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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to owl Sep 25. 2023

환혼술... 에필로그.

묘화이야기. 여덟 번째...

임오년(1882년), 어느 초가집에서 아들로 보이는 듯한 이가 노인에게 죽을 떠 먹이고 있었다.

죽이라고 해봤자, 쌀 뜬 물처럼 멀건, 건더기는 보이지 않는 그런 음식이었다.

노인은 한 모금 삼키더니, 이내 기침을 하며 죽을 토해냈다.

젊은이는 이내 노인의 입가를 닦아준다.


“콜록콜록, 아버지는 변함없는 모습이시네요. 전 이렇게 늙고 병들었는데, 제 어릴 적 모습 그대로이십니다…”

쓰러져가는 초가집 방 한편의 그곳엔 70은 넘은 듯한 노년의 여성과 30대의 젊은 남성이 있었다.

그들의 대화만 본다면 부녀의 대화였지만 겉모습은 이와 반대되는 상황이었다.

“푹 쉬거라, 내일은 내 약을 구해오마.”

아버지라 불리는 젊은 남성은 늙은 여인의 잠자리를 보살피고는 방을 나왔다.

계절은 늦봄을 지나 여름이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날 그는 마을 장터로 발을 떼었다.

군인으로 일하는 그였으나 몇 개월째 쌀을 받지 못해 장터에서 짐꾼으로 약간의 푼돈을 받았던 터였다.


하지만 이미 장터엔 그와 같은 사람이 부지기수라 그는 허탕을 친 채 구석 공터 나무 아래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따라 낯빛이 어둡구려, 최별장…”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건다

족제비 일족의 ’ 주약’이 그의 뒤에서 웃으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최별장이라 불리는 젊은 사내는 심드렁하게 ’ 주약’을 보곤 이내 시선을 사람들에게 꽂았다.


서양식 복식을 말끔히 차려입은 ’ 주약’은 최별장 옆에 아무렇지 않게 앉았다.

“내가 준 육신이 맘에 들지 않소?

보통의 육신보단 튼튼하고 나이도 덜 먹고 여러모로 쓸모가 많을 텐데…”


그 말에 최별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가 요괴인걸 알았다면 그 덫에서 구해주지 말걸 그랬소.

그 탓에 난 몇십 년을 딸애와 산속에서 살며 이리저리 떠돌아다녔으니 말이오.


무슨 억화심정으로 나에게 이런 몹쓸 저주를 건 것이요.”

최별장의 푸념에 ’ 주약’은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그건 당신의 마음먹기 나름 아니겠소?

이미 당신의 육신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주술을 다루고 가볍게나마 삼라만상을 읽을 수 있소.

더군다나 나의 가호를 받은 몸이니 풍신이란 소리를 들어도 부족함이 없을터…

어찌 인간의 삶에 연연한단 말이요.


지금 칠순을 넘긴 딸도 한때 당신이 사모했던 여인의 딸이지 당신의 혈육도 아니지 않소?”


그 말에 최별장은 ’ 주약’을 노려봤으나 별 수가 없음을 알곤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 주약’은 최별장을 일으켜 세우곤 근처 주막으로 향했다.

“밥이라도 푸짐히 먹어야 내가 부탁할 일이라도 하지 않겠소?

자 많이 드시오.”

최별장은 일이란 말에 귀가 솔깃했다.

“설마 부정한 일이라도 시킬 생각이오?”

최별장은 ’ 주약’이 건네는 호의가 몹시나 부담스러웠다.


’ 주약’은 가는 눈을 더 가늘게 뜨며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내 어찌 은인에게 부정한 일을 부탁하겠소.

인간의 입장에선 어렵지 않은 일…

하지만 동물의 입장에선 어려운 일이 맞소.”


그는 최별장에게 동물을 사냥해 달라고 했다.

인간의 모습으로 둔갑하여 인간행세를 하는 동물들…

그들이 인간사회를 좀먹고 변질시킬 거라 했다.

’ 주약’은 단지 숲의 주민으로서 이 변질 되는 질서를 바로잡고자 함이라 최별장에게 말한 것이다.


“인간으로 둔갑한 동물들의 욕심으로 인해 곧 큰 재앙이 닥칠 것이오.

그 욕심으로 죽어나는 건 인간들이겠지.

내 사례는 후하게 쳐주겠소…”

’ 주약’의 제의에 최별장은 몹시나 흔들렸다.


그는 막걸리를 동이째 들이켰다.

그리곤 요란하게 내려놓으며 말을 했다.

“좋소. 내 그 일을 하리다. 대신 돈 대신에 우리 딸 좀 살려주시오.

그럼 내 아무 군말도 안 하고 명을 따르리라…”


딸을 살려달라는 말에 ’ 주약’의 눈에 웃음기가 가셨다.

그리곤 서늘하게 최별장을 응시했다.

“최별장… 그대 역시 욕심 많은 인간이구려…

이미 그대의 딸은 생이 다해 저무는데 그것을 돌려달란 말씀이시오?”

’ 주약’은 턱을 만지며 살짝 불쾌한 듯한 목소리로 최별장의 반응을 살폈다.


“내 그대에게 가호를 받은 뒤 그쪽 세계의 섭리도 조금은 아오…

환혼… 우리 딸애에게 새로운 육신을 주시오…”

급히 마신 막걸리 탓인지 아니면 그의 격한 감정 때문인지 최별장은 눈에 핏기가 섰다.


’ 주약’은 짧게나마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앞에 놓인 막걸리를 조금 마셨다.

그의 표정은 조금 전의 생글생글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었다.

