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비로소 알아가는 것들 [11]
요즘 많이 듣는 노래를 오늘도 듣는다. 펭수 -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 지운 줄 알았어 / 너의 기억들을 / 친구들 함께 모여 요구르트 마신 밤/ 네 생각에 난 힘들곤 해 / 그런 채 살았어 / 늘 혼자였쟎아 / 한때는 널 구원이라 믿었었어 / 멀어지기 전엔 / 그것만 기억해주겠니 /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2020년 5월 아침 아파트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여름을 시작하는 이번해 5월은 참으로 힘들게 그리고 진심으로 반갑게 다가온다. 어렵고 힘들게 다가와서인지, 5월 아침 공기가 눈물 나게 반갑다.
오래간만에 혼자 중얼거리게 한다. " 행복이 뭐 별거인가. 이게 행복이지 "
5월의 행복한 아침 공기 냄새를 맡으며,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20여 년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맡았던 공간의 냄새 기억이 스쳐간다. 이 시간, 이 계절이면 늘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커피 한잔 잊지 않고 마시면서 아침을 시작했던 그 공간, 내가 일했던 사무실.
세상 누구보다 출근 일찍 하기를 좋아했던 나! 상을 받는 일도 아닌데 정말 일찍 간다. 커피 한잔 사고, 청소하는 아주머니 아침 인사하고, 내 자리 가방을 던진다. 창을 열고 그때도 오늘처럼 이 아침의 공기 내음을 맡았다. 컴퓨터 켜고, 흐트러진 서류 정리하고, 모니터의 메일과 수많은 쪽지 확인하다 보면,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아침에 산 모닝커피는 어느새 식었고, 원샷을 한다.
어디선가 매일 듣는 반가운 소리들이 들린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 헉헉헉 계단으로 올라와서 힘든 숨소리, 윙윙윙 출근을 위하여 컴퓨터 키는 소리, "안녕하세요", " 00님 봤다", "엘리베이터 놓쳤어" "왜 먼저 갔어" 서로서로 주고받는 아침인사 소리들. 먼저 와서 앉아 있던 책상에서 나는 늘 미소 지으면서 이 소리들을 듣는다.
오늘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그 소리들이 사무실에 쌓여간다.
동료들이 모이던 그 아침 사무실 공기 냄새와 오늘 맡은 5월의 행복한 아침 공기 냄새가 똑같다는 것을 발견한다.
사무실 그 공간 속, 내가 행복한 이유 - 동료
회사라는 조직이 많은 업무와 다양한 사람 관계로 피곤하고 힘들게 하는 생활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나의 아버지가 다니셨던 회사생활도 그랬을 것이고, 내가 다녔던 회사생활도 물론 그랬다. 지금도 변함없이 회사는 그런 라이프스타일로 계속 굴러가고 계속 움직이고 있지 않을까?
아침 행복한 5월의 공기 내음 속에 묻어 날아온 그 시절 동료들이 모여 있던 사무실의 소리들과 냄새!
왜 그렇게 사무실 그 공간을 좋아했었는지 무심코 알게 해 준다.
내가 퇴사하면, 그들과 만나는 일이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그들과 다시 함께 일을 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매일 만나고, 매일 함께 하다 보니 생각조차 못했던 사실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러나 미리 알았다 한들 뭐 우리들이 달라졌을까? 아마도 변함없이 그 모습 그대로 우리는 일했을 것이다.
2020년 5월의 또 다른 아침, 베란다 창문을 연다.
코로나 19를 잘 버텨내고 맞이하는 올해 5월의 여름 아침 공기가 눈물 나게 반갑다. 20년 동안의 회사생활을 잘 버텨내고 맞이한 동료들이 모여있던 사무실 그 공간의 내음이 함께 묻어 있어 더욱 정겹다.
오늘도 혼자 중얼거리게 한다.
" 그때도, 지금도 행복한 이유는 늘 가까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