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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운 Apr 01. 2024

비행기가 오래 날기 위해서는?

고무동력기의 추억

인생 첫 비행기 탑승의 순간을 앞두고 있는 39개월 우리 아들은 연일 비행기 삼매경에 빠져있다. 비행기가 나오는 책들을 보며 미리 비행기와 공항에 대해 학습하고 있는 녀석. 아이가 예습을 위해 요즘 보는 책은 <무브무브 플랩북 : 움직이는 공항>이다. 온갖 비행기부터 공항의 모습이 재미있게 구성이 되어 있다. 


<무브무브 플랩북 : 움직이는 공항>


비행기 책을 읽으며 비행기 탈 날만을 기다리는 아이. 아직 한 번도 타보진 못했지만, 멀리서 본 큰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모습이 참 신기해 보였나 보다. 그래서일까, 비행기 책을 볼 때면 여러 질문들을 하며 엄마와 아빠를 곤란하게 한다.


"비행기는 어떻게 날아요?"

"비행기는 날개가 있어서 날 수 있어요?"

"비행기 엔진은 어디 있어요?"

"비행기 엔진은 왜 날개에 있어요?"


공대를 졸업했지만, 기계공학과는 거리가 먼 아빠는 물론, 기계공학을 전공했지만 유체역학을 어려워했던 엄마에게 아이의 질문은 쉽게 답변하기 어렵다. 특히,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설명은 더욱 어려운 법. 오는 금요일 비행기를 탈 아이의 모습이 기대가 되며 두려운 이유이다.




아이의 비행기에 대한 열정을 보면 자연스레 초등학교 5학년 때가 떠오른다. 그시절 나는 비행기를 오래 날리기 위한 고민을 한참 하고 있었다. 바로 학교 대표로 부산시 "고무동력기 오래 날리기 대회"에 나갔기 때문.


이제는 추억의 이름이 되어버린 고무동력기. 이름과 같이 고무줄이 풀어지는 힘을 동력으로 하늘을 나는 모형비행기이다. 고무줄을 세게 감았다가 풀면, 앞부분의 프로펠러가 돌아가면서 하늘을 날 수 있다. 어린 시절, 고무동력기는 문방구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과학 모형이었고, 고무동력기와 '글라이더'를 잘 만들어서 오래 날리는 시합을 하는 경진 대회도 많이 개최되었다.


아직도 열리는 고무동력기 대회 (출처: 충청타임스)


운이 좋게도 교내 대표로 선발이 되고 '과학반'이라는 곳에 들어가게 되었다. 과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들어갈 수 있었던 곳으로, 방과 후에 라디오 조립, 과학상자 조립, 실험보고서 작성 등을 했던 기억이 난다. 고무동력기 대회를 앞두고는, 선생님들의 지도하에 고무동력기 만들기 특훈에 들어갔다.


고무동력기 조립은 설명서 따라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워낙 예민한 기기라 조립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쉽게 팁을 찾아볼 수 없었던 시절. 당시 과학반에는 수년 째 내려오는 우리 학교만의 고무동력기 제조 비법이 있었다. 대회를 앞두고 이 비법에 맞춰 수도 없이 비행기를 조립하였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고무동력기 제조 비법을 간단히 알아보자.



우선, 섬세한 조립이 필요하다.


먼저 나무 댓살을 자르고 붙여서 비행기 뼈대를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나무를 규격에 맞게 자르지 않으면 불균형이 발생하여 비행기는 조금만 날다가 추락한다. 세밀하게 나무 댓살을 자르기 위해 날이 잘 든 니퍼를 활용했다. 또한, 나무를 연결시키기 위해 순간접착제를 사용하는데, 이때 순간접착제를 너무 많이 발라도 안 되고 너무 적게 발라도 안 된다. 적정량의 접착제를 발라주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일본산 순간접착제를 시내에서 사 왔던 기억이 난다.



더 중요한 건 날개의 종이!


세밀한 조립 절차가 마무리되면 제일 중요한 마지막 단계. 종이를 날개에 바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종이를 날개에 붙일 때가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종이의 날개는 정말 팽팽하게 붙어야만 한다. 조금이라도 헐렁하게 종이가 붙었다가는, 공기의 저항을 받게 되어 비행기가 오래 날지 못한다.


