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재운 Aug 08. 2024

콜라 마시면 안 돼!!

콜라의 위엄

만 3세인 우리 아들은 말이 많다. 하루 종일 떠들라고 해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 많다. 말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잔소리도 많다. '이거 하면 안 된다', '저거 하면 안 된다' 이야기를 엄마, 아빠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한다. 


얼마 전, 친구네 아이들과 계곡에 놀러 갔었다. 우리 아들과 동갑내기 친구가 있어 즐겁게 놀던 와중에 음료를 마실 타임이 되었다. 우리 아이는 평소 콜라나 사이다 같은 탄산음료를 마시지 않는다. 몸에 좋을 것 없기에 가급적 천천히 그 맛을 알게 하고 싶었고, 그래서 콜라 마시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아이에게 종종 하곤 했다. 하지만, 친구네 아이는 누나가 있는 탓에 콜라의 맛을 알아 버렸고, 우리 아이가 수박 주스를 먹는 동안 그 친구는 콜라를 마시게 되었다. 그러자, 우리 아들 왈,


"콜라 마시면 안 돼!!"

"삐! 엑스!"


우리 아이의 잔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콜라를 마시는 친구. 이미 중독성 강한 콜라의 맛에 빠졌기에, 우리 아이의 잔소리는 귓등으로 흘린다.




지금도 많은 이를 중독시키고 있는 콜라. 콜라 중독의 역사는 중독의 깊이만큼이나 깊다.


먼저 1930년대 독일로 가보자. 독일 하면 맥주가 먼저 떠오르지만, 맥주만큼이나 인기가 있었던 제품은 바로 달콤하고 탄산이 가득한 콜라였다. 미국에서 수입된 코카콜라는 큰 인기를 끌었고, 공장 노동자부터 상류층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즐겨 마시는 음료가 되었다. 독일인들은 콜라를 갤런 단위로 소배했고, 피크닉, 파티는 물론 휴식 시간에도 콜라를 남녀노소 즐겼다. 이렇게 인기가 많아지자, 미국의 코카콜라 회사는 공장을 독일에 신설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전 세계를 집어삼키며 유럽 전역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독일을 향한 무역 봉쇄가 시작되었고, 많은 물자들의 보급이 끊어지고 만다. 그중에는 코카콜라도 있었다. 


독일 코카콜라의 운영 책임자였던 맥스 키스(Max Keith)는 곤경에 빠진다. 코카콜라 공장은 아직 멀쩡했지만, 콜라의 필수 재료 공급이 끊기고 만 것이다. 한때 국민 음료였던 콜라를 생산했던 공장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다. 


이에 맥스는 직원들과 함께 새로운 음료를 만들기 위한 임무에 착수한다. 그들은 전시 독일에서 구할 수 있는 제한된 재료로 콜라와 같은 음료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다른 식품 산업에서 남는 잔여물들, 사과 섬유, 유청 등을 가지고 음료 제작에 들어간 것이다. 


인내와 실험, 많은 시행착오 끝에 탄산이 가득하면서 과일 맛이 나는 상쾌한 음료가 만들어진다. 콜라는 아니었지만, 콜라와 유사한 음료가 탄생한 것이다. 새로운 제품이 탄생하면 이름이 필요한 법. 기억에 남는 이름을 고민하던 이들은 상상력을 의미하는 독일어 단어, "판타지(fantasie)"에 주목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음료의 네이밍을 하게 된다.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는 "판타(fanta)"의 탄생이었다.


판타 광고 사진, 가운데 인물이 바로 맥스 키스


제2차 세계 대전을 통해 콜라 맛을 알게 된 또 다른 인물이 있다.


바로 소련의 가장 강력한 장군 중 한 명인 게오르기 주코프(Georgy Zhukov)이다. 우리는 2차 대전하면, 미국과 영국이 연합하여 독일의 나치와 전쟁을 벌인 서부 전선을 주로 기억하지만, 서부 전선보다 더 치열했고, 더 큰 피해가 발생한 전장이 바로 소련과 나치가 전쟁을 벌인 동부 전선이다. 독소전이라고 불리는 이 전장에서 가장 활약한 장군이 바로 주코프이다. 전략적 탁월함과 철의 의지로 유명한 주코프는 독소전의 승리를 가져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소련군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엄격한 외모 뒤에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할 비밀이 하나 있었다. 


주코프는 콜라를 좋아했다.


2차 대전까지만 해도 미국과 소련은 공동의 적인 추축국, 그중에서도 독일을 물리치기 위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전후 수습을 위해, 미영 연합군의 지휘관이자 후에 미국 대통령이 되는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장군과 주코프는 회담을 하게 된다. 


(좌) 게오르기 주코프 / (우) 회담 모습


이미 자세한 사항은 미국과 소련의 수뇌부가 협의를 마친 상황이었다. 따라서, 두 명장의 회담은 서로 담소를 나누는 자리가 된다. 그리고 아이젠하워는 주코프에게 미국의 인기 음료인 코카콜라를 소개해준다. 탄산이 가득한 상쾌한 음료는 주코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과 소련이 바로 냉전에 돌입한 것이다. 소련에서는 미국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모든 것을 경멸의 대상으로 여겼다. 고위 소련 장군이, 그것도 2차 대전의 영웅이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코카콜라를 즐기는 모습이 보이면 숙청이 될 수도 있었다. 주코프는 이러한 정치적 의미를 잘 알았기에, 코카콜라를 공개적으로 즐길 수 없었다.


그러나 주코프가 누구인가. 의지의 사나이인 그는 자신의 영향력을 활용하여 코카콜라를 미국 음료처럼 보이지 않게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그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해리 트루먼에게 독특한 요청을 한다. 코카콜라를 미국적인 음료로 안 보이도록 만들 수 없냐는 요청말이다.


이에 트루먼은 코카콜라 사장에게 이 사실을 전달하고,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코카콜라의 무색 버전을 만들게 된다. 이 음료는 맛은 코카콜라와 비슷하지만 외향은 보드카와 비슷했다. 잘 알다시피 보드카는 소련의 국민 음료이다. 이러한 변장을 완성하기 위해, 투명한 코카콜라는 흰색 뚜껑과 간단한 라벨이 붙은 투명 유리병에 담겨서 주코프에게 전달된다. 이렇게 해서 그는 누구의 조목도 받지 않고 콜라를 즐길 수 있었다.


투명한 코카콜라



이처럼 잔인하고도 끔찍한 일들로 가득한 제2차 세계 대전 역사에서도 흥미로운 일화를 찾아볼 수 있다. 가장 어두웠던 전쟁 시기에도 단순한 즐거움인 콜라 마시기를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애썼는지를 보면 사람의 먹는 욕구는 막을 수가 없나 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