변화들이 있었을 텐데,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낙엽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는다는 사춘기 소녀 시절! 새하얀 첫눈이 내리고, 후리지아 노란색 봄꽃이 피고, 너무나도 높은 가을 하늘이 눈앞에 펼쳐져도 그런 변화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오로지 도전만을 외치며 대학 합격이라는 결과만을 쫓아가야 했고, 그 결과 도전의 끝은 1 지망을 포기하고 2 지망을 선택하게 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희망하던 목표가 아녔기에 좌절했고 인생을 다 산 것처럼 하루 종일 방구석에서 나오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만약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진정 내가 잃은 것은 희망하던 대학 합격의 결과뿐이었을까? 나는 그 시절 더 중요한 것들을 놓쳐버린 것은 아닐까? 놓친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도전만이 최선의 방법'의 의미란?
사회생활을 하면서 크고 작은 다양한 도전의 외침들이 기회를 주기도 하고, 기회를 뺏어가기도 한다 직장 내 조직 속에서 좀 더 올라가려면, 좀 더 인정받으려면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만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게도 한다.
20년 IT 관련 종사자로서 이 업계에서 매일 똑같은 업무만 하는 것은 퇴보하는 결과를 낳는 것처럼 보였다.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자세로 새로운 콘텐츠, 상품 그리고 프로세스를 창조해 내는 것만이 인정받고 안정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라고 세뇌시켰다.
이런 나의 스타일 때문이었을까? 나는 늘 회사의 신사업에 배정되었다.
신사업은 도전하는 자세에서 모든 업무가 시작된다. 한 번도 시행하지 않았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일을 하고,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콘텐츠를 만드는 작업을 한다. 그 도전의 결과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바로 실패한 도전 리스트에 올라간다. 실패의 경험이 노하우로 쌓아지기도 전, 또 다른 결과의 목표를 세우고 다시 도전을 하며 달려가고 있던 내 하루하루가 갑자기 스쳐 지나간다.
회사는 24시간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라며, 그래서 더없이 편하고 더없이 좋아야 한다고 그렇게 말했던 초심은 사라져 갔다. 어느새 나는 [도전]이라는 사슬에 스스로를 꽁꽁 묶고 있었다. 그곳은 떨어지는 절벽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다리는 떨어지면 안 될 것처럼 늘 긴장하고 늘 조바심 내며 불안하게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자세만이 최선의 방법, 최고의 결과를 제공한다"
20년간 스스로가 정의한 도전의 의미는 물론 많은 것들을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러한 결과들에 휩싸여 정작 나에게서 많은 것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절대로 알지 못했다.
[도전]의 해석이 달라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도전했던 내 모습들을 기억나는 대로 써보면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반백년 나와 함께 했던 [도전]은 언제나 결과에 충실하였고, 목표를 반드시 달성해야만 하는 그런 놈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 다이어리에는 단지 성공과 실패라는 두 단어만 남아 있었다. 결과가 좋으면 그 도전을 성공했다고 말했고, 결과가 나쁘면 이번 도전은 실패했다고 써두었던 것이다. 그 도전을 위해 함께 했던 사람들의 이름, 공간들의 모습, 그리고 그 웃고 울었던 수많은 시간들은 어디에도 적어두지 않았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에 후회가 된다.
나는 지금도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고, 새로운 도전을 늘 고민한다.
창조적인 콘텐츠도 기획하고 싶고, 가장 효과적인 한국어 학습 콘텐츠도 만들고 싶다.
가장 많은 책을 읽은 사람도 되고 싶고, 좋은 글을 쓰는 사람도 되고 싶고, 나만의 커피 메뉴도 만들고 싶다.
이제껏 나에게 [도전]은 타인에게 인정받고, 타인보다 높은 곳으로 가려는 보여주기 결과를 위한 것이었다.
지금부터는 그 도전의 의미는 버리기로 한다. 결과만을 바라보고 뛰었던 내 모습은 잊고자 한다. 결과와 목표에만 충실했던 도전의 의미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나만의 [도전]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었다.
끝없이 샘솟는 도전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요즘은 매일매일 다이어리에 빽빽이 무엇인가를 적고 있다. 도전을 위해 함께 해주는 사람들의 표정, 함께 한 공간들의 사진, 그리고 그 날의 날씨까지... 적어본다.
10년 후, 성공과 실패의 결과만을 써두었던 지금의 것과는 다른 나의 다이어리를 기대해 본다.
내가 살아온 하루하루를 모두 간직하고 있은 그런 소중한 나만의 보물이 되어 있기를 [도전] 하고 맘속으로 소리 내본다.
" 순간순간 함께 하는 그 모든 과정, 그것이 바로 내 도전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