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luto owl Jun 22. 2021

나의 식물 이야기 02...

첫 번째 반려식물, 금전수의 구근 이야기

지난번에도 언급했지만, 나의 금전수는 이번 겨울에 냉해를 입어 줄기 대부분을 잃고 겨우 5개만 살아남았다.

이번엔 그 줄기들의 구근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어떤 식물은 뿌리가 둥그스름한 즉 구근으로 된 경우도 있다. 금전수 역시 구근 뿌리다.

그리고 그런 구근 식물은 뿌리만 살아 있다면 언제든 싹을 틔울 기회가 있다.


겨울에 냉해를 입은 나의 금전수 줄기는 봄까지 물병에 꽂혀 겨우 연명하고 있었다.

그럼 뿌리는?

사실 뿌리는 그렇게 신경 쓰지 못했다.

그 당시 구근이란 개념도 없었고, 줄기가 죽었으니 뿌리 역시 필요 없지 않나 생각했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금전수의 생태를 알게 되면서, 뿌리가 있다면 언제든 싹을 틔울 수 있단 사실에 두근거렸다.

바로 발코니로 가서 흙을 파 보았지만, 아뿔사... 흙이 얼었다.

이대로 뿌리마저 잃을까 싶어 조금 초조했다.

줄기만 신경 쓴 나머지, 정작 제일 가능성이 높은 뿌리를 등한시하다니…


곧바로 어머니께 연락을 드렸다.

어머니께선 날씨가 조금 풀리면 흙을 파 보자 했다.

이미 오랫동안 밖에 있었고, 억지로 흙을 파다 보면 뿌리가 상할 수가 있다고 하셔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며칠 뒤 어머니가 오신 날,

발코니에 신문지를 깔고 모종삽으로 한삽씩 덜었다.

어느 정도 파고 난 뒤엔 손으로 조금씩 훑으면서 뿌리가 손에 닿을까 신경을 쓰면서 진행했다.


예전에 있던 금전수 화분은 길쭉한 개업용 화분이었기에, 모종삽으로 계속 파기엔 무리가 따랐다.

그렇게 구근 몇 덩이가 내 눈에 들어왔다.

1/3은 뿌리가 물렁했다.

냉해를 입은 것이다.

그중엔 제법 큰 구근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거뭇거뭇한 상한 구근을 손에 쥐자 찐 감자처럼 으깨졌다.

하지만 나머지 살아남은 구근에 나는 신난 상황이었다.

다시 금전수가 살아난다.

이 생각뿐이었다.


어머니랑 함께 구매한 화분에 마사토와 분갈이용 배양토를 넣었다.

그런데 화분이 너무나 컸다.

분갈이용 흙을 다 털어 넣어도 적정한(?) 높이까지 이르지 못했다.

어머니께선 다음에 흙을 더 가져올 테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하셨다.


싹이 제법 자란 5월 하순의 어느날...

그렇게 매일매일 화분을 관찰하는 어린아이가 되었다.

빨래를 널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틈틈이 화분의 흙을 헤집어 보곤 했다.(물론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이때가 2월이 끝나고, 3월의 시작 어느 날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식물이 잘 자라는 온도가 되었다.

그날도 행여 싹이 나왔을까 싶어 흙을 보는 순간….

와 세상에!!!

조그만 하얀 줄기가 솟았다.

이때가 뿌리 없는 금전수 줄기를 화분에 묻고, 금전수가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뿌리에서 싹이 나서 나는 드디어 뭔가 보답받았다는 생각을 했다.

한마디로 기뻤다.

글을 쓰면서 기뻤다는 두리뭉실한 상투적인 표현이 얼마나 유치한지 알고 있지만,

그때의 상황에 미사여구보단 짜릿한 기쁨 그 하나뿐이었다.


그 기분과 동시에 별의별 상황을 생각했다.

이를 테면 흙을 조금 걷어서 숨을 좀 쉬게 해줘야 하나?

아님 곱게 덮어야 하나? 등등 말이다.

이렇게 싹이 나니 발코니에서 금전수 줄기를 보는 게 하나의 낙이 되었다.


불행히도 이렇게 자주 보는 나의 정성이 실수를 유발하게 한다.