종이를 팽팽하게 붙이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날개를 최대한 뻣뻣하게 만들기 위해 분무기로 물을 뿌리고 말리는 작업을 한다. 이때 노하우가 중요하다. 물을 너무 많이 뿌리면, 종이는 물을 먹고 찢어진다. 최대한 팽팽한 날개를 만드는 적정선의 물을 뿌리는 것. 이건 학교마다 비기로 내려오는 방법이 아니면 실패하기 쉽다. 



마지막으로 동력원인 고무줄!


오늘날 F1과 같은 스피드 경진대회에서 제일 중요한 건 엔진이다. 고무동력기 역시 마찬가지다. 동력원인 고무줄이 고무동력기 성능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고무동력기는 고무줄을 감았다가 풀어지는 힘을 이용해 하늘을 난다. 즉, 고무줄이 최대한 잘 감아져야 한다.


이를 위해 일본산 고무줄이 등장한다. 시내인 서면에서만 판매했던 일본산 고무줄을 공수해 와서 고무동력기에 장착한다. 고무동력기 모형을 사면 주는 고무줄과는 차원이 다른 쫀쫀함을 보여준다. 더 쫀쫀하게 만들기 위해 대회장에서는 샴푸와 같은 미끈미끈한 성분을 뿌린다. 이렇게 남들보다 쫀쫀한 고무줄을 장착했을 때, 비행기는 하늘을 오래 날 수 있다. 






대회 결과는?


학교에서 내려오던 비기를 잘 익혀 만든 고무동력기를 들고 대회에 출전했다. 장소는 김해공항 활주로. 1차 시기, 긴장된 마음으로 고무동력기를 날린다.


고무를 너무 잘 감아서인지, 날개가 팽팽해서인지, 하늘을 날기 시작한 고무동력기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심사관과 나는 비행기 뒤를 따라 계속해서 뛰어간다. 뛰어가는 초딩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하다. 2분 이상을 날면 입상권이었고, 내가 날린 비행기는 2분이 지나도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비행기가 그만 공항 경계를 넘어가버리고 만다. 김해공항은 군공항으로 출입제한구역이 있고, 그곳으로 비행기가 날아가버린 것. 결국 1차 시기 비행시간은 측정이 불가했기에, 3분이라는 긴 시간을 인정받게 된다. 3분 이상을 날았던 것 같지만 측정할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1차 시기 받은 성적이면 2차 시기에 평타만 쳐도 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가지고 온 비행기가 담장을 넘어가버린 게 문제였다. 백업 고무동력기를 들고 가지 않았던 것. 전날 밤새 고무동력기를 만들며, 하나만 가지고 가면 되겠지 생각했던 게 화근이었다. 결국 손에 맞지 않는 다른 사람이 만든 고무동력기로 2차 시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아직도 생각이 나는 2차 시기. 내 손을 떠난 남의 고무동력기는 바로 땅으로 추락하고 만다. 10초도 날지 못한 것. 결국 1, 2차 시기 합산으로 성적을 겨루기에, 돌아오는 나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상장도, 내가 만들어 갔던 고무동력기도. 한 달간 올인했던 초딩에게 너무나도 쓸쓸한 귀갓길이었다.




이제 더 이상 고무동력기는 인기가 없다. 만약 지금도 대회가 활성화되어 있다면, 당시 습득한 비기들로 아이와 열심히 고무동력기를 만들어볼 텐데. 나의 초딩 시절 설움을 아이가 갚아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렇게 아이와 첫 비행기를 타러 갈 생각을 하니 초등학교 시절 만들던 고무동력기 생각이 났다. 앞서 설명한 비기들을 활용한 고무동력기 제작에는 우리 아빠의 공헌이 컸다. 아무래도 니퍼로 나무를 자르고 하는 데에는 아빠의 손힘이 필요했기 때문. 


어린 시절 아빠와의 추억을 떠오르게 해 준 우리 아이의 첫 비행. 아이러니하게도 곧 있을 우리 아이의 첫 비행기 탑승은 우리 아부지 칠순 기념 여행 때문이다. 3대가 함께 고무동력기를 만들어봐도 재미있겠다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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