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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더하기 Oct 26. 2019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하루하루의 삶

봉순이 언니 - 공지영

언젠가 지인과 대화를 하면서 인기 있는 작가들에 대해 왜 그분들은 인기가 있을까? 논한 적이 있다. 결론은 하나였는데, 그 이유는 글이 읽기 편하게 쓰여지고 쉽다는 것이다. 화려한 미어를 구사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되고 편하게 글이 흘러간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작가로 나는 공지영 님을 꼽고 싶다. 이 분의 현재 평가가 어떠하건 간에 글을 잘 쓰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주변인들에게 공지영 님을 소개할 때 자주 쓰는 말이 있다. 생활 소설의 대가. 대부분의 소설을 그 시대를 반영한다고 한다. 글에 쓰이는 문법도 사회상도 그리고 글의 느낌 역시도 그렇다. 그런데 유독 공지영 님에게만 이런 호칭을 사용한다는 것이 모순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기분이 그렇다. 왠지 이분의 소설을 읽으면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 사고가 대신하여 글로 표현되는 기분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소설 봉순이 언니다.


봉순이 언니가 배경이 된 그 시대를 나는 살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련한 흙냄새를 맞을 수 있다. 더욱이 신기한 건 이 소설이 그 당시에 쓰인 소설이 아니란 점이다. 이토록 섬세하게 시대가 반영될 수 있을까? 그것도 특정 사건 사고를 기본으로 다루지 않는 아주 평범한 우리네 일상을 반영하여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점은 소설 봉순이 언니의 최대의 매력이다. 

봉순이에 순수함이 그렇고, 서울의 한 자락 그 동네가 그렇다. 혼란한 시대상과 고도의 경제발전을 이루는, 세월에 편승한 우리네 어머님 아버님이 살아온 그 동네 그 풍경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석유곤로에 심지 타는 냄새가 나는 듯한 이 책은 여느 공지영 님의 작품처럼 간결하고 부드럽다. 사실 이 점이 작가 공지영에 필살기가 아닐까 싶다. (책은 읽는 사람이 편해야 하며 그 이해가 쉬워야 한다.) 

어쩌면 자전적 성격을 띠고 있는 이 소설은 주인공 짱아를 통해 비치는 봉순이 언니의 순박하고 애처로운 감정을 전달한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말한 대로 60-70년대를 그린다. 나에 이성적 자아가 완성된 곳은 1980년대 서울 영등포 이다. 나는 너무나도 우울한 환경에서 자랐기에 봉순이 언니를 읽으며 느껴지는 감정에 깊이가 눈물 나도록 서럽고 가슴 아프다. 이렇게 봉순이 언니에 대한 소감을 작성하다 보니 그때의 기억이 가슴 벅차게 차오른다. 

나는 가정환경이 그리 좋지 않아 영등포 신길동 일대를 전전하며 살아왔다. 신길2동과 신길4동을 번갈아 움직이며 수차례 이사를 다녔다. 가끔 TV에서 그때 그 맛을 찾아 이러니 저러니 연예인 모시고 하는 프로를 보곤 한다. 나에게도 그 기회가 주어진다면 두 가지 맛을 찾아보고 싶은데, 내가 신길2동 살던 그때 어머님이 가끔 사다 주시던 토스트와 노릇하게 튀겨진 치킨, 그리고 그와 함께 오던 식초에 절인 하얀 무이다. 빵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는 아직까지도 사과가 채 썰려 들어가 있던 그 토스트의 맛을 다시 경험해보지 못했다. 또한 입속 가득 침이 고이던 그 하얀 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또 하나의 추억은 그 당시 고수부지라 불리던 한강시민공원에 모래성이다. 영등포 여자 고등학교 앞 횡단보도를 지나 서울교를 건너 마포대교를 바라보고 그곳에 가면 지금 생각하기에 미친 듯이 높았던 거대한 모래성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왜 거기 있었을까? 진정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라고 있었던 것일까? 한참을 다리가 저리도록 오르고 올라 한순간 굴러 내려오면 끝인 그 놀이가 얼마나 신나고 재밌는지는 그 당시 그곳에 살았던 내 또래 친구들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얼마 전 그곳에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최근 매년 개최되는 불꽃놀이 때문이다. 지금은 너무도 정비가 잘되고 인공미로 가득한 그 한강시민공원에 가면 옛 기억이 하나도 안 떠오른다. 아쉽다. 

이렇듯 소설 봉순이 언니는 저마다 간직한 작은 기억을 되새기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단순한 소설의 재미를 떠나 내가 살던 그 동네 그리고 그때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다. 다시 소설 봉순이 언니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자. 

소설 봉순이 언니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뭘까 생각해 본다. 내가 느끼는 봉순이 언니의 속삭임은 사랑이다. 순수한 마음을 통해 전해지는 조건 없는 사랑. 우리네 사랑은 나와 조건이 맞는 상대를 찾아 나에게 맞춰주길 바라는 요구하는 사랑이 대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봉순이에 사랑은 나를 우선하지 않고 상대를 배려하는 사랑이다. 배려? 그거 사랑하면 누구나 갖는 감정 아닌가? 사랑을 하기에 배려하는 것이 아닌 그를 배려하기 위해 사랑을 한다는 뜻이다. 말장난 같지만 저 사람이 내가 사랑해주지 않으면 받을 상처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봉순이 언니를 읽다 보면 봉순이에 대한 연민으로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 올 때가 있다. 첫 번째 장면은 뱃속의 아이를 위해 떼를 쓰던 봉순이에 처절한 절규. 두 번째 장면은 상복을 입고 아이를 둘러업은 봉순이가 쫒기 듯 언덕을 내려가던 모습, 특히 이 장면에서 짱아가 달려와 봉순이에게 이사 가는 곳을 말해줄 때 봉순이가 짱아에게 괜찮다며 상기된 얼굴과 어눌한 사투리로 ‘뭐 전화가 있으니께’하고 말하던 모습은 내가 뽑은 소설 봉순이 언니 최고의 장면이다. 그리고 세 번째 장면은 주인공 짱아가 성인이 되어 만난 지하철에 그 노숙자 여인. 참 씁쓸하게 눈물 나는 대목이다. 

왜 세상은 순수한 마음과 정직함만으로 살아가기 힘든가? 온갖 술수와 권모만이 최고의 덕목이 되어버린 것 같아 소설 봉순이 언니는 더욱 마음이 저리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나는 순수한 어린이들과 사춘기를 지나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권하지 않는다. 권장 소설이 되어서도 안된다. 그들이 이 책을 보고 느끼게 될 절망과 부정적 시각을 어쩌란 말인가? 마음이 곱고 정직해도 안 되는구나. 역시 세상은 돈이 최고야...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공지영 님의 소설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주변 시선이야 어찌 됐건 난 너무 좋다. 분명한 건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작가 가운데 성공한 작가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그래서 어떤 작품을 소개해야 될까 많은 고민에 싸인 작가 분 중에 한 분이다. 지금에서 생각해 보니 그 많은 베스트셀링 작품 중에 봉순이 언니를 선택한 건 정말 잘한 듯하다. 

책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그리 멀지 않은 30 ~ 40년 전의 서울 그 동네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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