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지진을 예측할 수 있을까?
35개월인 우리 아들은 지진 마니아이다. 재난을 발생시키는 지진에 마니아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거리낌이 있지만, 그만큼 최근 지진 이야기를 자주 한다. 몇 달 전부터 지진이라는 것을 어린이집에서 배워온 이후, 까먹을만하면 지진 이야기를 꺼내는 우리 아들.
첫 시작은 몇 달 전으로 돌아간다. 혼자서 '흔들흔들' 소리를 내며 몸을 기우뚱거리면서 놀고 있는 우리 아들. 또 어린이집에서 동작을 배워왔구나 싶어 내버려 두었더니, 갑자기 "지진이야"를 외친다. 그리고 하는 말.
지진 나면 책상 밑에 숨어야 해!
그러면서 책상 밑으로 달려가 숨는 게 아니겠는가. 알고 봤더니 그날 어린이집에서 지진 대피 훈련을 했다고 한다. 그게 재밌었는지, 혼자 흔들흔들하며 지진이 났다고 외치고는, 대피 과정까지 복습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포인트. 우리 아이에 따르면 지진 발생 시, 절대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 아이는 지진이 나면 계단으로만 가야 한다고 몇 번을 강조한다. 장난기가 발동한 아빠. 아빠는 엘리베이터 타고 갈 거라고 하니까, 반 울면서 큰소리친다.
지진 나면 엘리베이터 타면 안 돼! 삐! 엑스!
(요즘 안 된다고 할 때 꼭 삐! 엑스! 를 손동작과 같이 한다.)
이후 아이는 자주 지진을 언급한다. 얼마 전 육교를 같이 걸어가는데, 지진 나면 육교 무너진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겠는가. 엄마는 아빠를 흘겨보며 아이에게 뭘 알려줬길래 맨날 지진 이야기 하냐고 뭐라 한다. 아빠는 그저 억울할 뿐이다.
지진은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이웃나라 이야기로 느껴졌다. 하지만 점점 지진의 공포가 다가오고 있다. 지난 11월 30일 새벽,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4.0 지진으로 전국은 단잠에서 깨어났다. 다행히 언론 보도에 의하면 단 1건의 피해도 없었다고 한다. 특히, 2016년과 17년 규모 5가 넘는 지진이 근방에서 발생했었기에 불안감이 있었으나 다행히 별 여파 없이 지나갈 모양이다. 사소한 피해로는 새벽에 울려 퍼진 재난 문자 알림음으로 잠을 설쳤다는 것 정도 아닐까? 그럼에도 조금씩 늘어나는 지진 뉴스에 불안감이 더해진다.
사실 아이가 지진을 좋아하는 건 아빠를 닮아서일 수 있다. 어린 시절 집에 있던 자연 다큐 비디오를 정말 많이 봤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본 것은 '지진', '화산', '태풍' 이렇게 자연재해 3 대장이었다. 자연의 압도적인 힘이 잘 드러나는 지진과 화산의 다큐멘터리를 보며 경외심을 느끼면서 지구과학에 푹 빠지게 되었다. 만약 내가 진학한 대학에 지구과학 관련 학과가 있었음 나의 직업은 완전히 바뀌었을 정도이다. 실제로 고등학생 때도 지구과학 경시대회에 자주 출전하여 상을 받기도 했으니.
그렇기에 여전히 지진은 관심 대상 중 하나이다. 물론 일본 사람들 만큼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일본은 1923년 관동 대지진, 1995년 고베 대지진,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며,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하였다. 또한 일본에서의 지진은 우리에게도 직접적인 피해를 준다. 관동 대지진 당시 동경에 거주하던 수많은 조선인들이 억울하게 학살당하였고, 동일본 대지진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유발하여 아직도 바다에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다.
그런 일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지진은 바로 난카이 대지진(南海大地震)이다. 일본의 시코쿠 남부 해안에서 약 100 ~ 150년 주기로 발생하는 대지진으로, 발생할 때마다 규모 8.0 정도에 달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녀석이다. 일본 지진조사위원회는 매년 초 지진 발생 확률에 대해 발표를 하는데, 난카이 대지진의 발생 확률은 무려 80% 이상이다. 언제가 될지 특정할 수는 없지만 조만간 난카이 대지진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해당 대지진 발생 시, 동일본 대지진 이상의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 일본 정부는 예상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 토목학회는 난카이 대지진 발생 시 경제 피해규모가 1410조 엔에 달해, 일본이 세계 최빈국이 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았다. 그야말로 일본 최고의 화약고인셈이다.
이러한 대지진이 발생하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래도 최선은 다해봐야 할 노릇. 가장 좋은 해결책은 지진이 발생하기 전 "예측"하는 것이다. 지진이 언제 어디서 벌어질지 알 수만 있다면 사람들이 대피할 수 있으니 인명 피해는 최대한 막을 수 있다.
여기서 예측이란 키워드를 보면 자연스레 하나의 키워드가 더 떠오를 것이다. 바로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의 주요 활용 분야 중 하나가 예측이다. 그렇다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이 지진을 예측할 수는 없을까?
2019년 미국의 지구물리학자 폴 존슨(Paul Johnsom)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머신러닝을 이용하여 지층의 느린 미끄러짐(slow slips) 현상이 지진의 전조현상이라는 결과를 발표하며 주목을 받았다. 지진을 예측하는 것은 힘들지만 그 전조 현상인 느린 미끄러짐 현상 발생은 예측이 가능하기에, 이를 기반으로 대지진 발생 가능성을 계산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2022년 10월에는 스탠퍼드 에너지 환경과학대학의 연구원 무사비(Mousavi)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이 AI를 사용해 지구의 변화를 측정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역시나 이들 역시 미세 신호에 주목하였다. 미세 지진 결과들을 DB화 시키고 이를 통해 지진 단계의 정확한 타이밍을 파악하는 모델을 개발한 것이다. 연구에 참여한 그레고리 베로자(Gregory Veroza) 박사는 "소규모 지진에 대한 모니터링 개선을 통해 깊고 3차원적인 단층 구조를 더 많이 파악할수록 미래에 나타날 지진을 더 잘 예측할 수 있었다"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이 지진 예측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기는 했지만, 실질적인 예측까지는 갈 길이 멀다. 지진이 발생하기 전단계인 단층의 움직임이나 미세 지진까지는 예측 가능하지만, 실제 지진을 촉발하는 본격적인 단층 파열 과정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 더 많다. 많은 과학자들은 지진을 발생시키는 단층의 본격적인 파열은 무작위성 요소가 강하다고 보고 있다. 이 말을 다시 해석해 보면,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과학자들은 지진을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은 불가능에 도전하고 있다. 큰 지진에 대한 예측을 몇 년에서 몇 달, 몇 주 단위로 앞당기기 위해 지금도 연구 중이다. 그들의 노력이 결실을 거둬 다가올 대지진을 예측하는 방안이 마련되길 바라본다.
얼마 전 아이와 단 둘이 집에 있을 때 이야기이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거실에서 우당탕탕 큰 소리가 난다. 놀라서 나와보니, 거실 책장의 높은 곳에 있는 책을 꺼내려다 책장에 있는 책을 모조리 쏟아버린 것이었다. 이미 거실은 책들이 모조리 쏟아져 나온 상황. 아이에게 놀라서 물어본다. 왜 이렇게 된 거냐고. 그러니 아이의 답변
지진 나서 책 쏟아졌어
자기가 책을 쏟았다고 하면 혼이 날까 봐 지진 탓으로 돌린다. 이제 남 탓의 범위가 지진으로까지 넓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