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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운 May 17. 2024

대학 축제를 바라보는 교수의 자세

에스파는 봐야하는거 아닌가요?

시간이 정말 빠르다. 개강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중간고사는 끝난 지 오래고, 학교는 축제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주점 안내문들이 학교에 붙어있고, 축제에 누가 오는지 이야기하는 학생들의 얘기가 여기까지 들린다. 5월 중하순에는 많은 대학들이 축제를 개최한다. 코로나 이후 축제를 진행하지 못하다가, 2년 전부터 축제를 시작하였고 이제는 팬데믹 이전의 축제 규모로 돌아갔다.


학생들은 축제로 신이 나있지만, 교수들에게는 한 발 넘어 세계 이야기다. 주변을 둘러봐도 축제가 언제 열리는지 모르시는 교수님들이 많고, 축제 자체가 학생들이 즐기는 행사다 보니 큰 관심이 없다. 어쩔 때는 축제 기간에 휴강을 하지 않냐고 물어보는 학생들이 있어서, 축제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학교가 집과 가깝다면 밤에 아이라도 데리고 놀러 올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아니라 축제는 언제나 강 건너 불구경이 된 지 오래다.




지금이야 축제 자체에 시큰둥하지만, 학부 시절만 해도 축제는 언제나 기다리는 이벤트 중 하나였다. 지금처럼 놀 게 많은 세상이 아니어서인지, 축제는 손꼽아 기다렸고 축제가 시작되면 몇 날 며칠을 즐겼던 기억이 난다. 동아리와 학과에서 주점을 운영하며 칵테일을 만들고 서빙했던 기억도 나고, 남은 칵테일용 술들을 모조리 섞어 먹고 뻗었던 기억도 난다. 그 맛없고 비싸고 다 타버린 안주를 뭐 그리 맛있게 먹었는지.


축제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초대가수이다. 초대가수라는 말 자체에서 연식을 알 수 있지만, 우리 때는 초대가수라 불렀던 것 같다. 아무튼 축제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번 축제에는 누가 오는지 설렘을 안고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학교가 지방에 있어 유명 가수들을 볼 수 없어, 축제만이 유일한 동아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축제 라인업이 발표되면 그 기대는 무너지곤 했다.


"또 XXXXXX 온데"


이상하게 2000년대 초반 우리 학교의 총학은 인디 밴드를 좋아했다. 좋아하는 가수들과 노래긴 했지만, 매년 인디 밴드들의 노래만 축제 때 듣다 보니, 괜히 가수까지 싫어지는 불상사도 벌어지곤 했다. 당시 학교 커뮤니티에도 총학의 인디 밴드 사랑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정된 예산과 지방이라는 한계가 있지 않았나 싶지만, 어린 마음에 우리도 유명 가수 보고 싶단 생각이 더 컸다.


그러던 2008년. 대학원에서 막 굴림을 시작하던 때. 축제를 앞두고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온다.


원더걸스가 온데!


당시 원더걸스는 텔미를 발표하고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아이돌이었다. 그 원더걸스가 축제에 온다고 하니 학교뿐만 아니라 대전이 떠들썩했다. 후문으로는 당시 서인영이 우리 학교에서 예능을 찍고 있어, 서인영 소속사 가수들이 예능 출연 겸 축제에서 공연을 했고, 섭외 예산이 남은 총학은 원더걸스에 올인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우리 학교 축제에 온 원더걸스 사진이 없어 타학교 축제 사진으로 대신 ㅎㅎ


원더걸스가 온다고 한 날은 아침부터 학교가 북적였다. 재학생은 물론 인근 중고등학생들도 아침부터 와서 무대 앞에 자리 잡기 시작한다. 공연 시작 전 무대 앞은 서 있을 자리가 없을 정도. 무리하게 원더걸스를 보겠다고 책상을 가져다 놓고 올라가다 떨어지는 사람도 나올 정도로 아수라장이었다. 결국 원더걸스는 왔지만, 본 것은 수많은 관객들의 뒤통수뿐이었다.




그때의 관성이 남아서인지 대학에 재직 중인 지금도 축제한다고 하면 누가 오는지는 찾아보게 된다. 올해 우리 대학의 축제에 누가 오는지 찾아보니.


비비.

지코.

다비치.

창모.

실리카겔.


오 나쁘지 않네 하고 보고 있는데, 눈이 띠용하는 가수가 보인다.



학교에 부임하고 처음으로 대학 축제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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