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아침에 카페 문을 연다.
그리고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재생, 바닥을 쓸고 닦는다.
어제 마감할 때 정리하고 갔던 터라 별로 할 일도 없다.
곧이어 늘 비슷한 시간에 방문하는 단골손님이 들어온다.
오늘 날씨가 좋다며 인사를 건네고 손님의 취향에 맞게 커피를 제공한다.
손님은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하며 유유히 직장으로 걸음을 옮기고,
나 역시 그런 그를 눈길로 배웅하며 오늘 하루 힘내자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그런 하루…
있을 거 같은가?
불행히도 그런 날은 없다. 아니 드물다. 거의 없다.
그렇게 믿는다면 당신은 로맨틱 코미디를 많이 봤거나, 커피라는 장사를 해보지 않은 것이리라.
아침에 오자마자 커피머신의 열기로 달궈진 공기를 환기시킨다.
곧이어 아침 장사를 준비하기 위한 그라인더, 머신 세팅을 시작한다.
커피 클린 세제에 담가 둔 포터 필터를 흐르는 물에 빡빡 씻어낸 뒤 머신에 장착한다.
그리고 투샷 버튼을 눌러 뜨거운 물로 흘려 씻긴다.
퇴근할 때 씻어둔 호퍼를 그라인더에 장착한 후 어제 팔다 남은 원두를 다시 담아 넣는다.
포스기 전원을 켜고, 오늘 날짜로 갱신한다.
냉장고 문을 열어 우유가 몇 팩 남았나 확인, 주문의 여부를 생각한다.
동시에 과일의 상태도 봐 둔다.
갈색 리넨을 길게 접어, 그라인더 근처에 놓아둔다.
엎어 놓은 노크 박스를 돌려 준비를 끝낸다.
이제 커피 한잔을 내려본다.
이 커피 샷으로 포터 필터에 남은 1g의 세제도 씻어내는 의미도 있지만, 추출 상태를 보기 위한 의미도 있다.
커피 역시 생물(?)이라 그날의 온도, 습도에 따라 추출 상태가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어제의 풍부한 산미가 오늘은 1도 안 느껴지는 이상한 일도 생기기도 하기에 확인해 두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물론 요즘 커피머신은 워낙 자동화가 잘 되어 있어 큰 오차가 없지만, 연식이 오래된 모델이거나, 관리가 소홀한 머신은 틈틈이 확인해서, 그날의 추출 상태를 어느 정도 예상해서, 커피 입자의 굵기를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다.
느긋하게 일찍 와서 위의 일련의 행동을 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만 늦잠을 자거나, 직장인들과 걸음을 같이 한다면 당신은 뜀박질하는 것 마냥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것이다.
특히 여름, 장마철이라면, 머신의 열기에 흡사 사우나에 들어선듯한 기분도 느낄 것이다.
그렇게 등장해서 커피머신의 하루 세팅이 끝난다면 다행이지만,
행여 생지로 된 고구마 파이나 크로와상을 판매한다면, 당신은 위의 행동을 모두 클리어한 후 오븐의 예열을 기다린 후 생지를 차례대로 잘 넣으면 된다.
어떤가? 간단히지 않은가?(반어법이다.)
그리고 그 순간 틈틈이 들어오는 손님은 덤이다.
출근시간이 다가올수록 가게의 손님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들고, 커피를 만들다 다른 음료도 만들고, 오븐의 타이머도 지켜봐야 한다.
출근 시간 혼자 근무하는 당신은 밀려오는 직장인들에게 기겁을 할 테지만, 그래도 캐시 박스에 차곡차곡 쌓이는 지폐를 보며 어느 정도 위안을 삼을 것이다.
알바라면?
그냥 짜증만 쌓이는 순간일지로 모르겠다.
이렇게 장사라도 되면 다행이다.
거꾸로 이렇게 준비를 끝냈는데도 불구하고, 가게가 조용하다면?
