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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운 Feb 21. 2024

댐을 사랑하는 어린이

전기도 사랑하는 어린이

지난 주말, 오랜만에 온 가족(그래봤자 3명)이 충북 제천에 위치한 리솜 포레스트에 다녀왔다. 이번 여행에서의 주목적은 리조트에서의 휴양이었지만, 또 하나의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댐(dam)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제천의 옆 동네인 충주에는 충주댐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남한강 위에 건설된 충주댐은 관광지로서 역할을 하는 곳이긴 하지만 굳이 멀리서 시간을 내어서까지 찾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이 충주댐을 방문하게 된 이유는 당연히 37개월 차 악동 때문이다.


최근 과학책을 읽으며 왕성한 호기심을 발산하고 있는 우리 집 아들은 최근 전기에 푹 빠져있다. <전기가 사라졌어>라는 책을 매일 읽으며, 전기가 만들어지고 집으로 전송되는 과정에 큰 감명을 받은듯하다. 특히, 책에 나오는 커다란 댐에서 전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는 우리 아들. 그를 위해 우리 가족은 리솜 포레스트로 쉬러 가는 김에 충주댐을 방문하기로 한다.


충주댐은 명성답게 아주 거대했다. 남한강의 홍수를 조절하고, 물을 공급하여 농작물 생산에도 큰 역할을 하는 충주댐. 특히, 충주댐은 수력 발전을 통해 전기도 생산을 한다. 우리 아이가 충주댐을 방문하는 목적도 바로 이것이다. 책에서 본 수력발전의 현장을 직접 살펴보고, 여기서 만들어진 전기가 바로 옆에 보이는 송전탑을 통해 수많은 가정과 공장에 공급된다는 사실에 아이는 매우 흥미를 가진듯하다. 그리고 엄마, 아빠와 댐 위를 걸으며 물이 어떻게 저장되고, 어떻게 댐 밖으로 흘러나가는지도 함께 고민해 본다. 우기가 아니라 방류 장면을 보지 못해 아쉽긴 했지만, 책에서만 보던 댐을 직접 본 것만으로도 여행 목적은 100% 달성했다.


충주댐에서 악동의 모습





탄소 배출 없이 전기를 만들 신기술, 핵융합


우리 아이가 보는 책에서 전기를 만드는 방법으로 소개된 수력 발전은 최근 화두인 탄소 배출 측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하지만 전기를 생산하는 양 자체가 현대의 폭발적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결국 탄소를 적게 배출하면서 인류가 요구하는 대량의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가장 의존하는 방식은 원자력 발전이다.


원자력 발전은 핵분열 기술을 이용한다. 핵분열은 우라늄이나 플루토늄과 같이 무거운 원자의 중성자가 분열하는 과정이다. 무거운 원자핵이 두 개 이상의 가벼운 원자핵으로 분열하는 과정에서 대량의 에너지가 방출되는데 이를 폭탄으로 활용할 수도 있고,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핵분열을 기반으로 하는 원자력 발전은 1950년 이후 상용화가 되었으며, 대량의 전기를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의 가장 큰 장점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발전소에 비해 탄소 배출이 적다는 점이다. 하지만 방사성 폐기물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원자력 발전소 제어 실패는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와 같은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진다는 크나큰 단점이 있다.


원자력 발전소를 둘러싸고 크고 작은 갈등들이 계속되면서 자연스레 물리학자들이 집중한 것은 바로 핵융합 발전이다. 핵융합 발전은 수십 년 동안 물리학자들의 꿈이라 할 수 있다. 핵융합은 우리가 매일 볼 수 있는 곳에서 지금도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그곳은 바로 태양이다. 태양 내부의 수소가 충돌하여 헬륨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방출이 된다.


