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맹활약 중인 기병
애정하는 밴드인 콜드플레이(Coldplay)의 수많은 명곡 중 명실상부한 대표곡은 'Viva La Vida'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콜드플레이 곡들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곡으로, 2017년 내한공연 당시 관객들의 떼창은 큰 화제가 되었다. 콜드플레이의 월드 투어 영상들을 보면 이 노래는 늘 떼창이 나온다. 하지만 K-떼창은 다른 그 어떤 떼창을 압도한다. (콜드플레이 내한 공연은 떼창이 너무 심해서 이에 대한 불만을 표하는 반응도 상당히 많았다)
'Viva La Vida'는 전제군주인 샤를 10세의 몰락을 주제로 하고 있다. 한때 권력의 정점에 있었으나, 모든 것을 잃고 몰락하는 절대군주의 자조적인 가사는 웅장하며 역동적인 음악과 맞물리며 전 세계 청중을 사로잡는다. 특히, 후렴구의 가사는 백미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부분
I hear Jerusalem bells are ringing
예루살렘의 종소리와
Roman Cavalry choirs are singing
로마 기병대의 합창이 들리네
로마 기병의 등장은, 과거 로마 제국의 영광을 기억하게 하고, 동시에 전장을 지배했던 기병의 위엄을 상기시킨다. 한 때는 잘 나갔던 로마와 기병대이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몰락했던 것처럼 권력의 무상함을 나타내는 상징인 것 마냥 'Roman Cavalry'가 등장한다.
이제 기병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전 세계 최강 군대인 미군에 기병대가 존재하는 걸 아는가?
그것도 사단으로 말이다.
한 때 전장을 호령했던 기병은 제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탱크로 상징되는 현대 보병에 밀리게 된다. 특히, 2차대전 당시 폴란드 기병이 독일군 탱크에 무모하게 돌진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퍼지며, 기병이 한 물 간 부대라는 인식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사실 이 이야기는 나치 선동가 괴벨스가 지어낸 이야기로, 폴란드 기병대가 탱크에 막무가내로 돌진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2차대전을 통해 세계 최강의 군대로 자리 잡은 미군은 여전히 기병사단을 운영 중이다. 미국의 제1기병사단(1st Cavalry Division)은 1921년 편성된 후, 2차 세계대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걸프 전쟁 등 현대 전쟁사의 굵직한 전쟁에 모두 참여하고 있다. 그것도 전장의 주역으로 말이다.
기병사단이란 명칭만 들으면 전통적인 말을 타고 싸우는 기병의 이미지가 연상된다. 하지만 이들이 맹활약한 한국전쟁 당시를 보면 제1기병사단은 기계화 부대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M4 셔먼, M26 퍼싱, 그리고 M46 패튼과 같은 탱크부터, 장갑차, 포병 등으로 편제된 1기병사단은 빠른 기동력을 살려 한국전쟁에서 맹활약한다.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대한민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을 때, 급히 참전한 미군 부대 중에 1기병사단도 있었다. 이들은 낙동강 방어선에 투입되어 처절한 방어전을 펼친다. 그리고 인천상륙작전 이후 서울 수복이 진행될 때 빠르게 북상한 것도 1기병사단이다. 이후 북진과정에서 벌어진 평양 탈환 레이스에서도 특유의 빠른 기동력을 살려 평양을 탈환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언제나 앞장서 달려 나갔기에 이후 중공군의 반격에 큰 인명 피해를 입은 부대이기도 하다.
물론 노근리 학살사건을 일으킨 부대 역시 1기병사단 휘하 5기병연대였기에, 이들의 활약에 마냥 박수를 보낼 수는 없지만, 한국전쟁 당시 가장 활약한 연합국 부대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그런데 여기서 헷갈리는 것 하나. 기병사단이니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탱크와 장갑차를 활용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가지만, 이러면 기병사단과 기갑사단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미 육군은 기병사단과 함께 기갑사단도 운용하였다. 하지만 2차대전 종전 후, 군축으로 기갑사단은 해체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기갑사단을 재창설한다. 그래서 기병사단과 기갑사단을 헷갈려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나라에 있는 한국전쟁 관련 박물관에는 1기병사단을 1기갑사단으로 잘못 번역한 경우들을 찾아볼 수 있다. 기병이 한국전쟁에도 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기에 비슷한 기갑사단으로 잘못 번역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한국전쟁 종전 후, 미군은 육군을 재편성한다. 탱크를 주력으로 운용하는 역할은 기갑사단에게 넘어가고, 기병사단의 역할이 애매하게 된다. 육군의 기동성을 높일 방법을 찾던 미군은 당시 개발된 최첨단 장비인 '헬리콥터'를 기병사단에 배치한다. 전장을 빠르게 누빈 '말'의 역할을 '헬리콥터'에게 맡기면서 기병은 화려하게 부활한다.
베트남 전쟁 당시, 제1기병사단은 미군 부대 중 가장 빠르게 베트남에 도착한 '사단급 부대'이다. 당시 1기병사단은 약 430대의 헬리콥터를 가지고 참전하게 된다. 이들의 처절한 활약상은 멜 깁슨 주연의 영화 <위 워 솔져스>에도 잘 나타나있다.
오늘날 1기병사단은 더욱 발전하여 그 유명한 AH-64 아파치 헬기와 UH-60 블랙 호크 헬기 등을 통해 빠른 항공 기동과 공중 강습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기병사단이라는 이름처럼 기동 부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기병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올드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부대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서 재밌는 사실 하나. 말이 헬기로 대체된 지금도 여전히 1기병사단에는 '기마부대'가 존재한다. 진짜 말, horse를 타는 부대이다. 아무리 현대 무기가 도입되더라도 기병사단의 근본은 '말'이기에 기마술, 마상무술을 하는 부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부대 창립일마다 이들 기마부대는 기마 무예 시범을 선보이며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이 글이 올라가는 브런치북은 육아 이야기가 주요 소재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육아 이야기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그냥 글을 마무리해도 되지만, 굳이 육아 브런치북에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동화책을 읽던 우리 집 38개월 아들이 질문을 던졌다.
"왜 경찰이 말을 타요?"
동화책을 보니 경찰서와 경찰이 타는 탈 것들이 나와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말이었다.
이 동화책은 벨기에에서 만든 것을 번역한 것이라 유럽의 특성이 책에 나타난다. 여전히 기마경찰이 활약하고 있는 유럽의 모습을 짧은 그림 한 컷에서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말을 보기 힘든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광경이다. 그래서 아이가 말이 있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질문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한 질문의 답을 하다가, 유럽의 전장을 누볐던 기병이 떠올랐고, 콜드플레이의 노래가 떠올랐고, 미군 1기병사단까지 의식의 흐름이 흘러갔다. 그래서 이런 잡탕밥 같은 글이 탄생하였다. 잡탕밥이 먹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