들리는 거라곤 가게 안 mp3 음악과, 나의 한숨소리뿐이라면…
더군다나 커피의 순환이 느려 호퍼에 담긴 커피는 이게 커피인지 보리차인지 구별도 안되고,
만들어 놓은 파이는 1/3 정도만 팔리고, 나머지는 내가 먹거나 버려야 할 상황이라면?
분명 유동인구 많고, 커피 맛도 괜찮아 손님을 끌어모을 거라 생각했는데
본인의 예상과 달리 너무다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면 당신은 어떨 거 같은가?
여기에 매장을 차리기 위해 권리금을 지불하고,
특색 있는 매장이 되고자 무리하게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여기저기 마케팅과 홍보한 비용까지…
건물주는 매정하게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한 달 월세를 꼬박꼬박 받아 챙겼는데…
막상 오픈을 하고 보니 내가 예상한 한 달 매출은 엉망이고, 나가는 비용은 반대로 내 예상을 웃도는…
어디 그것뿐인가?
나오겠다는 알바는 출근조차 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재수가 없어도 되는 건가? 하고 자괴감에 빠질지도 모른다…
흔한 말로 곱게 미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하루하루가 매상에 직결돼서 장사가 되든 안되든 비워둘 수도 없다.
행여 손님이라도 올까 제대로 된 식사도 못해, 종국엔 밥값도 아까워 매장 안 폐기 직전의 파이 조각을 먹으며 허기를 달래리라.
그러다 건강까지 잃고, 한 달 정도 매장을 쉰다면 그나마 있던 단골도 다 잃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기분일 것이다.
두 군데를 예시로 들었지만 모두 다 나의 얘기다.
커피…
대한민국 직업군중 진입장벽이 낮다고 소문난 업종 중 하나가 커피가 아닐까 싶다.
당신은 커피가 하고 싶은가?
좋다!!!
왜 하고 싶은가?
맨 위에 열거한 것처럼 정신적 힐링을 얻고 싶다면, 당신은 카페 사장이 아니라 그 가게 단골이 되어야 한다.
어르신들 노후 사업?
할 것 없으면 동네에 카페나 차리지…
아니 안된다!!!
노후를 생각하면 펀드를 하는 게 백배 낫다.
동네에서 커피를 할 돈 있으면 고이 모아 노후 때 큰 병 생길 때 쓰는 게 훨씬 경제적이다.
당신이 커피를 개업하는 순간
당신의 돈은 종이 조각보다 못한 것이 되고,
한잔 한잔 쏟는 당신의 정성은 어느 순간 탈탈 털려 번아웃이 도래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다는 성악설을 믿게 될 것이다.
아니라고?
‘오늘의 진상’을 만난다면 당신은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미친놈들이 활게 치고 다니는지 알게 될 것이며, 그들의 악랄함에 사탄이 여기 있구나 하며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하겠다면 말리지 않겠다.
나 역시 주변의 만류에도 커피를 했고, 그렇게 후회를 했다.
어쩌면 당해야 아는 것도 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또 커피를 하고 싶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기술은 없고, 할 줄 아는 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커피를 뽑는 게 전부여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가끔 커피를 투잡으로 잡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하면 두배로 벌 수 있을까?
아니다 두배로 벌 수 있는 게 아니라, 이 두 개라도 해야 한 사람 몫을 벌 수 있기에 하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이 글을 쓰며 나의 불행한 과거사를 구구절절 늘어놓는 게 목적은 아니다.
나의 실패를 보고 그 누군가는 성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난 잘 벌고 있는데, 네가 수완이 나빠 그런 거라면 할 말이 없다.
모두가 잘 벌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약간은 비꼬는 걸 수도 있는 거지만
자본력이 있으면 이런 얘긴 필요가 없다.
월세 몇백이나 주며 유동인구 많은 번화가에서 프랜차이즈 끼고, 멋지게 인테리어 하고, 많은 바리스타 직원을 거느리며 돈을 버는데 실패하면 이상하지 않은가?
이 이야기는 나의 100% 주관적이며 지금도 실패 중인 나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