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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아이와 AI의 신나는 모험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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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운 Aug 24. 2023

32개월 아들에게 돼지꿈 사다

토요일이 기대되는 이유

드디어 32개월이 된 우리 아들. 우리 아들은 아침잠이 많이 없는 편이다. 그래서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 7시쯤이면 눈을 비비면서 거실로 나온다. 루틴대로 쉬를 하고 물을 마시고 엄마나 아빠에게 와서 눈을 비비는 작은 악마.

어제는 물을 마시고 눈을 반쯤 감은 상태에서 아빠에게 와서 안긴다. 아빠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들에게 잘 잤냐고 물어보며, 무슨 꿈을 꿨는지도 물어본다. 그러자 우리 아들이 꿈을 꿨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꿈에서 꿀꿀이와 춤췄어!

항상 우리 아들 꿈에는 동물이 나오나 보다. 꿈에서 사자나 호랑이, 코끼리, 공룡 등 큰 동물과 함께 놀았다는 얘기를 종종 했는데 갑자기 꿀꿀이라니??!! 우리 아들이 돼지도 좋아하긴 하지만 한 번도 꿈에 나왔다고 언급한 적이 없는 돼지가 나왔다고 하니 순간 당황. 그것도 돼지와 춤을 췄다고?? 그리고 든 생각.

이건 돼지꿈??!!

돼지꿈이라는 번뜩임과 함께 나의 머리를 스쳐간 건 신라시대, 언니의 망측한 꿈을 사서 김춘추에게 시집을 가 왕비가 된 김유신의 누이 이야기. 어차피 우리 아들은 아직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기에 돼지꿈을 아빠가 사게 되면 '아빠 좋고 아들 좋고' 스토리가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협상을 시도해 본다.

아빠 : 아빠에게 돼지꿈 팔래?

아들 : 좋아!

아빠 : 돼지꿈 팔면 아빠는 뭘 줄까?

아들: (한참을 생각하다) 젤리!!

너무나도 쉽게 협상 타결. 오늘 집에 들어가는 길에 반드시 젤리를 사서 아들에게 줘야겠다. 물물거래가 이루어져야 꿈의 거래도 이뤄지기에.

돼지꿈은 워낙에 유명한 길몽이다. 특히나 돼지는 풍요를 상징하는 동물이기에 돼지꿈은 일확천금이 온다는 해석도 종종 존재한다. 자, 그렇다면 돼지꿈, 특히나 돼지와 함께 춤을 추는 꿈은 무슨 의미인지 먼저 챗GPT에게 물어보도록 하자.

너무 진지한 챗GPT

원하는 답변이 없다. 로또를 사라던가 길에서 돈벼락이 쏟아진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없이 두루뭉술하게 진지한 답변만 내놓는 챗GPT. 내가 원하는 답변이 없을 때는 챗GPT 이전의 신이었던 구글신에게 물어본다. 돼지꿈 뜻이 뭐야?? 구글은 직접 답을 주지는 않지만 질문에 대한 답이 있는 페이지를 보여준다. 페이지랭크라는 알고리즘을 통해 선별된 페이지들이 순위에 맞춰 정렬이 되어있다. 가장 위에 있는 티스토리 링크를 눌러 돼지와 춤을 추는 꿈에 대한 해석을 찾아보지만, 춤에 대한 정확한 언급은 없다. 비슷한 꿈으로는 아래와 같은 해석이 있다.

역시 구글신이 원하는 답을 찾아줬다! 이제 아들이 꾼 꿈을 산 아빠가 로또를 사러 가는 일만 남았다!

오늘도 인공지능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 없으니 돼지꿈과 인공지능의 관계를 한 번 살펴보자. 당연히 인공지능은 꿈을 못 꾼다. 그러니 돼지꿈도 꿀 수 없다. 그런데 얼마 전 봤던 재밌는 기사가 떠올랐다.

출처: SBS 모닝와이드 2023년 4월 7일 자

태국의 한 남성이 챗GPT를 이용해 받은 57, 27, 29, 99라는 숫자 세트로 복권에 응모하여 당첨이 되었다는 뉴스이다. 상금으로는 무려 2천 밧!!!!!!!

원화로 약 7만 7천 원에 해당한다고 한다. 큰 액수는 아니었지만 소셜미디어로 챗GPT가 찍어준 번호로 당첨이 되었다며 공유를 하며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이 남성은 챗GPT에게 복권 당첨 번호를 반복적으로 물었고 10년 간의 통계를 기반으로 챗봇이 숫자를 알려줬다고 밝혔다.

그럼 이 말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태국의 복권 당첨자가 공개한 챗GPT 응답 내용

이 남성이 주장한 챗GPT가 찍어준 번호라고 공개한 화면은 위와 같다. 태국말을 해석할 수는 없지만 앞에 나오는 z-score는 통계에서 흔히 사용하는 메트릭이다. 즉, 위 대화화면은 챗GPT가 로또 번호를 찍어준 게 아니라 무언지 알 수는 없지만 통계를 계산하는 과정에서 나온 숫자를 가져다가 복권에 쓴 것일 뿐이다. 마지막 줄의 57, 27, 29, 99를 그냥 가져다 썼을 뿐. 심지어 기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저 4개의 숫자 중 당첨번호와 일치하는 건 99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고작 2천 밧의 상금을 받았을 뿐.

이렇게 팩트를 조금만 체크해 보면 전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는데도, 우리나라 언론은 챗GPT가 로또 번호를 찍어줬다고 호들갑을 떨며 기사를 쏟아내었다. 왜 아무도 한 겹 뒤에 있는 내용은 안 보고 자극적인 내용만 쏟아낸 것인지 씁쓸하기만 하다.

실제로 챗GPT에게 로또 당첨 번호를 물어보면 아래와 같이 진행이 된다. 모두 굿 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