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논법으로 추론하는 우리 아이
12월생이라 만 2세임에도 4세 반을 다니는 32개월 우리 아들. 요즘 들어 감정을 자주 표현하며, 엄마, 아빠의 감정 변화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림책을 보다가 웃고 있는 동물을 보면 "얘 행복해"라고 말을 하고, 인상 쓰거니 울고 있는 동물에게는 "안 행복해"라는 표현을 자주 한다. 그리고 아빠에게도 자주 행복하냐는 질문을 한다.
아들 : 아빠 행복해?
아빠 : 응, 행복해.
아들 : 왜 아빠 행복해?
아빠 : 윤우가 있으니까 행복해
윤우가 있어 아빠가 행복하단 말을 듣고 좋아하던 우리 아이. 그러다 뭔가 의문이 들었는지 다시 질문을 던진다.
윤우 없으면 아빠 안 행복해?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명제에 대해서 배운다. 그때 등장하는 내용이 명제의 참과 거짓을 찾기 위한 방법들. 본 명제가 참일 경우 대우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고등학교 때 암기식으로 배운 바 있다. 아래 그림을 살펴보자. 아빠가 말한 명제는 '윤우가 있으면 (p), 아빠는 행복해 (q)'로, 참인 명제이다. 우리 아들이 고민을 거쳐 얘기한 문장은 p와 q를 모두 부정하였지만 순서는 부정하지 않은 '이' 명제가 된다. 본 명제가 참이라고 해도 이 명제는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다. 본 명제가 참일 때 우리가 참이라고 볼 수 있는 명제는 '대우' 명제로 아래 그림과 같이, "아빠는 안 행복해, 윤우가 없으면"이라는 명제가 참이 될 수 있다. (후술 할 부정논법으로 풀어가면 조금 다르게 논리를 전개할 수 있고, 해석도 달라지지만 일단 대우명제를 이해하는 선에서 넘어가기로 하자.)
이렇듯 우리 아들은 아빠가 이야기한 걸 토대로 기초적인 논리 추론 방법을 시작했다. 비록 대우 명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역 명제를 생각했다는 것만으로도 기초적인 추론 과정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어떤 주장의 부정에서 시작해서 다른 주장의 부정을 도출하는 논리적 추론 방식을 '부정 논법'이라고 부르며 영어로는 'modus tollens'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슈퍼맨 추론이 있다.
모든 인간은 죽을 수 있다. (p이면 q이다.)
슈퍼맨은 죽을 수 없다. (q가 아니다.)
따라서 슈퍼맨은 인간이 아니다. (따라서 p도 아니다.)
사실 부정논법은 직관적으로 잘 와닿지 않는다. 논리적 궤변 같기도 하지만 엄연히 수학적으로 증명이 되어 있어 반 암기식으로 활용하는 기법이기도 한다.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자주 활용하는 결론을 부정한 후 모순을 발견하여 결론을 역으로 증명하는 기법인 '귀류법' 역시 부정 논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보다 우리에게 쉽게 다가오는 추론 방법으로는 '연역법'이 있다. 연역법에 대해서는 예전글에서 우리 아들이 연역적 추론을 시작한 적이 있다고 글을 쓴 바 있다. ( 링크 ) 지금도 우리 아이는 연역적 추론은 활발히 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 우리 아들이 하는 연역적 추론 사례 하나.
1.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엄마, 아빠가 모두 있다.
2. 엄마, 아빠가 모두 있는 날은 자동차를 타고 놀러 간다.
3. 오늘은 놀러 가는 날이다. 아이 씐난다!!
인공지능은 추론 능력이 매우 떨어진다. 특히나 앞서 설명한 논리적 추론을 잘하지 못한다.
인공지능 개발 초창기, 전문가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방식은 주어진 정보와 규칙을 기반으로 연역적 추론을 수행하여 결론을 도출하도록 설계되었다. 의학 분야 전문가 시스템은 '부정 논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만약 어떤 질병이 특정 증상을 반드시 동반한다면, 그 증상이 없는 경우 해당 질병은 배제하는 것이 대표 사례이다.
하지만 추론을 기반으로 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은 한계를 드러낸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규칙으로 만들어 인공지능으로 구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딥러닝이 활용하는 귀납적 추론 방식이다. 무수히 많은 데이터를 학습하여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는 인공지능은 정말 인공지능스럽게 추론을 한다고 밖에 말을 할 수 없다.
인공지능의 귀납적 추론 사례이다.
강아지 A는 귀엽다.
강아지 B는 귀엽다.
강아지 C는 귀엽다.
.....
모든 강아지는 귀엽다.
