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화 이야기. 세 번째...
“얘. 얘 그 얘기 들었어? 2반 지수도 실종됐대..”
“헐, 진짜?”
아침수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아이들의 가십거리가 터졌다.
엎드려 선잠을 자던 하윤이는 그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벌써 4명째다.
방송에선 연쇄유괴라면서 떠들어대고 있다.
경찰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할 뿐 그 어떤 실마리조차 잡지 못했다.
학부모회에선 선생님들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다.
그 탓에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화풀이하듯 몰아 채고 있는 실정이다.
유괴사건 이후 하교할 때마다 학원 통근차에 학원 선생님이 동승하고 친구 부모님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함께 귀가한다.
마치 초등학교 1학년으로 되돌아간 기분이다.
학원 수업이 끝나면 가끔 엽떡 먹으러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이제 그런 건 죄다 옛말이다.
뭔가 통제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짜증이 밀려온다.
“그렇게 미간을 잔뜩 찌푸리면 나중에 자국 생겨. 훗”
재영이가 하윤이의 미간을 만지면서 헝클어진 머릿결을 쓸어 올려준다.
“어제도 다희 실종 전단지 돌린 거야?”
그 질문에 고개만 끄덕였다.
첫 번째 실종자…
하윤이의 절친 다희였다.
“그런데 그 소문 사실일까?”
하윤이는 상체를 일으켜 눈을 비비곤 재영이를 바라본다.
“누군가에게 액자 이미지를 받으면 영화 ’ 링’처럼 손이 훅 나와서 폰 속으로 끌고 간다는 도시괴담 말이야…”
재영이는 비웃는 듯한 미소를 보이며
“그런 게 가능하면 내방 문이랑 교실이랑 연결시켜두고 싶네.”
“그럼 나는 bts 숙소에 ㅎㅎㅎ”
심각하려던 얘기가 이내 여고생들의 평범한 가십거리로 전환된다.
재영이는 하윤이와 방과 후 실종 전단지를 붙이기로 약속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하지만 재영이는 오후에 하윤이를 볼 수 없었다.
하윤이 역시 실종자 명단에 오른 건 그날 수업이 막 끝난 오후였다…
또 한 명의 실종으로 뉴스는 또 한바탕 시끄럽게 되리라.
재영이는 예전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걸 기억하며 그곳으로 가고 있다.
’ 서쪽으로 가면 지금은 공원이 된 곳,
그 공원 근처에 사람들은 못 알아보는 신목 한 그루
그 아래 귀하디 귀한 존재…’
재영은 지금의 도시괴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아니 그보다 인간과 섞여사는 이들이라면 어렴풋이 그것이 어떤 주술인지도 안다.
하지만 인간과 함께 어울리려면 봐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르 척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재영은 ’ 그때 하윤이에게 어느 정도 힌트라도 줬어야 하는데…’ 하며 후회하고 있었다.
그분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은 마음에 버스에서 내린 그녀는 신목이 있는 곳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육상부인 재영이지만 버스정류장에서 공원까진 꽤나 숨이 부치는 거리였다.
그렇게 숨을 내쉬며 신목아래에 도착한 그곳은 수많은 할아버지들의 쉼터였다.
삼삼오오 모여 장기나 바둑을 두거나 훈계하는 것에 여념이 없었다.
재영은 너무나 당황했다.
여기서 어떻게 할아버지가 말한 그 존귀한 분을 찾는단 말인가?
그래도 절박한 그녀로선 어떻게든 찾아야만 했다.
재영은 신목 근처에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들을 힐끔힐끔 봤다.
마치 자기 식구라도 찾는 마냥 얼굴을 보니, 몇몇은 재영에게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렇게 신목 주변을 둘러봤으나 존귀한 그분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있기는 했던 걸까?
재영은 거의 울상이었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영영 하윤이를 못 본단 생각에 심장이 쿵쾅 거렸다.
그렇게 다시 둘러보기를 여러 번…
이미 해는 기울고, 재영이는 이미 땀범벅 었다.
얼굴에 붙은 머리칼이 거추장스럽다.
여기가 아닌 걸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녀는 벤치에 앉아 몸을 웅크렸다.
눈물이 터져 나온다.
