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일을 소회하며
사람은 살아가면서 얻는게 있어야 생명이 유지될 수 있다. 태어나서 물과 양분 공기가 도와주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여러 도움과 보살핌을 받아가며 살고 성장하면서 생활 수준을 유지하게 된다. 얻는게 점차 많으면 많을수록 삶의 수준은 올라가고 얻는게 점차 없다면 당연히 삶의 수준은 내려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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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살아오던 수준에서 후퇴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따라서 사람에게 있어 이득은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정말 중요한 영역이고, 본능적으로 손해보다는 이익을 추구하는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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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면서 '추구해야 한다'고 배우는 가치가 하나 있다. 바로 '정의'다.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 라는 일차원적인 정의부터 복잡 다단하게 얽힌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의'는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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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재밌는 사실이 하나 있다. 정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속성이다. 정의 앞에서 사람들은 다음의 세 가지 모습으로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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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당 영역의 정의가 구현되어도 나는 이해 관계가 없기때문에 정의 구현을 지지한다.
2. 기득권의 경우 해당 영역의 정의가 구현되면 자신이 손해를 보기 때문에 정의를 지지 하지 않는다.
3. 정의가 구현되면 다소 손해를 본다 해도, 정의 구현에 힘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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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다수 일반인들은 1번과 2번을 왔다갔다 하게 된다. 심지어 꽤 유명한 사람들 혹은 공무를 하는 사람들도 1번이나 2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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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지지하는 정의는 사실 그 정의가 구현이 되든 안되든 지금 내 생활 양식에 크게 영향을 치지 않는다. '부자 증세'를 외치는 사람은 자신이 증세를 당하지 않은 수준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종교인 과세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종교인이 아닌 경우가 많다. 즉, 자신의 이익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 한에서는 '정의'를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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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사람들도 자신의 이익과 정의가 직결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당장 내가 집을 사야 하는데 대출 자격이 제한되면 대출 제한으로 인한 가계 재무건전성 확보라는 정의가 있더라도 그 정책을 반대한다. 당장 우리집 앞 쓰레기를 거두어가지 않는 일이 생기면 욕하면서도 쓰레기 처리장이 우리 동네에 생기는 일은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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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사람들에게 '정의'를 강요할 수 없다고 본다. 정의롭다면야 고맙지만 당장의 이익이 없어지고, 크게는 손해를 보게 되거나 삶의 터전이 사라질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정의를 따라야 한다고 말할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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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생존권 자체를 위협 받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이미 그 사람들에겐 정의가 아니다. 격무에 시달리다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수준의 소득으로 최소한의 삶을 영위하는 일이 불가능 하다면 이미 그 일은 그 사람들에게 '불의' 이며, 이런 생존권과 맞닿아 있는 문제들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정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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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무한정 어디에선가 재원이 솟아나지 않기에 어느 한 쪽이 +가 발생하면 어딘가는 (적어도 일시적으로라도) -가 발생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동일한 양의 손해를 본다고 하더라도 그 타격이 심각한 계층이 있고,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계층이 있고, 사실 아무렇지도 않은 계층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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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이익과 직결된 문제에 대해서 정의로운 일이니 따르라고 설득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당장의 이익을 지속적으로 취하지 않더라도 감내할 수 있거나 아무렇지도 않은 계층에 속한 사람이라면 항상은 아니라도 가끔씩은 정의로움에 힘을 보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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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일은, 자신의 이익이 직결되지 않은 부분에만 정의로운 척 하는 것이다. 자신이 진심으로 정의로운지에 대해서 성찰이 필요하다. 어느 순간 이익의 기로 앞에 섰을 때 더 이상 정의롭지 못한 스스로를 발견한다면 적어도 한 번쯤은 스스로를 향한 반성을 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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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향하려면 정의롭지 않아야 함에도 자신의 이익을 정의로 포함하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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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자신의 이익이 걸려 있음에도 다소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그 길을 걸어나가고자 하는 사람을 성원하고 응원하자. 나 역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면 때로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감내하고자 노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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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정의로운 길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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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재성
서울대학교 컴퓨터 공학부를 졸업하고 맥킨지 앤 컴퍼니 (McKinsey & Company) 컨설턴트로 재직했다.
현재 제일기획에서 디지털 미디어 전략을 짜고 있다.
저서로는 행동의 완결, 퍼펙트 프리젠테이션 시즌 I, 퍼펙트 프리젠테이션 시즌 II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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