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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더하기 Jun 29. 2021

신국 (新國)


시(屎)


겨울을 달려온 기세만큼 강한 비가 내렸다.

봄은 그렇게 오고 있었다.

갇혀 지낸 15여 년에 세월이 후회스럽지는 않았다.

지금 내리는 이 빗소리가 어쩌면 현재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는 지도 모른다.

어젯밤 너무나도 바른 발자국 소리가 군(君)임을 말해 주었다.


“들어가도 되겠느냐?”

“어인 일입니까 이 밤중에?”

“내가 못 올 때를 온 것이냐?”


군은 조용한 걸음을 하여 안으로 들었다.

군은 오늘이 마지막이라 말하며 시(屎)에게로 파고 들었다.

시를 안은 그에 품은 전혀 떨림이 없었고 깊이도 없었다.

그렇게 짧은 정은 지금 내리는 저 비처럼 길지는 못했다.

군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흐름을 피하는 게 최상의 계이나 그 흐름을 벗어나기가 어찌 그리 쉬우냐.”


새벽닭이 울기 전 군은 이른 걸음을 서둘러 돌아갔다.

조반은 조촐했다.

시린 겨울을 이겨낸 상차림 치고는 너무도 빈약했다.

상이 빈약한 것인지, 마음이 빈약 한 것인지 시는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굳이 흘림 없이 모두 꼭꼭 씹어 넘겼다.



군(君)


돌아와 침소에 든 군은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요즘은 거의 매일 불면에 시달린다.

돌아 누우니 방금 전 시에 나긋하게 조이는 몸도 그리웠고 그 향기도 생각났다.

외로움에 몸이 떨렸다.

군은 한 번도 외롭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때의 군은 자리가 욕심나지 않았다.

지금의 군은 자리가 지키고 싶었다.


“급한 마음에 임시로 책봉 했거늘 어찌 세자의 문안이라 하느냐! 다시는 들지 마라!”


그때 군은 놀랍지도 않고 두렵지도 않았다.

선(先)군은 늦게 얻는 영창을 곁에 두고 귀히 여겼고, 어린 조카 능양을 더 총애하였다.

군은 이러한 선군의 미움보다 자신의 급진적인 성격을 거스르고 내몰아 치는 주변 인물 들이 더 증오스러웠다.

선군의 미움 그리고 주변의 눈총과 시기 속에서도 꾸역꾸역 군은 자리를 지켜 지금에 이르렀다.

군에 위치에 왔거늘 그를 시기하는 위협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두렵진 않았으나 아쉬움이 밀려왔다.



아마도 반정이 있기 전 결정적 두 남녀의 미시적 상황이 저렇지 않았을까 하는 나의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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