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발함과 정지의 발란스.
나의 머리 속에는 겨울은 막혀있고
갈색 또는 회색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추운 바람 속에서 온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집으로 들어올 때 느낄 수 있는 포근함이나
겨울이 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겨울 냄새도 좋지만 따뜻함이 좋아서 집 안에만 있다보면
푸른 하늘과 초록색의 싱그러움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런 그리움이 생기면
앙상하게 말라버린 나뭇가지들과
높지 않은 흰색의 하늘이
괜스레 야속해지기도 한다.
자연이 항상 원색이기를 바라는 것은
휴가도 퇴근도 없이
전성기의 성과만을 바라는 것처럼
잔인한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존재에는 웅크림과 소멸이 필요하다.
그래야 악화된 모든 것들이 떠날 수 있고
또 찬란하게 꽃필 수 있는 여린 생명이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할 수 있다.
무채색의 환경과 말라버린 잎사귀가
답답하고 지루해 보이는 것은
내가 이러한 겨울의 생명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고
그들에게서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외면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도록 강요당한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만들어 내어 축적해야 한다.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미 도태된 상태로
점검을 받거나 비난을 받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
소위 수업시간에 멍을 때린다거나
안드로메다로 간다고 표현하는 상태에 머무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선생님이나 엄마로부터
얼른 정신 차리라는 말이 돌아올 것이다.
아니면 친구가 얼굴을 들이대며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냐며
물어올 지도 모른다.
그냥 아무것도 안했을 뿐인데.
이러한 행동-행동을 안 하는 행동-이
사람들의 의문을 자아내는 것을 보면
우리는 매 순간을 바쁘게 살아가는 것을
정상적이라고 간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겨울이 되고 생산활동을 할 수 없는 환경이 되면
저절로 잎을 떨구고 앙상해지는 나무나
땅 속으로 들어가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나 자신을 쉴 수 있도록 허용한 적이 있는지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
생기있고 활발한 것들은 물론 아름답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유쾌해진다.
그러나 그것들이
매끈하고 기름진 초록빛으로 빛나기 위해서는
앙상하고 말라버린 채로 잠을 자는 시간도
필요했음을 잊지 말자.
그리고 나에게도
눈에 보이게 일을 하지 않고
그냥 나 자신인 채로
가만히 있는 시간을 허락하자.
여전히 따뜻한 날씨는 그립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