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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나만의 일정표작성 노하우 버리기

퇴사 후 비로소 알아가는 것들 [7]

by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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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간 풍경 /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간 풍경 /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간 풍경 /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가장 잘한다고 믿었던 것이 있다.

업무계획을 잘 세우고, 우선순위의 중요도를 잘 결정하여 그에 따른 업무 리스트를 만들고 실천하는 것.

사이트 기획(PM)이라는 업무를 하면서 일정표(WBS) 만들기, 그 일정에 따라 오픈날을 맞추는 업무를 가장 잘한다며 자신감에 불타올라 일했던 기억이 있다.

사업부를 맡으면서 1년, 3년, 5년 사업계획표 문서를 작성하고, 계획한 목표 달성을 위한 월 단위 일정표, 주 단위 업무 표를 매일매일 리스트로 만들고, 확인하면서 일에 몰두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리스트 한 줄 한 줄을 체크하고, 완료한 리스트를 지워가면서 스스로 자랑스럽게 잘했다며 칭찬해주곤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매해 매일 쓰고 또 지워간 리스트가 가득한 몇 권의 다이어리들을 한 장 한 장 읽어본다.

눈뜨고 일어나서 다시 잠들 때까지, 하루 시간 분배는 회사일과 업무 다시 회사일과 업무로 가득하다. 그 자체는 지금도 다시 읽어보고 생각해도 절대 잘못된 부분이 없다. 효율적인 업무내용에 따른 시간 분배였고, 합리적인 우선순위였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도 가장 잘했다고 생각한 그 하루하루의 일정표, 매해 작성한 사업계획표에 최대 오류가 있다는 것을 퇴사 후, 발견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하루 계획을 세우는 첫 번째 단계에서 나는 시간을 반드시 3그룹으로 구분했어야 했다.

나를 위한 시간, 가족을 위한 시간, 직장을 위한 시간..... 각각의 시간을 기준하여 그 안에서 나를 위한, 가족을 위한 일정을 계획하고, 그 일정을 소모했어야 했다.

주체가 다르게 주어진 시간의 일정 비율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분명 달라졌을 것이고, 예측하지 못한 인생 사건이 일어날 때는 계획과 어긋나는 변화도 겪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 속에서 진정 나에게 소중한 것들이 무엇이지 깨닫고, 그 소중한 것들을 위해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더욱 보람차게 보내려고 새로운 일들을 계획하며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회사를 다니는 동안, 단 한 번도 변화하는 새로운 시간을 계획하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자신만만하고 자랑하던 완벽하게 계획한 하루 일과표는 직장을 위한 시간으로만 매번 100% 계획되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 나를 위한, 가정을 위한 시간을 교집합으로 넣고 리스트를 작성하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나 스스로와 가족을 위해서 소비해야 했던 시간들은 관련된 일정들 중 늘 우선순위에서 아래로 내려갔다. 그에 따른 많은 불협화음들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상단에 있는 중요하다고 입력해 놓은 업무는 완성했다고 생각하면서 그 일들에서 오는 손해들을 합리화했다.


납기일에 맞춰서 아파트 관리비를 내는일 (매월 연체료를 냈다), 6개월 ~ 1년 기간을 시행되는 자동차검사 (꽤 긴 기간을 두고 알려주지만, 그래도 마지막 날을 꼭 넘긴다. 과태료 대상이 됐다) 등 긴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하지 못한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계획표의 탑 순위의 업무는 모두 완료했으니 괜찮다며....

몸이 쉬라고 조금은 쉬어야 한다고 신호를 보내도 병원 갈 시간이 없다며 모른척했다. 1년마다 돌아오는 생일, 기일이 되면, 오빠 생각, 아빠 생각의 그리움이 물려 올 때도 가능한 먼저 해야 할 업무 리스트를 두들기고 있었다.

중요한 집안 모임날은 늘 업무 출장과 미팅에 밀렸고, 혼자 계신 엄마에게 1주에 한 번이 점점 1달에 한 번으로 줄어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라며 작성한 계획 일정표를 보곤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한 시간과 일을 위한 시간을 물과 기름처럼 정확하게 분리해서 생활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목표,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있는 나는 과거의 그 잘난 나만의 일정표 작성 노하우를 버리고자 한다.


2020년 새로 받은 다이어리를 펼친다. 하루 일정표를 위하여 나와 가족 그리고 새로운 일을 위한 시간을 우선 구분한다. 3그룹마다 각각 필요한 일의 계획을 평등하게 나눠야 한다.

하루는 24시간, 1주는 7일... 절대 변하지 않는 시간!

처음 하는 일처럼 잘 나눠지지 않는다. 버릇처럼, 습관처럼 [일을 위한 시간 리스트]만 많아진다.

나를 위한 시간 리스트, 소중한 가족들을 위한 시간 리스트에 단 한 두 가지로라도 적어보려고 노력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가장 잘한다고 믿었던 이 일이, 이렇게 어렵고 낯설게 느껴지다니!

그래도 이 시간 또한 나를 위한 시간으로 첫 리스트에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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