참았던 눈물인 만큼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친구의 상실이 현실이 되는 것 같아 너무 무서웠다.
그렇게 울던 중에 저편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부은 눈으로 그곳을 보니 할아버지 한 명과 어떤 여성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재영은 울던 눈을 비비며 그녀를 제대로 봤다.
분명 저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재영은 그곳으로 콧물범벅이 된 채 뛰어갔다.
“이야, 홍보살!! 대마를 이렇게 잡았단 말이야?”
같이 바둑을 두던 할아버지는 까끌한 턱수염을 만지면서 한방 먹었단 표정으로 바둑판을 쳐다보고 있었다.
졌지만 뭔가 흥겨운 표정을 짓던 그는 그녀 뒤에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재영을 보자 그녀에게 고갯짓을 해 보인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재영을 보곤
“박 영감님, 내가 손님이 온단걸 깜박했네. 바둑은 여기까지.. 그리고 아들내미 서류에 사인은 9월에 하라고 해요. 그달에 해야 뒤탈이 없어.”
할아버지는 알겠다는 듯 오케이 사인을 보냈고 그녀는 재영을 데리고 한적한 곳으로 향했다.
그녀는 휴지대신 담배를 권하다 아차 싶었는지 이내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재영은 머리를 매만지곤 할아버지께 배운 예법을 기억하며 행하려는 순간 이내 그녀가 말렸다.
“괜찮다 얘야.”
그 말 한마디에 재영은 다시금 울음을 터트렸다.
겉모습은 좀 날라리 같았지만 목소리는 분명 그분의 것이었다.
그녀는 재영에게 전후 사정을 들었다.
“그래서 너는 보수로 내게 무엇을 줄 거니?”
재영은 높은 분을 부리려면 보수가 필요하단 걸 알고 있다.
“제10년 치 피를 드리겠습니다.”
재영은 각오한 듯 말했다.
그녀는 그 말에 까르르 웃으면서
“너는 그 애와의 우정이 얼마나 오래갈 거라고 생각하니?
짧으면 올해, 길어도 십수 년이 될까 말까 하지…
그런데 너의 피 한 방울은 네가 ’ 바친다’란 말 한마디로
수백수천의 보석보다 값진 게 된단다.”
그녀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을 이었다.
“더군다나 너의 피를 담보로 받았다가는 너네 할아버지께 매타작을 당할 테니, 저기 버거킹 와퍼세트로 합의…”
재영의 얼굴은 화색이 돌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족자는 어디서 볼 수 있지?”
햄버거를 씹는 묘화의 질문에 재영은 자신의 핸드폰에서 그 사진을 보여줬다.
“인터넷에서 돌던 걸 반 친구가 캡처해 보내줬어요.
하지만 이렇게 보는 건 효과가 없나 봐요.”
묘화는 그 족자 이미지를 보더니 입가가 실룩거리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마지막 햄버거를 입에 넣고는
“너는 나에게 참 즐거운 것을 가져다줬구나.
오히려 내가 너에게 보답을 해줘야 할 정도로 말이다.”
재영은 묘화에게 이해 못 할 감사를 받은 게 어리둥절했지만 곧 하윤이를 구할 생각에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학교로 안내해 줄래?”
묘화의 말에 재영은 움직이려는 순간 혼령계에 들어섰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현세와 혼령계의 경계가 허물어지다니 재영은 그녀에 대한 경외심보다 공포가 더 앞섰다.
그녀가 신목 근처에 다다르자 문지기가 보였다.
영맥을 관리하는 문지기 해태…
“존귀하신 묘화님을 뵙습니다.”
문지기가 깍듯이 인사한다.
“그리고 저분은 사슴 일족인가요?”
“응. 이 애는 녹영의 직계 자손.”
묘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깍듯이 인사를 한다.
“녹영 님의 자손을 뵙습니다.”
재영 역시 얼떨결에 고개를 숙인다.
“지금 영맥을 하나 이어줬으면 해.”
“어디의 영맥을 열까요?”
해태의 말에 묘화는 재영을 쳐다봤다.
“xx여자 고등학교요.”
해태는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그곳엔 영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그 말에 묘화는 한쪽 입을 씰룩 거리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과연 그런 것인가?
