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저녁 하늘
아빠 하늘이 매워졌어
이틀 뒤면, 32개월이 되는 우리 아들과 저녁 산책을 하기 위해 아파트 현관을 나서는 순간 한 말이다.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어 하늘을 보니 저녁노을이 이쁘게 들면서 하늘이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우리 아들에게 붉은색을 띠는 음식은 매운맛으로 입력이 되어있다. 그래서일까? 시각적으로 붉은색을 보고 미각적으로 매움을 연상하는 공감각(synesthesia)을 표현한 우리 아들.
레드벨벳의 여름 히트송 '빨간 맛'은 공감각을 표현한 대표적인 노래이다. 공감각이란 인간의 오감 중 두 개 이상의 감각이 하나의 이미지로 통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레드벨벳의 빨간 맛 역시 여름의 시원하고 상큼함을 맛으로 표현한 것으로 공감각적인 가사로 큰 인기를 얻었다. 다만 우리 아들은 빨간색을 보고 매움을 표현했다면, 레드벨벳은 빨간 과일을 여름의 맛으로 표현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
레드벨벳의 빨간 맛을 공감각의 대표 예시로 들었지만, 많은 분들이 처음 공감각을 배우는 곳은 바로 국어 교과서이다. 그것도 '공감각적 심상'이라는 이름으로 국어나 문학시간에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 함께 나오는 시는 바로 김광균 시인의 <외인촌>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느끼는 공감각적 시적 표현으로 교과서에 등장한 시. 이처럼 공감각은 묘사의 난도가 높아 현대 문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고, 정규교육 상의 문학 교육에서도 자주 다루고 있다. 시험에도 꼭 출시되는 개념이 바로 공감각이다.
우리 아들이 보여준 빨간색을 보고 매움을 연상하는 기초적인 공감각 능력은 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다. 레몬이라는 소리(청각)를 듣게 되면 자동으로 뇌는 신맛(미각)을 연상하게 된다. 이렇듯 후각이나 시각을 통해 미각으로 연결되는 공감각 현상은 쉽게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마 글을 보시는 분들도 미각과 관련된 공감각은 자주 체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이보다 더 나아간 공감각은 특정 숫자나 글자를 보고 맛을 인식하거나, 소리를 듣고 색깔을 떠올리는 등의 감각이다. 연결성이 없어 보이는 두 개 이상의 감각이 무의식적으로 연결되면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고 극 소수의 사람에게만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공감각이 발달한 사람은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니콜라 테슬라, 칸딘스키, 리처드 파인만 등이 그 대표사례.
아직 공감각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공감각적 심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뇌의 구조적인 특성이 일반 사람과 다를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감각이나 인식 연결 패턴이 일반적인 구조와 다르다는 것으로, <두뇌 실험실(Phantoms in the brain)>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저명한 뇌과학자 V.S. 라마찬드란(Ramachandran)의 연구에 따르면 다른 감각의 신경 통로가 서로 교차연결되어 한쪽이 활성화되면 다른 한쪽이 자동으로 활성화된다고 한다.
타고난 두뇌의 구조로 공감각을 느낄 수 있는지 여부가 결정된다고 하니 후천적 학습으로 공감각을 야기시킬 수는 없는 노릇. 다행히도 사교육 시장의 아이템이 하나 준 느낌이다.
공감각으로 가기 전에 먼저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감각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당연히 인공지능은 인간과 같은 '감각'을 가질 수 없다. 다만 데이터를 '감지'하고 처리할 수는 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 카메라가 찍은 사진을 인식한다고 해보자. 인공지능은 사진을 '시각'과 같은 감각 정보로 처리하지 않고, 숫자나 기타 데이터 형태의 정보로 처리하게 된다. 즉, 인공지능은 감각이라는 인간의 특성은 없지만, 다양한 시각, 청각 등의 센서를 통해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게 된다.
인공지능은 감각을 느낄 수 없으니 공감각 역시 경험하거나 느낄 수 없는 노릇. 하지만 인공지능은 데이터 간의 관계나 패턴을 학습하고 모델링할 수 있기 때문에, 공감각적인 현상을 "흉내"낼 수 있다.
앞서 본 것처럼 '붉은색 하늘은 매운 거야'라고 학습시키면, 인공지능은 저녁노을이 주어졌을 때 이와 연결된 미각을 표현할 수 있다. 또한 특정 소리가 주어졌을 때 연관된 이미지나 색상을 제시할 수 있게 학습시키는 것 역시 가능하다.
다수의 공감각 사례를 학습을 할 수 있다면 인공지능은 직접 공감각을 '느낄 수'는 없어도 사람보다 더 공감각을 잘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인공지능은 창의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창의적 영역은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영역으로 남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창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인지할 수는 없지만, '사람이 어떤 것을 창의적이다'라고 생각하는지를 알고 있다. 웬만한 사람보다 창의적이며 혁신적인 작품을 인공지능은 만들어낼 수 있다. 일례로 회화의 영역에서는 사람이 봤을 때 창의적이다라고 생각이 드는 작품들을 마구 만들고 있다. 창의적인 화가의 화풍을 따라 함은 물론 여러 화풍을 조합한 새로운 화풍을 만드는 생성형 인공지능도 등장하고 있다.
극소수의 1% 창의력과 영감을 가진 초월적 존재의 역사에 기리남을 만한 아티스트를 제외하고는 창의력을 무기로 인공지능과 대적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인공지능이 범접하지 못하는 영역. 아직 감각을 가지지 못하고 흉내만 내는 인공지능과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훗날 인공지능이 우리 삶에 스며들었을 때 대처가 가능해질 것이다. 우리 아이가 사회에 나가는 시점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