앞에도 설명했지만, 몇 덩이의 구근을 묻었다.

하지만 그 당시 돋은 줄기는 하나였다.

그러면 궁금하기 마련이다.

나머지도 슬슬 저 흙을 뚫고 올라올 때가 된 게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구근이 묻혀있는 흙을 들춰보는 경우가 잦았다.


그날도 그렇게 흙을 들추고, 다시 묻다 그만 줄기를 손톱으로 건드렸다.

똑하고 뿌려졌다!!!

난 너무나 당황했다.

이걸 어쩌지? 하고 흙을 고르다 이어 또 하나 뭔가 손톱에 걸리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구석에 줄기 하나가 더 돋아있었는데, 내가 미쳐 인지하지 못했다.

그날 난 금전수 어린 줄기 2개를 부러뜨렸다.

나는 나의 이런 행동에 저주를 퍼부었다.

미친넘!! 그냥 보기만 할 것이지.

알아서 다 자랄 건데, 뭐하러 건드려서 줄기를 이렇게 뿌러뜨리냐

결국 나의 과도한 정성(?)으로 모든 건 제로가 된 셈이었다.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근처 화원에서 세척용 마사토를 사 와서

그 위에 뿌렸다.

위에 돌이라도 깔려있으면, 내가 의식적으로 건들지 않겠지 하고 생각한 행동이었다.

종종 반찬을 들고 오시는 어머니도 금전수 뿌리를 보고 가시곤 하는데,

이렇게 마사토가 올려져 있는 상황을 듣고는

원래 식물은 과도한 관심을 받으면 바로 죽으니까 평상시 관심의 반만 주라며 말씀하시며 장난스레 나의 등을 치셨다.

그리고는 마사토를 손수 걷으며 아직 어린애들이라 저런 돌을 들어 올릴 힘이 없을 거라 말씀하셨다.

어머니께선 괜찮다 하시며, 날씨도 온화하고, 구근도 건강하니 싹은 언제든 다시 날 거라 하셨다.

어머니의 그 말은….

뭐랄까… 말로 표현하기 힘든 힘이 있었다.

아이 둘을 키운 주부의 힘? 아님 연륜?

뭔가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었지만, 믿게 되는 그런 힘 말이다.

6월 19일의 금전수.. 상단에 싹이 또 하나 돋았다.

그 뒤 화분 속의 구근은 잠잠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흙만 있는 빈 화분처럼 보이리라…

시간이 지나면서 건강치 못한 구근 하나가 흐물거렸다.

다행히 다른 구근은 건강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특별하 일 없이 조용히 잠만 자는 아이 같았다.


어머니 말씀처럼 어느 날 싹들이 ‘뿅’하고 돋아 있었다.

이번엔 손이 아닌 나무젓가락으로 살살 휘저었다.

역시 제버릇은 줄 수 없나 보다.

내 손으로 부러뜨린 녀석은 아직 잎이 나진 않은 상황이지만, 곧 건강한 잎이 나올 거 같다.


하지만 내 눈엔 여전히 화분이 커 보였다.

행여 물이 밑바닥 흙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재들이 잎이 나오고 조금 더 자라면 개별적으로 담으려 생각했으나,

어머니는 큰 화분에 있어야 영양분도 듬뿍 먹고, 튼튼히 자란다고 이대로 키우자고 하셨다.

그렇게 새로운 금전수가 자라고 있다.

아직은 어린잎이라 뭔가 신기하다.

이게 금전수?라고 생각될 정도로 귀엽다.

둥그스름한 잎… 얇은 줄기…

식물을 기르기 전엔 왜 저런 줄기에 환호하는지 몰랐으나, 이젠 나도 잘 알고 있다.

나의 노력이 보상받는 느낌이다.

때에 맞춰 물을 주고, 액상비료를 뿌리고…

나의 관심이 성장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리라…


이제 곧 장마다…

이때 식물들이 많이 힘들어한다.

장마만 잘 넘기면 훌륭한 금전수가 되리라…

여전히 금전수에 과도한 관심을 쏟긴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금전수는 나의 첫 번째 반려식물이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분이 선물로 주신 것이니…


https://brunch.co.kr/@pluto-owl/323


매거진의 이전글 이렇게 하면 망하는 커피 이야기 0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