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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더하기 May 18. 2019

내게 인식된 나와의 싸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전혜린

여기 한 시대를 짧고 굵게 살다 간 아름다운 여성 한 분을 소개하려 한다. 그 어떤 철학자보다도 나 자신에 대한 자기 성찰을 하게 만드는 시대의 아픔 전혜린 선생님이다. 

전혜린! 이분이 어떤 분인지 얼마나 멋진 분인지 보여주는 간단한 일화를 하나 소개하고 본격적으로 책에 대한 찬양에 들어가 보도록 하겠다. 장석주 선생님에 '나는 문학이다'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내용은 약간 각색하였다.

전혜린 선생님이 서울대에서 강의를 하던 시절 제자와 뜨거운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고 한다. 광기 어린 사랑을 대변하신 선생님이시니 그 사랑이 얼마나 열렬했겠는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그 어린 제자만을 바라보며 사시는 시골의 노모가 이 사실을 알고 두 분의 사이를 갈라놓으시려 한다. 어린 제자분 어찌 어머님의 명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 결국 두 분의 미친 듯 한 사랑은 종지부를 찍게 되고 상대 분은 선생님의 곁을 떠나게 된다. 이때 전혜린 선생님이 이분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네가 날아올 땐 난 네가 독수린줄 알았는데, 날아가는 모습을 보니 참새에 지나지 않네!!' 

Cool? No!! Soreness!! 이것은 가슴 아픈 쓰라림에 대한 이 분만의 절묘한 표현일 뿐이다.


이 책의 시작은 이분이 공부했던 독일 뮌헨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이다. 워낙에 여행 관련 서적이 많아 그 시작이 우리에게 큰 울림을 전해주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평범하지 않은 내용에 놀랄 뿐 이게 다야? 할 의문도 사실 갖게 한다. 이것은 내가 독후감을 쓰고자 했던 의미로서 접근하기에는 그 기대치가 너무 컸던 건 아닌지 실망을 가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또 한 가지는 이분에 명성(?)이나 그 위치만큼(번역서를 제외하고서는) 이 책 말고는 제대로 출간된 책이 전무할 정도다. 아니 이 책이 전부다. 그것도 짧은 에세이 뒤에 편지와 일기를 짜깁기하여 엮어 냈으니 아쉬움이 따른다. 

그럼 나는 왜 전혜린 선생님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소개하고 있는 것일까? 이제 소개되는 본 책이 문학적 가치로서 보다 얼마나 더 위대한지 향수(鄕愁), 여자, 사랑, 엄마라는 4가지 주제를 가지고 접근해 보도록 하겠다.


향수 - 이분이 처음 독일에 발은 내디딘 건 1955년 전쟁에 상흔이 채 마르기도 전인 시점이다. 1955년!! 이분의 나이 22세!! 그것도 홀연 단신으로 머나먼 이역만리에 공부를 하겠다고 도전한다? 역시나 독일도 전쟁이 끝난 지 10년 남짓한 혼돈의 시기였을 텐데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독일 문학을 공부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종종 받으셨다고 한다. 선생님의 대답은 '우연이지요 - 출발하기 위해서 출발하는 것입니다(Partir pour partir)'. 

독일 뮌헨 북구의 슈바빙. 선생님은 이곳은 너무도 그리워하며 찬양하신다. 노동자와 하층민 그리고 빈곤한 대학생들이 어울려 질퍽한 땀 냄새가 진동할 것 같던 그 소도시를 잊지 못하신다. 싸구려 선술집의 훈훈한 맥주 한잔과 어둠이 내린 안개 낀 슈바빙을 비추던 그 가스등을 말이다. 

그리고 공부했던 뮌헨대학. 그 시절 뮌헨대학은 반항이다. 반항을 위한 반항이 아니라 옳은 것을 끝까지 옳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 성질에서 우러나온 반항. 그리고 이런 반항을 가능케 하는 자유. 이렇게 책은 머나먼 이국의 향수로부터 시작되어 간다.


여자 - 리즈 펄(LIZ PERLE)의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그 해답이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가장 의외의 방향으로 수레바퀴처럼 회전하는 생활이 내가 30대 여인으로 되어가는 징후이다.' 

20대를 지나는 우리가 완벽함은 기대하지만 이런 완벽한 순간이 나에게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그 순간. 그것이 나를 위한 설계의 시간이던, 나 자신의 위치를 인지하는 순간이던 아니면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싶은 감정이던 이런 복잡함에 대한 현실을 인지하는 순간이 바로 여자가 되는 순간이라고 말씀하신다. 

우정, 취기와 광기, 방황, 그 무엇인가에 대한 목마름, 자유, 외로움과 증오 그리고 사랑과 집착. 물레방아처럼 도는 반복된 일상이 나를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느 시대이건 '여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행여 여자라는 그 자신으로서 살려고 하지 않고 남성으로부터 이렇다고 정해진 자기를 인식하고 자기를 선택하는 건 아닐까? 

'남자에 의존하는 것에서 얻는 효과, 이러한 모든 것이 여자들로 하여금 남자의 마음에 들도록 애쓰게 하고 있다.' 

