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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더하기 Dec 08. 2019

한산섬에 달이 밝아 그분은 외로웠다

칼의노래- 김훈

현의노래, 칼의노래, 남한산성 그리고 흑산까지 김훈 선생님의 역사소설을 읽게 되면, 우리가 표면적으로 배우고 느끼던 포장된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깊고 깊은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어둠이 깊이 내린 어두침침한 골목길을 걷는 느낌을 받게 된다. 너무 우울한 표현을 쓴 것만 같아 죄송스럽다. 

그래도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인간 이순신의 내면적 갈등과 고뇌 그리고 그 우유부단한 카리스마. 이것을 끄집어 이야기를 엮어내는 놀라운 능력자가 바로 김훈이다.


우리가 흔히 영화를 보면 '자리를 뜰 수 없었다.' 혹은 책을 보고 '책을 덮을 수 없었다.'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지금 소개하는 '칼의 노래'를 읽고 난 후 그 여운과 놀라움으로 나는 한동안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한 이틀간은 어떤 책을 봐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또 하나 이분의 문체다. 이런 문체와 형식을 보통 학문적으로 뭐라 표현하는지 모르겠다. 매우 신비롭고 독특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내 어릴 적 존경하는 인물로서 1, 2위를 놓치지 않던 성웅 이순신 장군. 이순신 장군은 과연 그 당시 그 상황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조선 광해군 전후 시절은 내가 참 많은 관심을 가지는 역사이다. 

임진왜란은 광해군의 아버지 선조 집권 25년 때인 1592년에 최초 발발한 한일 전쟁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던가 이 시기 조선에 빛나는 인물들이 매우 많았다. 모두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한번 알아보고 갈 필요는 있어 보인다. 

먼저 정치적인 배경을 뒤로하고 우리 역사상 가사(歌辭) 문학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의 저자 송강(松江) 정철 선생님 있었다. 퇴계(退溪) 이황 선생님 문하의 기린아 서애(西厓) 류성룡 선생님 영의정으로 왜란 관통하셨다. 붕우유신(朋友有信)의 대표 사례 오성과 한음(漢陰)으로 유명하신 백사(白沙) 이항복, 이덕형 선생님도 비극을 함께 나누셨다. 광해군 시절 북인의 정신적 지주이신 내암(萊庵) 정인홍 선생님 또한 이 시대의 인물이다. 

이뿐이랴 무관으로 눈을 돌려보자. 조선시대 대표 명장 행주산성의 히어로 만취당(晩翠堂) 권율 장군, 세계 최고의 수군 사령관 충무(忠武) 공 이순신 장군 모두 이 시대 분들이다. 

어디 관군뿐이랴 유명한 의병장 망우당(忘憂堂) 곽재우 선생님은 물론 조선 불교계의 대표 인물이신 서산(西山) 대사, 사명당(泗溟堂) 사명대사도 임진왜란을 몸소 체험하셨다. 

물론 왜란 당시 뚜렷한 공적은 없으시나 조선 문학계의 자존심 허균도 이 시기를 거쳐 가신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은 우리 역사에 치욕적인 오점을 남긴 비극의 역사이다. 그것도 임금이 저 멀리 의주까지 피신을 해야 했던 아주 괴로운 과거이다. 

하물며 선대에 유명하신 율곡 이이 선생님 십만양병설(十萬養兵說)까지 주장하셨는데 말이다. 역시 배는 산으로 가고 있었던 것일까? 


이순신 장군은 왜란이 한참 진행 중이던 때에 의금부로 압송되어 그 지위를 박탈당한 일이 있다. 그리고 원균 이하 조선군이 칠천량해전(漆川梁海戰)에서 전멸하자 다시금 그 지위를 회복하고 빛나는 업적을 이루 시계 된다. 

이순신 장군의 투옥은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했으며 임금의 기동출결 명령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군이 복귀하고 명량해전을 대승으로 장식하자 조정에서 면사첩(免死帖)이 내려온다. 면사, 즉 죽음을 면해 주겠다는 것이다. 이 장면을 소설 속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죄에 대하여 죽음을 면해 주겠다는 것이다. 죄가 없다는 것도 아니고 죄를 사면해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만 죽이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너를 죽여 마땅하지만 죽이지는 않겠다.' 배가 산으로 가는 대표적이 예이다. 

소설 '칼의노래'는 전멸한 조선의 해군과 12척의 전함을 인계받고 다시금 임무에 임하시는 부분부터 시작된다. '방책 없는 세상' 이순신 장군이 복귀하여 남긴 당시 당신의 상황을 설명한 책 속의 말이다.

이야기의 흐름 자체가 장군의 독백처럼 흘러간다. 오로지 스스로의 눈에 비친 상황을 자신이 느낌 그대로 표현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소설을 보고서는 전투를 준비하는 치밀함이나, 전투를 치르는 긴박감 그리고 승리로 도출되는 희열 같은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오래전 미국의 유명한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전쟁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것이 있었다. 그 당시 매우 스펙터클한 연출과 뛰어난 전투 장면으로 인해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소설에서 드러나는 전투 장면이 그렇다. 전투가 이뤄지는 장면이 많이 드러나지 않지만 책 속에 비치는 전투 장면은 굉장히 사실적이며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이 된다. 특히 명량해전을 그린 장면은 놀라움 그 자체이다. 압권이다. 

