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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Sep 10. 2018

우리는 여기에 있다

제 1회 인천퀴어문화축제를 다녀오고

 사실 엊그제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정신없고 아찔한 순간도 많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허둥대서 그런 것 같다. 아직 감정도 정리되지 않은 것 같다. 지금도 어느 순간을 기억하면 울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이유는 내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며, 이 일을 잊지 않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번 인천퀴어문화축제가 나에게는 두 번째 퀴어문화축제였다. 처음은 올해에 열렸던 서울퀴어문화축제였다. 당시 나는 엉겁결에 친구와 가게 된 퀴어문화축제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날씨도 살인적이었고, 퀴어문화축제에 간다고 친구가 해준 화장도 더운 날씨에 계속 녹아내려 신경 쓰였다. 부스를 구경하다 안경도 잃어버렸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카페로 피신을 갔다. 2층짜리 카페는 사람으로 가득 차있었다. 모두 퀴어문화축제에서 나눠준 부채를 열심히 부치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자연스러움을 느꼈다. 축제에 참여하기 전에 나 나름대로 커밍아웃을 하고 오픈리로 다니려 노력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내 정체성이 당당하다는 것을 알고, 알기 때문에 나를 더 드러내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정도의 피로감을 불러왔다. 힘주어 나를 표현하지 않으면 내가 부정당하는 것이 싫어서 열심이었다. 그러나 더위를 피해 들어간 그 카페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는 나로 자연스러웠다. 나를 과장하거나 강조할 필요도 없었으며, 검열은 더더욱 할 필요가 없었다. 모두 집에서 서울은 멀고, 날씨도 더우며 가까이에서 혐오세력의 혐오 발언을 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모인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인천퀴어문화축제는 그렇지 않았다. 들뜬 마음으로 광장에 도착한 나를 맞이한 것은 축제를 준비하는 열기가 아니라 혐오였다. 온갖 더러운 말들이 적힌 피켓이 먼저 보였다. 그들은 수가 많았다. 그 많은 수로 우리를 에워쌌다. 나는 조금 일찍 광장에 도착해서 진입할 수 있었으나 이후에 폴리스 라인이 구축되고 그 밖을 혐오세력이 에워싸 이후에 도착한 참가자들의 광장 진입을 차단했다. 우리는 고립되어 있었다. 많이 밀릴 때는 내 앞으로 열 발자국 앞에 혐오세력이 들이닥쳤다. 처음으로 사람들과 섞여 몸싸움을 했다. 내 뒤에 사람은 넘어져 발을 삐었다. 그들은 사람이 쓰러졌다고 소리를 외쳐도 멈추지 않았다. 다행이 그분은 제빨리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여 깔리는 일은 없었다. 퍼레이드 할 때는 한 분이 쓰러져 응급 이송되는 와중에 그들은 옆에서 찬송가를 불렀다고 한다. 광장에 선선한 아침바람이 밤바람으로 바뀔 때까지 나는 광장 안에 갇혀 있었다. 배는 굶주렸고 다리는 저렸고 목은 탔다. 진짜 생리적인 욕구마저 해소할 수 없었다. 나는 비참함을 느꼈다. 그들은 우리에게 집에 가라고 했다. 진짜 포기하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만약 나 혼자 왔으면 집에 갔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남아서 퍼레이드를 하자고 했고, 우리는 퍼레이드 하려고 준비하였다.


 500m의 행진도 그들에게는 용납될 수 없었나 보다. 우리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20분 거리를 대여섯 시간 동안 행진했다. 이제는 의욕도 없어졌다. 빨리 행진을 끝내고 집에 가고 싶었다. 아니 빨리 행진을 끝내고 이곳을 빠져 나가고 싶었다. 그때 굴다리 밑에서 어디서 시작되었지 모르는 “우리는 여기에 있다”라는 구호가 들렸다. 나는 그 고리타분한 구호에 울음이 났다. 모두 목이 쉰 상태에서 작은 소리로라도 외쳤다. 쉬는 사람은 있었으나 멈추는 사람은 없었다. 굴다리 밑에서 가득 채운 그 소리는 계속 메아리 쳤다. 행진은 진행되었다. 나는 다시 들떴으나 내가 멍청했다. 경찰이 혐오세력과 ‘깃발을 내리고 행진하라’는 타협을 했고 이를 우리에게 강요했다. 깃발은 내려졌다. 행진 말미에는 경찰도 배치되지 않았다. 그 공간을 혐오세력이 에워쌌다. 그들 가운데 좁은 길을 지나며 그들의 조롱과 위협, 폭력을 견뎌야 했다. 아무리 작은 물건이라도 그것이 퀴어성을 띈다면 여지없이 그들은 감추라고 윽박질렀다. 우리는 깃발만 빼앗긴 것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우리의 퀴어성을 검열할 것을 요구했고 경찰은 그들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그들이 빼앗으려 했던 것은 우리의 정체성이었다. 나는 길가에서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처럼 애써 무시하며 지나갔다. 우리는 동인천역 앞에서 모여 있었다. 그 때 나를 보러 왔다가 혐오세력에 막혀 보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들에게 안겨서 울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안고 울었다. 조직위원장이 쉬고 떨리는 목소리로 우리를 위로하며 폐회를 선언했다. 접었던 깃발들은 잠시나마 다시 펼쳐졌다.


 나는 이번 퀴어문화축제 내내 비참함을 느꼈다. 저 사람들은 내가 나라는 이유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구나. 경찰도 국가도 우리를 보호하지 않는구나. 그러나 나는 그 비참함의 크기만큼이나 서로를 안고 우는 사람들의 눈물과 “우리는 여기 있다”는 외침이 기억난다. 우리는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지지 않았다. 우리는 끝내 승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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