“취기가 올라 즉흥적으로 자네의 부탁을 들어준 걸로 아시오…

단 환혼의 재료는 그대가 모으는 걸로…

물론 그 무대와 소문은 내가 만들어 주겠소…

사실 환혼단은 무척 귀한 데다 높은 분의 수요가 있으니…

자네 딸의 남은 생명을 고려한다면 지금 급히 움직여야 할 것이오…

마침 딱 좋군!!!

조만간 사람과 동물의 피가 대량으로 생길 테니 만들기 딱 좋아…”

최별장은 그렇게 ’ 주약’과 계약의 인을 맺었다.


그는 그때 생각하지 못했다.

그 수많은 피로 어떻게 환을 만드는지, 어떤 술식으로 엮어내는지 말이다.

’ 주약’의 사냥개로 동물을 죽이는 동안 그는 점차 자신이 누군지 망각했다.

기억하는 건 하나…

딸아이의 새로운 육신…


“정신이 드냐. 창혁아”

녹영의 영맥에서 정신을 잃은 남형사는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서구 쪽 총경인 그의 삼촌이었다.

그가 몸을 일으켜 둘러보니, 그들의 영지인 경대산 기슭아래였다.


“괜찮냐옹?” 창가에 햇빛을 쐬는 고양이가 이쪽은 보지도 않고 안부를 물었다.

고양이 신 ’ 용목’…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남형사의 삼촌은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용목 님 덕분에 제 조카가 살았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인간의 모습일 땐 위엄 있는 그가 너구리 본연의 모습일 땐 저렇게 굽신거리니 남형사는 괜히 짜증이 났다…


’ 용목’은 고개를 돌려 남형사를 쳐다봤다.

무엇이든지 꿰뚫어 볼 듯한 황금빛 눈으로 남형사를 훑고는 이내 하품을 한다..


“묘화님이 부탁했다냥~~, 그렇기에 노란 꼬리 너구리 자네를 도운 거고… 그것뿐이다냥…”

묘화란 말에 남형사는 그만 부화가 치밀어 올랐다.


“묘화가 왜 우릴 도와준 겁니까?

어차피 구미님께 두 번이나 진 존재 아닌가요?

우리처럼 힘없는 족속이니까 받들어 모실 뿐이지,

결국  구미님께 목숨 구걸하는 같은 처지주제에!!!”


그의 짜증 섞인 고함에 ’ 용목’은 주력으로 그를 바닥에 눕혀버렸다.

침대가 부서지고 남형사는 거의 숨을 못 쉴 지경이었다.


그의 삼촌은 안절부절못해 쩔쩔맬 뿐이다.


“너, 노란 꼬리 너구리…

너의 목숨은 자네 삼촌이 자네의 신변을 걱정해 묘화님께 부탁드렸기에 지금 투덜거릴 수 있는 거다냥~~


자네가 ’ 주약’을 만나 어떤 얘길 나눴는지 관심 없다냥~~

결국 ’ 주약’은 자네를 재료정도로 생각한 것뿐…

그런 자네를 우리가 몰래 지켜봤기에 망정이지, 자칫했으면 그냥 고깃덩이가 될 뻔한 거다냥~~”

그는 불쾌한 목울림으로 남형사를 꾸짖곤 이내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남형사도 알고 있다.

환혼술의 정보를 얻긴 했지만 그 모든 건 ’ 주약’에게서 나온 거고 ’ 용목’이 아니었으면 알지도 못할 그곳에서 죽었을 거란 것도 말이다…


한편으론 그 인간 역시 ’ 주약’의 꾐에 빠져 그런 곳에서 동물들을 사냥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말이다…


“이것이 환혼의 최정수…

자네 아비의 혼으로 만든 거지…”

’ 주약’은 청계천 벤치에서 묘령의 여인과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여인은 모자를 쓰고 후드티를 눌러쓴 탓에 얼굴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 주약’이 건네는 환에 상기된 듯 한 모습이 보였다.

“이제 이 환을 섭취하면, 다른 몸을 구할 필요는 없을 거야… 주력은 자네 아비보다”

’컥’…

’ 주약’이 목을 잡혔다…

주변에 사람들이 놀라 그 둘을 웅성거리며 쳐다본다.


“그 사람은 내 친아버지가 아닌 걸 알면서 ’ 아비, 아비’ 그러는가? ’ 주약’…”

그녀의 말에 약간은 짜증이 섞여있었다.


“아니 그것보다 이렇게 사람 눈이 많은 데서 날 죽이기라도 할 셈인가?”

’ 주약’은 조금은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본래의 생글거림이 얼굴에 퍼졌다.

조금만 힘을 더 주면 ’ 주약’의 목은 나뭇가지처럼 부러질 듯했다…

하지만 그 여성은 그럴 생각은 없는지 ’ 주약’을 풀어주곤 사람들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 최별장… 자네 딸은 자네 소망과는 다른 삶을 살지 모르겠네 그려…

자네 목숨으로 만든 환혼…

난 약속을 지켰네…’

’ 주약’은 붉게 멍든 목을 만지작 거리며 그 역시 인간들 틈 속에 스며들었다…


’ 주약’이 우리에게 거래를 제안했네.

최근에 상급의 주문하나를 완성한 모양이야.

하지만 금술이니 이리 은밀히 말했겠지…


그리고 주술을 만들면서 최상급의 환혼단도 하나를 만들었단 소문이 돌던데 ’ 주약’은 갖고 있지 않은 듯해…


여차하면 ’ 주약’도 처리하는 게 좋지만 구미랑 담비의 ’ 귀연’이 봐주고 있어서 처리가 쉽진 않을 거야…


일단은 거래에 응하는 걸로 하고, 차후를 도모해야지.

어차피 구미나 묘화 그리고 나머지 영수 넷도 다 없애야 하겠지…


다음에 또 연락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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