쉬운 예를 들었지만 인공지능은 강아지가 귀엽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 무수히 많은 강아지 이미지나 영상을 학습해야 한다. 우리 아들을 비롯한 영유아들은 강아지 사진 몇 장만 봐도 내릴 수 있는 결론을 인공지능은 쉽게 내리지 못한다.
바로 이 점이 인공지능은 하지 못하는 일을 인간은 할 수 있는 간극이 될 수 있다.
인공지능 시대, 두각을 나타내는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추론 능력을 키워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인공지능은 지금 이 순간도 강하게 추론 능력을 키워가고 있다. 귀납적 추론을 상당히 열심히 하며, 무수히 많은 연산이 필요한 귀납적 추론을 빵빵한 하드웨어에 의존해 나가며 추론 능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또한 자연어 처리 분야 등에서는 주변 관계성을 통해 문장의 뜻을 추론하는 기법들도 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귀납에 의존하는 근본적인 한계가 아직 있기에 우리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추론이라는 무기를 갈고닦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 아이 추론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미디어와 같은 수동적인 도구에 의존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된다. 늘 적극적이면서 호기심 많은 아이로 성장하도록 옆에서 도와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특별한 방법론이 요구되지 않는다. 늘 접하는 일상에서 가볍게 호기심을 가지도록 유도해 주면 된다. 일상의 당연한 일들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원인과 결과를 생각하게 해 보자. 예를 들어 '비가 오면 왜 물웅덩이가 생기는지'와 같은 간단한 질문을 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아이의 추론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부모와의 질문과 대답을 통해 아이는 매사 호기심을 가질 수 있고, 끊임없이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새로운 가설을 만들게 된다.
최근 우리 아이는 우주에 완전 꽂혀있다. 그림책에서 본 우주의 모습이 아주 멋있었는지, 로켓과 우주정거장 이야기를 자주 한다. 엄마는 둘이서 그만 우주 이야기 하라고 하지만 아빠와 아들은 계속해서 우주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아이는 우주에 왜 공기가 없는지, 왜 중력이 없는지, 왜 추운지를 생각하고 중력이 없어 우주 정거장의 사람들은 날아다닌 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아직 원리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심지어 중력이 뭔지도 모르지만, 우주에 중력이 없어 지구와 다르다는 것은 눈치를 채고 있다. 자신만의 우주를 추론으로 채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다양한 놀이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블록 놀이가 좋다. 블록을 쌓으며 아이는 원인과 결과, 물체의 움직임, 공간적 관계 등에 대한 직관을 터득하게 된다. 또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논리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퍼즐이나 보드 게임 역시 논리적 사고를 키우는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활동들은 아이의 추론 능력과 직관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요소이며, 현재의 인공지능 시스템은 아직 갖추지 못한 능력을 키우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스토리텔링이나 블록 놀이와 같은 방법은 추론 능력 향상과 함께 추후 코딩을 배울 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위에 언급한 방법들을 보고 실망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특별한 방법이 있나 해서 살펴봤지만 결국 부모가 옆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잘 놀아주고, 잘 알려줘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되풀이하고 있으니. 학습에 왕도는 없고 지름길도 없다. 기초에 충실해서 아이가 배울 수 있는 기본적인 환경을 풍족하게 만드는 것이 제일 우선 요건이다. 배움에 관해서는 아이들의 뇌는 그 어떤 인공지능보다 강력한 슈퍼컴퓨터이다. 부모는 아이가 두뇌에 가지고 있는 슈퍼컴퓨터에 계속해서 인풋을 넣고 아웃풋에 반응을 해주며, 우리 아이가 인공지능 시대 살아갈 수 있는, 더 나아가 두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다시 아빠와 아들의 대화로 돌아가자. 우리 아이가 "윤우 없으면 아빠 안 행복해?"라고 물었다. 그러면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까? 네가 얘기한 명제는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어라고 이야기하며 이론을 설명하는 게 맞는 걸까?
아직 우리 아이가 이해하지 못할게 자명하기에, 아빠는 다음과 같이 감성적인 답변을 한다. 아빠와 아들 간의 대화의 마무리 장면이다.
아들 : 윤우 없으면 아빠 안 행복해?
아빠 : 윤우는 언제나 있어. 그래서 아빠는 언제나 행복해
잠시 생각에 잠긴 아들은 이내 감동을 받은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한다.
아빠, 사랑해
요즘 사랑해라는 말을 암만 시켜도 하지 않는 청개구리 같은 아들 녀석인데, 아빠와의 대화가 만족스러웠는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처음으로 사랑해라는 말을 하는 우리 아들. 감동에 빠져 나도 사랑해 이야기해 주며 아들을 안아준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엄마는 '아주 둘이 영화 찍고 있네'라며 비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