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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 할까요?

퇴사 후, 비로소 알아가는 것들 [5]

by 수요일
지금 듣고 있는 음악 : 장철웅 노래 중 ' 서울 이곳은 '
처음으로 난 돌아가야겠어 / 힘든 건 모두가 다를 게 없지만 / 나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뿐이야 / 약한 모습 보여서 미안해 / 하지만 언젠가는 돌아올 거야 /휴식이란 그런 거니까 / 내 마음이 넓어지고 자유로워져 / 너를 다시 만나면 좋을 거야


"커피 한 잔 할까?" 아침 일어나면서 말한다.

최근 나의 커피 한 잔은 여유 그 자체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상대방도 없고, 한마디의 말도 필요 없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두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초등학교 학생들의 등교를 바라본다.

그렇게 그냥 커피 향과 머그컵 한 잔의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된다.

더 이상 이 한 잔을 마시기 전에, 많고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이제는 없다.

커피 그 자체로 힐링만을 하다 보니, 사회생활 속에서 수없이 마셨던 다양한 커피들이 기억난다.


예전에도, 지금도 나는 아메리카노를 참 좋아한다.

모닝커피 한 잔은 회사 출근을 나름 행복하게 하는 아이템 그 자체였다.

매번 사진 찍어둔 수많은 SNS 모닝커피 사진들이 그 증거이다.

그러나 힐링 커피는 그 한 잔 뿐이었다.

하루 종일 수없이 내가 들었던 "커피 한 잔 할까요?" 그리고 또 내가 말했던 " 커피 한 잔 할래요?".

그렇게 마셨던 한 잔, 한 잔 커피들은 유난히도 썼고, 식어버린 커피도 많았다.


"커피 한 잔 할까요?"

직속 리더가 문자 또는 말을 건다.


'내가 맡고 있는 조직에 뭔가 변화가 있나?

내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뭔가 중요한 변수가 생겼구나?'

뭘까? 무슨 일? 근데 하필 왜 나야? 왜 내 프로젝트일까? 질문하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 등등

"커피 한 잔 할까요?"라는 한마디를 듣고, 몇 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백만 가지 생각들을 고민하고 예상한다.


" 커피 한 잔 할래요?"

내가 팀원에게 문자 또는 말을 건다


'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그렇게 결정한 이유를 어떻게 말해야 이해할까?'

서운해하지 않을까? 아니야, 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제안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일까?' 등등 " 커피 한 잔 할래요?"라는 한마디를 던지기 위해, 일주일 내내 천만 가지 생각들을 고민하고 정리한다.


내가 아메리카노를 참 좋아한다는 것을, 20년 넘게 함께 일한 회사 동료들, 아는 사람은 모두 안다.

뭔가 어려운 일을 결정해야 하고, 무겁고 힘든 일을 제안해야 할 때 들었던 첫마디."커피 한 잔 할까요?"

나도 사용했던 첫마디 " 커피 한 잔 할래요?"


한 잔의 커피와 함께 시작한 회의 속 업무 내용과 진행, 결과만을 고민했던 그때는 놓쳤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 "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이 한마디가 얼마나 필요하고 소중한 말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일만 생각하고 생각해야 했던 그때... 그저 피하고 싶고, 말하기 싫었던 한마디로만 인지했다.

그렇게 한 곳만 바라보고 쉼 없이 여유 없이 살았던 것 같다.


일과는 별도로 이 한마디를 이제 계속 곱씹어본다.

"커피 한 잔 할까요?" "커피 한 잔 할래요?"

리더는 나에게, 나는 동료에게 회사생활 속에서 서로에게 힘들 수 있지만 말해야 할 때, 입을 열게 해 준 꼭 필요한 나를 위한 첫마디!


살다 보면 또 필요한 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커피 향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잔을 미리 준비해 두려고 한다.

어떤 내용의 힘든 결정을 해야 할지는 예상할 수 없다.

그래도 미리 그 내용만 고민하고 추측하고 싶지 않다.

오늘 같은 커피 향 진한 [커피 한 잔]을 준비하고 싶다.

나에게 "커피 한 잔 할까요?" 한 사람을,

내가 "커피 한 잔 할래요?"라고 한 사람을,

그 [커피 한 잔]과 함께 기다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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