우리가 배우고 아는 것처럼 명량해전은 왜란 당시 무너지는 해상권을 다시 회복하는 계기가 된 매우 중요한 전투이자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업적이다. 이때 이순신 장군이 남긴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는 전쟁에 임하는 장군의 임전무퇴 정신을 각인시키는 명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상상한 명량해전의 통쾌함은 책 속에서 찾을 수 없다. 오로지 장군의 눈에 비친 그 처절하고 쓰린 당시의 치열함과 비통함만이 전해진다. 화살이 빗발쳐 나르고 칼이 희번덕거리며 총포가 날리던 그런 상황만을 상상했다면 그 이상의 것을 책 속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장면을 나는 보고 또 보고 또 보았다. 전투 장면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는 거구나. 새삼 나의 필력이 초라함을 느낀다.


앞서 말한 대로 책은 장군 이순신보다 인간 이순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실존주의적 이순신. 그 대표적인 장면이 장군의 아들 '이면'이 왜군에 의해 살해되는 장면이다. 

장군이 명량해전을 대승으로 이끌자 속이 뒤집힌 왜군이 장군의 고향 아산을 급습하여 그곳을 초토화시키게 된다. 이때 장군의 셋째 아들, 장군과 성품과 생김이 비슷했던 그 아들, 이면이 왜놈들의 손에 의해 처참하게 도륙되어진다. 이 소식을 접한 이순신 장군은 어떤 기분일까? 그는 조선의 수군을 책임지는 책임자였고, 이를 넘어 국가의 명운을 손에 쥔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였다. 

'몸 깊은 곳에서 솟는 울음을 이를 악물어 참았다. 밀려내려 갔던 울음은 다시 잇새로 새어 나오려 했다. 저녁때 나는 숙사를 나와 갯가 염전으로 갔다. 낡은 소금창고들이 노을에 잠겨 있었다. 나는 소금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마니 위에 엎드려 나는 겨우 숨죽여 울었다.' 

울고 싶어도, 목 놓아 소리쳐 울고 싶어도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이런 인간적인 설움이 글로서 전달됨에 한 점에 흐트러짐이 없다. 이 부분이 내가 뽑은 소설 칼의노래의 최고의 장면이다. 

그래서 책임자는 외롭고 쓸쓸한 자리이다. 장군은 언제나 외로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산에서 이면을 베던 상황에 있었던 왜군이 포로가 되어 장군 앞에 잡혀온다. 

'아산에서 교전이 있었나?' 

'마을을 불 지르고, 조선 민병들과 싸웠다.' 

'이면이라는 청년을 특히 죽이라는 명령이 있었나?' 

'있었다. 다만 식별할 수가 없었다.' 

'너는 몇 살이냐?' 

'스물세 살이다.' 

'죽기를 원하느냐?' 

'내 손으로 죽기를 원한다. 칼을 한번 빌려 달라' 

'끌어내다 베어라. 아니다 다시 끌어오너라.' 

'나으리 어찌 손수…' 

'비켜라 피 튄다.' 

자식을 잃은 아비의 애끓음이 느껴진다.


세계적인 고전 삼국지나 손자병법을 보더라도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방법 중에 하나가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것이다. 그중에 먹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 먹어야 힘이 나고 힘이 나야 싸울 수 있다. 이 인간의 삼대 욕구 중에 하나인 먹는 것을 해결하는 고민은 전쟁 중인 지휘관에게는 큰 숙제인 것이다. 

소설 속에 비친 장군 역시 민생고에 대한 고민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끼니때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았고 총포로 조준되지 않았다.' 

표현력에 한번 놀라고 글로 표현된 느낌에 다시 한번 놀란다. 그래서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해도 배식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가 없다. 삼국지에 조조도 그랬다. 

장수 이순신의 고민은 비단 먹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장군에게는 적을 식별하는 일 조차도 고단함으로 다가왔다. 당장 눈앞에 진을 친 왜놈도 적이며, 조선을 돕겠다고 들어온 명도, 줏대 없는 조정도 모두 장군의 적이었다. 물러섬과 나감도 왕이 함부로 할 수 없었고 내 나라 내 영토의 자주권도 명일 간의 협약에 의해 움직이게 되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 장군은 고민하였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어 장군은 돌아가는 적군의 배후를 치고 싶어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천자의 군대라 일컫는 명나라의 총 사령관 진린은 떠나는 왜를 조용히 보내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장군에게 서찰을 보내온다. 아 예나 지금이나 이 좁은 땅은 우리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 이게 내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에 이순신 장군!! 한마디 하신다. '조정이 가엾구나. 우리는 가엾지 않다. 고향이 이미 없다고 써라. 기어이 원수를 갚겠다고 써라. 적의 종자를 박멸할 것이라고 써라.' 

이 또한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능멸하는 행위일까? 


장군은 철수하던 왜를 향해 모든 힘을 모아 공격한다. 

3일 밤낮을 두고 계속된 노량해전. 궁지에 몰린 적을 쫓던 관음포에서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신다. 

'적에게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이순신 장군이 누구인지 새삼 말할 가치도 없다. 그러나 전쟁을 겪는 이순신 장군에 내면을 보기란 쉽지 않다. 물론 난중일기가 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소설 칼의노래에서 표현된 장군의 모습이 딱 맞는다고 할 수야 없겠지만, 느낌만은 공감을 할 수 있다. 

민족의 대영웅으로 평가받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또 다른 이면을 보고 싶다면 어서 빨리 칼의 노래를 읽어보도록 하자. 

한산섬 달 밝은 밤에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을 왜 하셨을지? 진정한 성웅 충무공 이순신으로 우리에 가슴속에 깊이 남을 것이다.     


한 바다에 가을빛 저물었는데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가슴에 근심 가득 잠 못 드는 밤

새벽달 창에 들어 칼을 비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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