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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to owl Feb 22. 2022

외할머니의 소천... 삶은 오늘도 이어진다...

모든 일에는 순리가 있다.

계절은 네 번을 돌고, 생이 있으면 사가 있으며, 해와 달이 맡은 시간대는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

이런 순리대로라면, 인간의 삶 역시 언젠가는 마무리가 된다.


지난주 금요일 외할머니께서 소천하셨다.

핑계를 대자면 그날은 너무나 일어나기가 싫었다.

평상시의 시간대로 눈이 떠졌지만, 침대 밖을 나서기가 싫어 억지로 더 잠을 청하려 했다.

1시간 정도 늦게 일어난 시간…

핸드폰엔 어머니의 부재중 전화가 10통이 넘게 왔었고,

동생 역시 부재중 전화와 더불어 카톡에 메시지가 와 있었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으니,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아…’

나는 짧은 탄식음밖에 내지 못했다.

동생은 서울에 거주하는 터라 당장 내려오지 못하고 다음날 내려오겠다 했다.


나는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당연하겠지만, 경황이 없으시니 내 전화는 못 받으셨다.

잠시 후 어머니에게 전화가 온다.

어머니는 울다 목이 잔뜩 잠긴 목소리로 저녁때 천천히 오라고 하신다.


그러겠다고 말하고,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

햇살은 너무나 따뜻해 보였으나, 겨울바람은 그러지 못했다…


외할머니는 전 씨 성을 가진 분과 재혼을 하셨다.

외할아버지라 불러야겠지만, 그렇게 부르기 힘든 이유는 어머니에 대한 모진 학대랄까?

그런 것을 듣고 보고, 자란 탓에 선뜻 부르기가 어렵다.


외할머니는 어머니와 이모

그분의 아들(외삼촌) 넷…

그렇게 두 분이 결혼했으니 순식간에 8 식구가 되었고,

훗날 형제 둘을 더 낳았으니(어머니에겐 소위 씨 다른 동생이다.) 도합 10 식구가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머니와 이모는 그냥 부엌데기 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외할머니를 어머니처럼 여겼을까?

그녀는 다 자기 친자식이라 여기며 아낌없이 줬지만,

정작 자기 혈육인 어머니와 이모에겐 그리 모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나에겐 사촌이다)은 하나같이 외할머니 손을 빌러 자랐다.

십 수 명의 친손자들 중 8명의 친손자, 손녀들이 하나 둘 거쳐가며 짧게는 1년 길게는 십수 년을 외할머니 밥을 먹고 자랐다.

그들은 어떤 마음일까 싶다…

자신의 어머니를 대신해 매일 따뜻한 밥을 지어주며, 키워준 그분의 마지막을 그들은 어떻게 대할지 궁금하다…


상복이 몸에 안 맞다.

문상 갈 일이 좀처럼 없으니 입을 기회도 적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안 맞다니…

갑자기 짜증이 난다.

옷을 벗어던지고, 어두운 색의 옷을 골라 입고 집을 나섰다.

바람이 매섭다.

외할머니를 모신 장례식장은 어머니 집이랑 가까웠다.

1시간이 조금 넘어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상주는 예상대로 다섯째 삼촌이다.

당연하겠지만 외할머니 배에서 나온 자식이니 그럴 법도 하다.

할머니께 향을 올리고 예를 올렸다.

삼촌과 짧은 인사를 나눴다.

막내 삼촌은 다른 조문객과 얘기 중이었다.

외사촌들과도 짧게 인사했다.


하지만 다른 삼촌이라 불리던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도 보이지 않는다.

'내일이라도 오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 순간

어머니를 뵈었다.

수척해진 모습이 안쓰러웠다.

작은 몸뚱이가 더 쪼그라든 느낌이었다.

어머니는 옷이 그게 뭐냐고 약간 핀잔을 주셨다.

살이 쪄서 그렇다고 웃어넘겼다.

그렇게 밤이 오고, 어머니는 집에 올라가 잤다가 내일 일찍 오라고 하셨다.

