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비로소 알아가는 것들 [8]
글쓰기 전 갑자기 듣고 싶어 찾은 음악 :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 장범준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 / 스쳐 지나간 건가 뒤돌아보지만 그냥 사람들만 보이는 거야/다와 가는 집 근처에서 괜히 핸드폰만 만지는 거야 / 한번 연락해 볼까 용기 내 보지만 그냥 내 마음만 아쉬운 거야
2000년 IT 벤처회사들은 야근이 일상이다. 사이트 오픈을 위해서 웹기획자를 중심으로 디자이너와 개발자는 늘 밤을 새웠고, 새벽을 맞이하며 테스트를 하고 오픈을 한다. 왜 그렇게 해야만 했냐고 지금의 동일업종 분들이 물어본다면..... "글쎼요, 그땐 그렇게 했답니다."라고 밖에 해줄 답이 없다.
생각해보면 누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한 생활은 절대 아니다.
스스로 가지고 있는 스타일 탓, 진행하는 업무 성격 탓과 더불어 [나는 즐기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매일매일 업무와 일 외에 다른 것은 일절 돌아보지 않았다.
개인적인 시간을 별도로 구분 없는 밤샘이 일상으로 적응된 회사생활에서 세월은 흘러 흘러 [52시간 근무제 도입]까지... 지금은 워라벨을 중요시하며, 개인적인 행복을 중시하는 시대의 흐름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 업체의 커피 TV 광고 속 퇴근 후 달라진 직장 풍속도를 보여주는 내용을 보면서 스스로 나에게 질문을 해보곤 했다. 퇴근 후 나만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무엇입니까?
매해, 매번 스스로에게 해보는 질문이지만 할 때마다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이 없다. 어떤 단어도 떠오르지 않고 어떤 활동도 생각나지 않는다. 일 말고 피곤하여 틈만 생기면 눈 감는 버릇 말고, 나에게 취미가 있었던가?
함께 하는 동료가 인스타에 올린 꽃꽂이 활동 사진을 보면서, 매주 산 정상에서 찍어 올린 사진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래 이런 거 말이야. 자는 것 말고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이런 활동이 난 뭐가 있을까?'
사진 속 동료들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던 기억이 항상 머릿속에 맴돌았다.
퇴사 다음날부터 나는 정말로 완벽한 [시간 부자]가 되었다.
퇴사란 20년 동안 하루 24시간의 80% 이상을 차지했던 나의 회사생활을 완벽하게 생활 속에서 사라지게 한다.
갑자기 많아진 시간의 자유로움은 긴장감과 부담감도 준다.
그러나 직장으로의 이직을 고민하지 않는 나에게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이제부터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까?' 하는 고민을 깊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처음으로 가져다주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는 절대 찾아내지 못했던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뭐예요?"라는 답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나에게 처음으로 많은 시간이 주어지고, 여유감이 돌자 주위를 돌아보게 된다.
집안 여기저기 마치 도서관처럼 그득그득 꽂혀 있는 다양한 장르의 많은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월급 받는 날, 나를 위한 선물을 한다며 왕창 왕창 구매했던 나의 소중한 책들. 스트레스받고 눈물 닦으며 책방에 가서 골랐던 제목 특별한 책들, 어떻게 이런 글을? 어떻게 이런 문장을? 감탄하며 바로 지갑을 열게 한 책들. 존경하는 작가님의 책 시리즈는 이가 빠지면 안 된다며 절판돼서 없는 책은 중고라도 구매해서 완벽한 시리즈로 소유했던 책들.
온라인 서점 한 사이트의 VIP를 한 번도 뺏기지 않고 10년 이상 유지해온 결과물들.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님들의 시리즈 책들, 주간 베스트 리스트에 있는 모든 책들, 주제별로 구매한 책들, 커피 관련 책들, 카페 관련 책들, 우리나라 & 세계 곳곳의 책방 시리즈들...
'모두 몇 권이나 될까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내 눈에 너무나도 나의 소중한 책들 제목 하나하나가 들어온다.
20년 동안 매월, 책 구매라는 것을 해온 내 행동 속에 나도 몰랐던 간절한 바람이 함께 늘 있었나 보다. 그 간절함을 나는 이제야 알아보기 시작한다.
책 읽는 것 그리고 나만의 스토리를 쌓아 보는 것!
정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좋아하는 일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지속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알아가고 있다.
좋은 스토리가 곧 좋은 콘텐츠다.
나만의 지금까지의 경험과 소중한 이 많은 보물 같은 책들 속에서 떠오른 생각들이 나만의 스토리로 차곡차곡 만들어져 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이 간절한 바람을 지속해보고 싶다.
누군가가 "계속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라고 질문하면, 지금 나는 - '어떻게'는 아직 모르지만- 적어도 "네"라고 답할 수 있다.
오늘도 나는 이 간절함을 위한 '지속'을 위하여 계속 읽고, 인내심 있게 뭔가 쓰고 있다.
그 마음의 강함은... 내 안에 천성적으로 갖춰진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획득한 것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