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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성 작가 Jun 02. 2016

나는 '아재'라는 말이 불편하다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한 타인 폄하가 멈추길 바라며.



얼마 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아재 개그'라는 말을 시작으로 '아재'라는 말이 상당히 광범위하게 사용되곤 한다.

뜻인 즉, 흔히 '아저씨'로 불리우는 나이대의 남성을 의미하지만, 여기에 내포된 뜻은 '유행을 따라오지 못하거나 유행 지난 이야기를 하는 나이든 남성'을 일컫는 말로 통용되곤 한다.

과거였다면 '썰렁하다' '재미없다' 라는 말을 듣고 말았을 것들에 대해서 '아재 개그'라는 말이 따라 붙고, 진한 청국장이나 선지국 등을 즐겨 먹는 사람들을 '아재 입맛'이라고 부른다고들 한다. (솔직히 아재 입맛 같은건 기사가 억지로 퍼뜨린 것 같고 실제로 사용되는 예시는 아재 개그 밖에 못 보긴 했다)

어찌 보면 아저씨 + 꼰대 + 유행에 둔감한 사람들을 통째로 지칭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그런데 나는 이 표현이 너무나 심하게 불편하다.
이유는 단 하나. '부정적 이유의 편가르기'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싫어하는 대상에게 '극혐'이라는 단어를 붙이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유행처럼 번져버렸다. 자신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혐오' 한다는 것인데, 이 혐오하는 대상에게는 어김 없이 폄하하는 표현이 따라 붙곤 한다 'ㅇㅇ충' 이라는.

물론 초기에는 다른 사람들의 심각한 피해 및 불편을 초래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여 부르기 시작했지만, 언제부턴가 '조금만 자신의 맘에 들지 않으면' 상대를 벌레 격으로 격하하여 부르기 시작한 것은 이미 유행처럼 번져 버렸다. (그러나 일베충이라는 단어만큼은 동의하며, 오히려 벌레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지경이다)

학생 시절, 한 번도 과 잠바를 사서 입어 본 적이 없었는데, 그 이유는

첫째, 그렇게까지 학교 이름을 '대놓고' 자랑할 이유가 있나 싶어서 였고 (나도 우리학교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가방에 자그마한 뱃지는 늘 달고 다녔다. 다만 과잠을 입지 않은 이유는 마치 김재성=학교이름 이라고 내가 인식하는 것으로 보일게 싫었다)

둘째, 내가 과연 다른 학교였다면 저걸 사서 입었을까? 어떤 학교였든 부끄럽지 않게 입을 자신이 없는거라면 저것도 입어선 안된다고 생각했고

셋째, 그냥 안 예뻐서..

였다.

그런데 요즘은 과 잠바에도 한가지가 더 붙는다고 한다.
바로 '출신 고등학교'.

즉, 나름 좋은 대학을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출신 고등학교를 추가적으로 부착하여, '같은 대학이지만 나는 너희와 다르다'라는 것을 차별화 하려는 것이다.

그래. 여기까진 괜찮다. '내가 잘났다고' 스스로 떠드는 일이야 있을 수 있으니까. 아주 좋게 포장해 '자부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거니까.

그런데, 문제는 수시로 들어온 사람들을 '수시충' 이라 부르고, 지역균형 선발 전형을 거친 사람을 '지균충' 등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즉, '나는 너보다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너는 나보다 열등하다' 까지를 말해야 속이 시원한 것이다.

예전이었으면 당연히 같은 집단으로 분류 되어야 할 집단도 세분화 하고, 그 작은 세상에서 다시 우월감을 찾으려 한다. 문제는 이 방법이 스스로가 높아져서 우월해지는 방식이 아닌, 같은 집단의 누군가를 찍어 누르고 격하시켜 스스로가 우월해지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변에서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ㅇㅇ충'이라고 지칭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즉시 인연을 끊는다. 내가 그에게 밑보이는 그 순간, 그는 나를 벌레 취급을 할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그 강도는 약하지만 아재라는 말 역시 마찬가지이다. 물론 'ㅇㅇ충'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라지만, 단지 나이를 좀 더 먹고 유행에 뒤처져있다는 이유 만으로 나와는 다른 '질 떨어지는' 사람으로 상대를 만들며 상대적 우월감을 확보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라면, 결코 이 말은 올바른 말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 표현 역시 싫어하지만, 지나치게 상식에 벗어난 남자 중장년 어른을 말하고 싶다면 '개저씨'로 충분하다고 본다. 나이가 들어 쓸데없이 참견하고 고집 세우는 사람은 그냥 '꼰대'라는 단어로 표현해도 충분하다.

단순히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이를 먹은 남자 어른을 무작정 '아재'라 부르며 편을 나누어 놓는 것은, 또다른 나보다 못난 대상을 하나 더 만들어 내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단어가 가지는 힘은 막강하다.
부정적인 단어의 개수와 그 사용 빈도는 최근 몇년동안 심각한 수준으로 증가한 느낌이다. 그만큼 사회가 각박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유행에 조금 뒤떨어졌을지언정, 그들이 내게 큰 잘못을 하거나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그들은 지금껏 이 사회를 묵묵하게 이끌어 온 우리의 어른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유행이라는 이유로, 폄하하여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선택한 것이 아닌 이유로 재단 당하고 있는 이들을 굳이 폄하하여 부르지는 말자는 이야기이다.

그 예전 수없이 나타났다 사라졌던 유행어와 마찬가지로 '아재'라는 말도 아마 십수년 안에 자취를 완전히 감출테지만, 이런류의 부정적인 뉘앙스의 단어들이 자꾸만 생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사회가 좀 더 숨통이 트여야겠지.

나는 '아재'라는 말이 너무나 불편하다.
남을 폄하해 자신의 우월성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나는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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