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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운 Mar 25. 2024

야구가 하고 싶어요

평생 야구를 하는 방법

야구를 좋아하는 한 소년이 있었다.


어느 초여름날, 그날도 동네 공터에서 친구들과 야구 놀이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해가 뉘엿거리고 친구들은 하나 둘 저녁을 먹으러 집에 간다. 혼자 남은 소년은 아직도 아쉬움이 남는지 야구 배트를 휘두르고 있다. 그때 한 아저씨가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걸어온다.


? : 야구 좋아하니?

소년 : 네! 야구 좋아해요!

? : 혹시 어느 초등학교 다녀?

소년 : 수영초등학교 3학년이요.

코치 : 아저씨가 수영초 야구부 코치인데, 

          방망이 잘 휘두르네.

소년 : 우와 감사합니다.

코치 : 엄마한테 가서 야구부 들어가도 되는지 물어봐. ^^

* 대화 시점에는 수영국민학교였지만 수영초로 변경 :)


신이 난 소년은 집으로 한달음에 뛰어간다. 그러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엄마에게 이야기한다. 야구부 선생님이 야구부 들어오라고 했다고. 그러자 엄마는 쿨하게 말씀하신다.


"공부나 해"


현실은 차갑다.




당연히 위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다. 이후 중, 고등학교에서 체육 시간에 받은 실기점수를 보면 야구 안 하기를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엄마의 혜안이 빛났다. 그럼에도 한 번씩 그 저녁의 골목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나는 것은 내가 나온 초등학교 때문이다.


부산 광안리에 위치한 수영초등학교는 야구 명문 초등학교이다. 초등학교가 무슨 명문이냐 하겠지만, 해봤자 프로 선수 몇 명 있겠지 하겠지만. 가장 유명한 수영초 졸업 야구선수는 바로.


"이대호"와 "추신수"이다.

두 선수 이외에도 프로에 진출한 선수가 많으며, 전국 대회 우승 단골 학교이다.


수영초 야구복 입고 있는 학교 선배님들




이제 운동신경이 없어 직접 야구를 즐기지 못한 사람들도 야구 산업에 뛰어들 수 있는 길이 있다. 바로 야구를 '데이터'로 분석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세이버매트릭스(Saber-metrics)라 부른다. 세이버메트릭스는 야구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연구 방법으로 야구 데이터에 대한 수학적, 통계적 분석을 통칭한다. 최근에는 머신러닝, 딥러닝 등 인공지능 기술들까지 결합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세이버매트릭스는 야구 마니아들의 전유물이었지만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머니볼>과 남궁민 주연의 드라마 <스토브리그>로 대중들에게도 친숙한 개념이 되었다.


세이버매트릭스가 알려진 계기


모든 스포츠는  데이터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많은 스포츠 중 야구 데이터에 사람들이 가장 먼저 집중한 이유는 야구의 이벤트 하나하나가 통계 데이터로 남기 때문이다. 최초로 기록된 통계화된 야구 데이터는 무려 1903년 3월 23일 있었던 뉴욕과 워싱턴 경기의 박스스코어이다.


본격적으로 야구 통계가 주목받게 된 것은 영화 <머니볼>의 실화 주인공, MLB팀 오클랜드의 단장 빌리 빈 덕분이다. 당시 돈이 없는 팀을 이끌던 빌리 빈은 저평가되어 있던 출루율과 OPS(출루율 + 장타율)에 주목한다. 소위 말하는 가성비 선수를 잔뜩 수집한 오클랜드는 돌풍을 일으키고, 빌리 빈의 '머니볼' 역시 주목받기 시작한다.


2010년대 이후부터는 세이버 스탯의 시대가 된다. 과거 각광받았던 타율, 홈런보다 WAR, WPA, WRC+와  같은 통계 수치가 더 주목받는다. 빌리 빈 단장은 일개 세이버매트리션(세이버매트릭스를 다루는 통계덕후학자)이던 폴 디포디스타를 부단장으로 영입하며, 데이터 분석 역량을 강화한다. (영화 머니볼에도 나오는 장면이다) 보스턴 레드삭스를 이끌며 '밤비노의 저주'를 깬 걸로 유명한 테오 앱스타인 단장은 세이버 매트리션을 적극 채용한다. 소위 말하는 야구 덕후들이 주류로 편입되는 순간이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에 나오는 세이버매트릭스


이제 모든 MLB 팀들 뿐만 아니라 한국 프로야구의 팀들도 데이터 분석만을 전담으로 하는 조직을 갖추고 인재들을 영입하고 있다. 과거 야구팀의 직원들은 선수 출신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야구팀의 분석 조직에는 야구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입사하고 있다. 미국 아이비리그 명문대학을 졸업한 유능한 인재들이 스카웃되어 야구팀에서 일하고 있다. 연봉도 상상 이상이다. 그야말로 덕업일치가 가능해지고 있다.