이 에너지를 활용해 보자는 것이 바로 핵융합 발전이다. 태양 내부의 핵융합 과정을 지구에서 통제가능한 방식으로 구현한다면, 무제한에 가까운 연료원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원자력 발전에서 요구하는 우라늄이나 플루토늄과 같이 비싼 원료가 아닌 수소를 이용하기 때문에 원료가 풍부하고 저렴하다. 그리고 방사성 폐기물도 거의 발생하지 않고, 핵분열과 달리 대규모 사고 위험도 극히 낮다. 이론적으로는 핵분열 발전이나 화석연료 기반 발전 대비 훨씬 깨끗하고 효율적이다.


핵융합과 핵분열 비교 (출처: 연합뉴스)





핵융합 발전의 난제 해결에 도움을 주고 있는 AI


문제는 핵융합을 구현하기가 너무나도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 간 수십억 달러가 넘는 연구비가 투입되었지만, 그 누구도 상용화를 할 수 있는 핵융합로를 건설하지 못했다. 가장 큰 기술적 난관은 이온과 전자로 이루어진 기체, 플라스마(plasma)를 원자로 안에 가두고 이를 다루는 방식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도전장을 내민 곳이 있으니 그 유명한 영국의 AI 회사 딥마인드(DeepMind)이다. 딥마인드는 우리에게 알파고로 유명하지만, 단백질 구조 분석을 위한 알파폴드(AlphaFold) 등 과학 발전을 가속화하기 위한 연구에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딥마인드는 스위스의 로잔연방공과대학, 스위스 플라스마 센터와 협업을 통해 핵융합로 내 플라스마 제어를 위한 심층강화학습 알고리즘을 개발하였다. 2022년 네이처(Nature)에 발표된 이 연구는 핵융합 발전의 실용화에 기여할 잠재력이 있는 연구로 평가받고 있다.


연구팀은 원자로 내 플라스마 제어를 위해 시뮬레이션을 통해 AI 알고리즘을 학습하고, 인공지능은 원자로 내에서 자석을 조절하여 플라스마를 성공적으로 제어하였다. 인공지능 시스템을 활용하면서 원자로 내 다양한 조건에서 실험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고, 인간이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제어 방식을 학습하여 더 많은 연구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이들의 연구를 통해 핵융합 과정의 이해도 향상이 가능할 것이며, 상용화 가능성 있는 핵융합 원자로 개발 속도를 높일 것으로도 기대하고 있다.


AI 하면 떠오르는 인물 중 하나인 오픈AI의 CEO 샘 올트먼 역시 핵융합과 관련이 있다. 기업가이면서 투자가이기도 한 올트먼은 다양한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그가 가장 많이 투자한 기업은 바로 핵융합 발전을 통해 전기 에너지를 생산하는 스타트업인 헬리온 에너지(Helion Energy)이다. 그는 헬리온에 2021년 무려 3억 7,500만 달러를 투자하였다.


샘 올트먼을 비롯해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5억 7,000만 달러(약 7,600억 원)에 달하는 거액의 투자를 유치한 헬리온은 5년 후에 세계 최초의 핵융합 발전소를 가동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밝히고 있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에 전력을 제공하겠다는 계약도 체결하였다. 헬리온의 계획대로 진행이 된다면 핵융합 발전소를 워싱턴주에 건설하여 2029년까지 50MW의 전기를 만들어 마이크로소프트에 제공할 수 있다.


헬리온의 핵융합 발전기 '폴라리스'


물론 이를 비관적으로 보는 학자들도 많다. 아직 해결해야 할 기술적 난관이 산적해 있다. 또한 규제 문제도 발목을 잡는다. 아직 한 번도 실현되지 못한 기술이라 상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핵융합이라는 매력적인 기술이 가진 막대한 잠재력에 주목해야 한다. 핵융합이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지속 가능한 에너지 공급이라는 측면에서 혁명적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용화 과정에서 인공지능의 역할 역시 기대가 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전문 지식을 보완하며 융합 연구가 진행된다면 수많은 난제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딥마인드의 공동 설립자이자 CEO인 데미스 하사비스의 말을 마지막으로 인용해 본다.


지난 2년 동안 딥마인드는 과학 발전을 가속화하고 생물학, 화학, 수학 및 현재 물리학 전반에 걸쳐 완전히 새로운 연구 길을 열 수 있는 AI의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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