훔친 것인가? 만든 것인가?’
묘화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며 해태에게 다시 요구했다.
“저기 말이야 푸른 눈의 회색 쥐 일족은 어느 영맥 근처에서 거주하고 있어?”
그 말에 해태는 곧바로
“황악산 일대의 영맥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서 살고 있습니다만…” 과연 문지기다.
거침없이 바로 대답한다.
“그럼 거길 이어줘.”
문지기 해태는 당황했다
애당초 그곳은 한반도의 남서쪽에 위치한 영맥일뿐더러 묘화가 가는 곳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묘화는 무슨 생각인지 그곳을 이어달라고 한다.
그러면 문지기로서 해야 할 일을 할 뿐.
해태가 포효하자 신수의 옹이가 점점 벌어지더니 그곳에서 빛이 새어 나온다.
혼령들이 지나가는 길, 영도다…
묘화가 손을 내민다.
재영은 그녀의 손을 잡는다.
“내손을 꼭 잡으렴.” 그 말에 표현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낀다.
그리고 재영과 묘화는 순식간에 고등학교 운동장 앞에 섰다.
’역시 훔쳤구나.’
묘화는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이어서 재영에게 족자 이미지를 보여달라고 했다.
재영이는 핸드폰에서 이미지를 연 순간 깨달았다.
족자의 주술이 발동되고 있음을…
재영의 핸드폰을 쥔 묘화는 집중하며 뭔가 말하고 있다.
산스크리트어다.
재영이도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그녀의 주문이 끝나 핸드폰 액정을 아래로 향하니 족자가 떨어져 나왔다.
펄럭…
핸드폰에서 나온 이미지는 실체로 바뀌어 바닥에 눕혀져 있다.
재영은 묘화의 얼굴을 쳐다봤다.
재영과 달리 묘화는 새로운 장난감을 찾은 듯 조금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자 들어갈까?’
묘화의 말에 재영은 족자에 뛰어들었다.
여기가 족자안인가?
족자 안은 교무실이었다.
재영이 복도를 지나 교실로 들어가자 그곳엔 실종된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신들의 피로 반성문을 쓰고 있었다.
2반의 지수다.
지수는 이미 많은 피를 흘렸는지 안색이 회색빛이었다.
지수가 쓰러지자 쥐들은 지수를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곤 지수의 가죽을 뒤집어쓰는 것이 아닌가?
재영은 비명을 질렀다.
하윤이….
하윤이를 찾아야 한다.
쥐들이 재영이의 비명에 반응하여 달려들려는 순간 이내 멈춘다.
다희다.
아니 다희지만 다희가 아니다.
“5반 진재영? 와 대박 어떻게 여길 온 거야? 얘들아 여기 누가 왔나 봐.”
그러자 다른 다희들이 어두운 공간에서 걸어 나왔다.
“진재영?
재영이네..
신기해 우리 결계는 우리가 선택한 애들만 들어올 수 있는 거 아니었어?”
“말해!! 어떻게 우리 결계에 들어온 거야?”
다희들은 재영의 어깨를 잡고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재영은 이내 꿈틀거리는 지수를 보며 말했다.
“너희들, 지수를 어떻게 한 거야? 다른 애들도 저렇게 만든 거야?”
다희는 지수를 보더니 별 것 아니란 것처럼 말한다
“아~~ 저거?
계속 날 괴롭히는 게 화가 나서 언니들과 의논했지.
인간처럼 살고 싶은데 애들이 돌아가면서 괴롭히잖아.
빵 셔틀에, 갈취에, 폭행에
내가 그렇게 맞는 건 참을만했는데 셋째가 나 대신 학교를 갔을 때 팔에다 칼집을 냈더라고
다음날 내가 가니 팔에 상처가 없어졌다며 다시 칼집을 내고…
그때 생각했지
아 쟤들은 인간이라 우리 쥐들을 이유 없이 미워하고 혐오하는구나..
그럼 이제 미워할 이유를 주어야겠다고 말이지.
그래서 언니들에게 부탁했어
쟤네들 잡아먹고 껍질은 다른 동생들 주자고…
알다시피 우리 일족은 사람 가죽만 씌우면 그 사람 흉내 내는 건 일도 아니잖아?