많은 야구팀들은 단순 통계 활용을 넘어 선수의 모든 움직임을 분석해 맞춤형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다. 육안으로 측정이 힘든 데이터들을 수집해서 훈련과 실전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트랙맨이라고 하는 투구 분석 시스템을 통해 투수들을 훈련시키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과거에는 단순히 볼 끝이 좋다로 끝내던 것이, 이제는 상하좌우 무브먼트, 회전수를 측정하여 타구를 분석하고 있다. 타격 역시 마찬가지로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벌어지고 있는 '발사각 혁명'이 대표적이다. 배트로 공을 맞춰 공을 띄우는 정도인 '발사각'을 높일수록 장타로 이어져 점수를 낼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메이저리그의 많은 타자들은 공을 띄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트렌드는 국내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빅데이터 야구 시대가 열린 지 오래다


물론 세이버 시대가 되며 아쉬움도 있다. 찐한 올드스쿨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지금의 야구가 너무 야박해 보인다. 이기기 위해 수비 위치를 괴상망측하게 조정하고, 선발투수는 한 이닝만 던지고 내려가는 오프너 전략은 또 뭔가 싶다. 게다가 세이버매트리션들이 고액의 연봉을 받고 야구팀에 들어가게 되며, 더 이상 세이버매트릭스는 덕후들의 전유물이 아닌 야구팀들의 일급비밀이 되어버렸다. 정보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럴수록 덕력이 샘솟는다. 야구도 좋아하고, 데이터도 그럭저럭 다룰 줄 아는 나이기에 야구 데이터 분석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은 굴뚝과 같다. 먹고살기 위한 연구를 어느 정도 마무리하면, 1~2년 뒤 테뉴어(tenure)를 받아 정교수로 승진하게 되면 취미 삼아 야구 데이터를 분석하는 작업을 시작해 봐야겠다.


운동신경이 없어 야구의 꿈을 접은 소년이,

다시 야구의 매력에 빠지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2024년 설날이었다.


광안리에 살던 야구를 좋아하던 그 소년이 어느덧 장성하여, 5살 아들을 데리고 수영초등학교를 찾았다. 집이 이사를 가며 그간 수영초에 갈 일이 없었는데, 우연히 들른 학교는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열심히 뛰어놀았던 모래 운동장은 이미 야구부를 위한 잔디 훈련장으로 바뀌어있다. 학교 자체가 야구부를 위한 공간으로 변모해 있다. 그리고 야구부 체육관에는 자랑스러운 선배, 이대호와 추신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래도 설 연휴 기간이라 운동장이 오픈되어 있어, 아이와 잔디 운동장에서 한참을 뛰어논다. 야구부 훈련을 하다 망가진 건지 실밥이 터진 야구공도 굴러 다닌다. 그 공을 주워서 던져도 보고, 베이스를 뛰어도 본다. 아이는 야구 놀이하는 것이 너무 재밌는지 연신 싱글벙글 뛰어다닌다.


그렇게 한참을 뛰어놀고 교문을 나서는데,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한 야구소년이 야구복을 입고 방망이를 들고, 가족들과 야구 연습을 하러 학교에 들어선다. 그걸 본 우리 아들 왈,


(야구 선수를 가리키며)

저거, 야구선수야?
나도 야구선수하고 싶어!


지나가다 우리 아들의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빵 터진다. 호칭을 버릇없이 하긴 했지만, 아직 지시대명사에 약한 어린이니 모두가 이해하고 넘어간다. 야구복 입은 사람을 처음 본 아이의 반응이 웃기기도 하고, 야구선수 하고 싶다는 말에는 옛날 생각도 난다.


그렇게 아빠와 아들의 추억 여행은 일단락된다.





지난 설 연휴 이후, 적어야지 하면서도 계속 미뤄뒀던 글을 KBO 개막 기념에 맞춰 적어봅니다. 역시나 우리의 롯데 자이언츠는 개막 2연패를 당했네요. 6-0으로 지던 경기를 9회초 2아웃부터 6점을 따라가 동점을 만들기에, 올해는 뭔가 바뀌었나 했더니.. 9회말 선두타자에게 끝내기 홈런 맞고 게임 오버. 역시 롯데는 롯데다라는 모 CEO의 말이 떠오르는 개막입니다.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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