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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to owl Mar 26. 2022

내 하루의 삶을 1X만원에 팝니다 01…

원하는 대학에 붙질 못했다

원하는 과에도 못 들어갔다


20대는 그냥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시간만 잡아먹었다

아르바이트조차 제대로 못했다


남들처럼 흔한 여행 한번 못 갔다

어학연수는 꿈도 못 꿨다


대학 졸업 후 좋은 직장은 찾을 수도 없었다

낮은 학점, 낮은 스펙

난 그 어떤 준비도 하지 않았다


30대에 들어서자

이런 것들이 누적되어 나의 삶을 어렵게 했다


그때의 난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그림실력이 있고 준비만 한다면 세상에 선 보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렇기에 일자린 별로 중요하지 않다 생각했다

지하철 자판기에 캔 음료를 넣는 알바를 하며, 마치고 집에 오면 공모전을 준비한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몸에 익숙지 않은 노동으로 인해 그림 그리는 날보다 쉬는 시간이 더 많았다

결국 공모전은 떨어졌다


스스로 이런 일은 어울리지 않다 생각했기에 자판기 알바를 그만두고 커피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름 재미있었다


그래도 그림에 대한 열정은 남아있었다

하지만 실력은 늘지 않았고

의욕만 있을 뿐 점점 멀어지는 듯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이 왔을 때


나의 그림은 결국 어정쩡했다

딱히 잘 그리는 것도 못 그리는 것도 아니었다


난 도대체 무엇이 되고 싶었던 걸까…


모든 건 변한다.

물론 자신의 틀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이제껏 자신이 해온 그 길 위에 스스로를 올려놨으니 주위의 어떤 것이 변한다 한들 크게 와닿는 것이 적으리라…


하지만 나처럼 아슬아슬한 삶을 살고 있자면 하나의 사소한 변화가 큰 물결이 되어 닿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지금의 나는 인천에 와있다.

경남 양산의 아파트는 급하게 정리하기가 어려워 일단 이모의 도움으로 부랴부랴 인천에 원룸을  구하고 이모부의 권유(?)로 건설현장에서 일하게 됐다.

그렇다.

소위 말하는 막일 그것이다.


어쩌다 난 인천까지 올라와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게 된 걸까?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은 더 이상 모아둔 돈을 헛으로 쓸 수 없는 상황… 사실 이제 돈이 좀 간당간당하다.

계산해보니 난 광안리의 커피가게를 정리한 지 무려 1년 9개월이 되었다.

1년 9개월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고는 브런치나 인스타가 같은 SNS에 글 또는 그림을 남긴 게 전부였다.

물론 제과제빵을 배우고 로스팅을 배우기도 했지만 결국 가게 창업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여건이 되면 다시 커피점으로의 창업을 고려했겠지만,

코로나와 더불어 비싼 권리금과 임대료가 창업을 망설이게 했다.

무엇보다 지금의 커피 트렌드를 따라갈 자신이 없는 것 또한 한몫했다.

나는 커피가 어려워진 것이다.

조 단위의 시장으로 성장한 커피는 너무 낮은 진입 벽 탓에 자금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이템이 되었다.

저가 프랜차이즈부터 시작해서 개인 로스터리 카페까지 동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직종인 셈이다.

이미 경영의 방만함으로 한번 말아먹은 나로서는 이 상황이 달갑지 않다.

호기롭게 뛰어든들 자본력이 딸리면 질 수밖에 없는 그런 사업 아이템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런 레드오션에 나의 알토란 같은 종잣돈을 쏟아붓는 들 그것이 황금알이 되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런 와중에 외할머니께서 소천하시고, 이모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이모부와 함께 현장일을 해보는 건 어떠하냐고 말이다.

이모와의 담소 중 어머니의 영향도 있었다.

70 노모가 아들들 뒤치다꺼리하느라 손에 쥔 돈이 없었다.

항상 못난 아들 두 놈과 술과 도박으로 인생을 보낸 아버지 덕분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한 어머니…


뭔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결과는 항상 참담했다.


남들 아들, 딸은 결혼도 잘 만하고 손주까지 보여줬지만, 난 그러질 못했다.

그런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이번만큼은 내가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그렇게 승낙한 이 상경에는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과연 이 막노동을 얼마나 오래 할지는 알 수 없다.

다시 커피점을 할 만큼 적당히 벌고 도망칠 수도 있고,

이일도 할만하구나 하며 오래 눌어붙을 수도 있다.

아니면 며칠 만에 도망칠지도 모를 일이다.


여전히 나는 글을 쓰고 싶다.

물론 그림도 그리고 싶다.

어쩌면 그럴 여건이 다시 오길 바라며 이일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늘 생각한다.

나의 우화는 매미의 우화만큼이나 길다…

나는 여름철의 매미처럼 그 껍질을 걷어내고

여름의 그 해를 온몸으로 맞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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