안 그래?
그렇게 사람가죽을 씌운 애들이 몇이더라?
이젠 지겨워서 못 샐 지경이야.”
재영은 이미 다희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를 정도로 패닉이었다.
그 순간 다희일행의 눈빛이 바뀐다.
더는 기다릴 수 없는 공복감처럼 군침을 삼킨다
대뜸 다희 중 한 명이 묻는다.
"근데 사슴피는 어떤 맛이야?
마시면 파워업 한다는데 정말이야?
이제 더 참을 수 없을 거 같아..."
그렇게 본래 쥐의 모습으로 바뀌어 달려드는 순간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왜 이거 왜 쪼그라들어?
뭐야 뭐야?"
이내 찢어진 결계에서 고양이 무리들이 나온다
엄청난 수의 고양이들이 튀어나와 쥐들을 잡아먹는다.
잡아먹히고 살점이 찢어지는
고양이들에겐 최고의 뷔페이고 쥐들에겐 끔찍한 살육의 현장이었다.
결계는 찢어졌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남지 않았다
그냥 흰 도화지 같은 넓디넓은 하얀색의 공간과 암사슴 한 마리가 있을 뿐이다.
“감사합니다 묘화님…
우리 아이를 살려주셔서
재영이가 방금 의식을 찾았답니다.”
묘화옆엔 사슴일족의 영수 녹영이 있었다
묘화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을 이었다.
“그날 내가 신목 아래서 바둑을 둘 때 자네가 땀범벅이 되어 손녀를 살려달라 했었지.
그때 난 녹영 자네와의 계약밖에 관심이 없었네…
잃어버린 나의 주술과 자네의 혈옥…
하지만 역시 혈옥보다 햄버거가 좋으니…”
그녀는 담배를 길게 빨아들이곤, 한숨을 쉬듯 연기를 뱉었다.
“회색쥐일족은 첨엔 그 아이의 피가 어떤 힘을 가졌는지 몰랐을 거야.
사슴일족을 상대로 금품갈취나 빵셔틀을 한다는 게 얼마나 즐거웠겠어?
그렇게 시작된 괴롭힘이 쥐일족에겐 하나의 놀이이자 유흥이었겠지.
그러다 이 아이가 영수인 자손인 게 드러난 거야.
영수의 피가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는 이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 아이를 옳아 매기 위한 반사의 주술…
실은 재영이가 당한 것인데 마치 쥐 일족이 당한 것처럼 그 애에게 정신적 대미지를 줬어.
그 애의 영기를 잠식함으로써 한결 더 수월하게 기를 뺐었겠지.
그렇게 익은 그 아이의 피맛을 보곤 알았겠지.
무한한 힘의 성장을 말이야.
독점하고 싶었을 거야
12 신수인 쥐란 이름은 얻었으나 자수 일족을 제외하곤 모두가 더럽게 봤을 테니…
이 애를 가두어두고 그 영기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힘을 키우고 싶은 마음…
그 욕망을 어찌 모를까?
하지만 모든 건 과유불급…
쥐 일족의 주술이 재영이의 심연에 다다랐을 때 나는 자네의 도움으로 저들을 멸 할 수 있었네.
다행스러운 건 오래전 내가 잃어버린 주술을 쥐 일족에게서 되찾고 더불어 퇴치할 수 있었던 것이지.
이로써 난 사주의 결계진을 되찾았고
자넨 손녀의 목숨을 되찾았으니 우리 모두에겐 이익이 아닐 수 없지.”
그녀는 담배를 비벼 끄곤 계단을 내려갔다
“녹영. 다음번엔 좀 더 비싼 수제버거를 부탁하네…”
녹영은 웃으면서 묘화의 뒤에서 예를 올렸다.
병원문을 나선 햇빛은 뜨거웠다.
주차장 앞에 푸들의 모습으로 쿠베라가 묶여 있다.
그런데 별로 반가워하진 않는다.
아마 재영의 꿈속에서 하윤으로 연기만 시킨 게 불만이 큰가 보다.
잠잠하게 지내던 일족들이 갑자기 분주하게 움직이는 느낌이다
누군가의 분노처럼 새빨간 노을이 묘화의 눈에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