장례식장을 나와 집으로 걸어가면서 잠시 외할머니 집에 들렀다.

평상시랑 다름없는 대문이었다.

다만 다른 점은 저 대문 너머로 꺼진 외할머니 방뿐이었다.



오전 10시쯤에 입관을 행했다.

새벽에 인천에 이모와 이모부 외사촌 둘 그리고 동생이 와 있었다.

나를 포함한 가족들을 장례지도사가 안치실로 안내했다.

장례지도사의 설명이 있었으나, 귀에서 웅웅 거리며 잘 들리지가 않았다.

저 문 너머에 외할머니가 계신다.

어떤 모습일까? 그 생각뿐이었다.


안치실 문이 열리고 이내 외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화장을 했다 한들 목 아래 얼핏 보이는 탁한 살빛의 색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머니를 비롯해 외할머니의 자식과 며느리, 사위가 목놓아 운다.

나 역시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아 정말 돌아가셨구나.

이제 정말 마지막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외할머니를 대하는 어머니가 너무나 걱정이 되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라는 자식관계보다 어머니와 나라는 관계가 더 중요하다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외할머니보다 어머니의 심신이 더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어머니의 등을 말없이 쓸어내렸다.

수의를 입고 관에 들어가는 외할머니를 뵙고 나선 어머니는 소파에 앉아 소리 없이 울기만 하셨다.

칠순의 어머니는 그 순간 외할머니를 어떻게 보내드렸을까 생각이 든다.


그날 저녁…

삼촌이라 부르는 사람 중 2명이 왔다.

어머니와는 원수 같은 존재…

익숙한 얼굴이다.

아… 저들도 저만큼 늙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외할머니에게 절만 하고는 곧바로 나갔다.

어머니는 그들 뒤에 욕을 퍼붓는다.

그렇게 외할머니 밥을 먹고 자란 것들이 뭐가 바빠 5분도 못 앉아 가냐고 울화통을 터뜨린다.

그렇게 둘째 날이 넘어가는 동안

외할머니가 키우다시피 한 친손주, 손녀들은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발인이 시작된다.

아침 일찍 할머니께 술을 올린다.

밤새 조문객들이 다녀오고, 시끄러운 탓에 잠을 좀 설치기 했지만, 어머니는 이게 상중 예의라고 하시니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간다.

삼촌의 지인들께서 할머니 관을 영구차로 옮긴다.

그 뒤를 따르는 어머니와 이모는 이내 울음을 터뜨린다.

그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이 든 건 왜인지 모르겠다.

난 어머니 어깨를 부축하고 곁에 있어드린 건 말고는 한 게 없다.

그 슬픔을 어찌 내가 나눠 받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영구차는 영락공원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우리처럼 가족, 친구를 보내는 이들로 가득했다.

그 기운이 가득해서 그런 걸까?

나는 가벼운 두통을 느꼈다.

가끔 가는 문상임에도 그 분위기 탓인지 두통을 자주 앓았다.

나는 공기가 탁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영적(?) 기운이 좋아서 그런 거 아니냐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몇 시간 후 외할머니는 작은 항아리에 담겨 삼촌품에 안겼다.

모시는 곳은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자주 가시는 절…

스님의 경을 듣고, 삼배를 올린다.

어머니는 할머니가 담긴 단지를 만지며, 자리를 뜨셨다.

버스로 향하면서 어머니는 나에게 날이 따뜻해지면 영정사진을 준비하자 하신다.

그 말에 눈물을 쏟았다.

외할머니의 모습보다 어머니의 그 한마디가 날 울게 만든 것이다.

어쩌면 나도 준비해야 할 시간이 왔음을 아는 건지도 모르겠다.

울면서 그리고 웃으면서 그러자고 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그리고 그런 삶의 유한함을 확인하며 내일을 준비한다.

어떤 이는 오늘과 변함없는 삶을 택하는 반면

다른 이는 오늘보단 나은 내일을 준비하려 한다.


나는 유한의 삶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고민을 한다.

내 삶이 가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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