동감하는가? 그래서 이 책은 여자를, 아니 고귀한 나에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게 할 수 있기에 남자인 나도 매우 공감하고 많은 것을 깨닫는다. 

'남녀가 동등한 입장이 되기 위하여 자신을 초월하는 행위 속에 자기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여성은 개인적으로라도 무서운 고독과 절망과 싸우면서 자아를 쫓는 길을 걸어야 한다.' 

본 책의 3장 '목마른 계절'의 마지막 챕터인 '사치의 바벨탑'은 실로 무서우면서도 현실을 직시했던 선생님 본인에 냉철한 소견이며 평가이다. 모두 정답일 수 없다는 건 누구나 다 안다. 그래도 꿈을 향해 전진하는 우리가 무엇을 쫓아야 하는지 조타수(操舵手) 정도는 되지 않을까?


사랑 - 사랑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되는 시기에 사랑을 받는 것과 사랑을 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한다. 

혹자의 말처럼 사랑을 받는 것보다 사랑을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느낄 수 있다. 

'사랑만이 우리를 온갖 악에서 해방시켜 주는 유일한 요새다.' 

사랑에 대한 이슈와 이야기는 책 전반에 걸쳐 흐르는 기조이다. 이성 간에 사랑은 물론이요 부모와 자식 간에 사랑, 사물을 인지하는 것조차도 사랑으로 말할 수 있다. 

사랑도 나라는 존재가 성립될 때야 비로소 아름답게 펼쳐진다. 

남자이건 여자이건 결혼 전과 결혼 후가 달라지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말씀하신다. 

'남편에 의한, 남편을 위한, 남편의 생을 내가 영위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자아에 대한 계속적인 방해와 자기 내부에 있는 고독에의 요구를 뿌릴 칠 수 없기에 사랑은 힘든 것이다. 어떤 유명한 평론가가 말했단다. 여자는 남편하고 결혼하는 것이지 남자 하고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고.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한다. 이는 단지 만날 수 있다는 전제를 안고 가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만남을 위해서는 함께 한다는 풍토를 이룰 수 있는 부단한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무엇인가 공유를 하고 서로 같은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건 너무 큰 행복이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보고 내린 사랑에 대한 결론이다. 

'모든 순순한 것은 순간 속에 존재한다. 이것을 지속하고 응결하는 것이 진실로 산다는 것이다.'


엄마 - 여성에게 엄마가 되는 순간만큼 위대하고 고결한 순간이 따로 존재할까? 

'내 딸의 출산은 나에게 절대적인 생활의 규율화를 명하였다. 아기와 동화된 나를 발견하게 됐다.' 

내가 이렇게 '엄마'라는 하나의 주제로 선정한 건 비단 책 속에 나온 한 부분을 공유하고자 해서는 아니다. 오히려 5장 '자라나는 숲'에 나온 이야기는 그냥 '아 선생님은 아이를 이렇게 키웠네'하고 느끼는 게 편하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 책은 육아 지침서가 아니다. 이것은 단순 육아에 대한 선생님의 감정과 아이와에 호흡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어 육아 교육에 공감대를 형성하기보다는 아이를 하나의 자아로서 어떻게 인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심오함을 깨닫는 것이 현명하다. 

이걸 공감하고 느꼈다면 그것으로 대만족 일 것이다. 우리는 나의 아이를 어떻게 대하고 인식해야 하는가? 

'부모는 자기의 아이와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일까? 아이는 완전히 새로운 무엇이다. 이 만남은 매회 하나의 기적이고 신비였다. 완전한 이방인' 

전제는 역시 사랑이다. 이 사랑은 부모에게 경이로움이고 환희이며 호기심이다. 

선생님이 말하는 아이에 대한 생각 중에 내게 크게 와 닿는 부분이 있다.

'우리는 아이에게 아무것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또 요구할 수도 없다. 아이가 우리에 의한 존재이고 우리에 것이지만 동시에 자유로운 의식이고 절대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글을 보고 나는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맹목적인 강요만을 했던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파우스트? 괴테? 니체? 하물며 프로이트? 이런 책들 너무 어렵다. 나를 돌아보기 원한다면 한 번쯤 이 책을 읽어 보자. 한 가지, 너무 깊은 고민에 빠지지 말자 그러나 너무 쉽게 지나치지도 말자. 

나는 이 책을 단순한 에세이로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머리 아픈 철학서는 더더욱 아니다. 평범하지 않기 때문에 평범해지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면 그것으로 이 책에 대한 독서 만족도는 최상이 될 것이다.

희대의 천재? 혹은 평범한 비(悲)녀? 양날의 검처럼 정반대의 시선과 평가가 모여지기도 한 전혜린 선생님. 

시대가 그녀를 품지 못했고 그녀 역시 시대를 품지 못했던 건 아닐지. 

'고독의 판타지 - 내게 비친 나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 이 분이 책을 통해 내 귓가에 전해주신 한마디다. 

이 분의 삶을 조명한 글과 책은 매우 많다. 그러니 소개되는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었다면 이 분 삶에 대한 책도 한 번쯤은 찾아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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