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그런 핑곌 대지 마
33개월인 우리 아이는 여느 아이처럼 밥보다 간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식사시간 전에 간식을 잘 안 주려고 한다. 그런데 이 악동 녀석이 어디서 꺼낸 건지 모를 젤리를 먹고 있는 모습이 발각되었다. 아빠에게 들키고 또 한소리 들을까 걱정이 되었는지 먼저 핑계를 대기 시작한다.
할머니가 먹어 했어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할머니는 악동에게 젤리를 먹으라고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거짓말과 함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핑계 스킬을 시전 한 것이다. 어이도 없고 또 너무나도 티 나는 잔머리 굴리는 것이 귀여워 보이기도 한다. 우리 아이에게 할머니는 만능 방패와 같은 존재이다. 단호하게 '안 돼'를 시전 하는 엄마, 아빠와 달리 할머니는 약한 고리이다. 조금만 울어도 원하는 것을 다 내어주기 때문에 꼭 무언가를 부탁할 때는 할머니에게 간다. 이제 할머니는 부탁의 대상을 넘어 핑계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아이가 할머니를 방패 삼아 핑계를 대는 걸 보니 떠오르는 녀석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챗GPT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나를 도와주는 고마운 챗GPT이지만 궁지에 몰릴 때면 늘 핑계를 대면서 빠져나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챗GPT에게 곤란한 질문을 던지면 늘 전가의 보도로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바로 학습 기간이다. 아래 예시를 한 번 살펴보자.
이렇듯, 모르는 질문이나 자신의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정보에 대해서는 순순히 모른다고 인정을 한다.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이슈가 워낙 크게 터졌던 터라, 어느 순간부터 챗GPT는 학습 기간을 방패 삼아 모른다고 솔직히 인정을 한다. 허나 반복되는 정보 업데이트 시기에 대한 언급은 사용자에게 지루함을 안겨줄 수도 있다.
자꾸 학습 기간을 핑계로 삼는 것 같아, 다시 한번 챗GPT의 심기를 긁어본다. 너 사실 핑계 대고 있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니 이러한 냉정한 답변이 돌아온다.
그래.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감정도 없는 인공지능 대상으로 무슨 말을 한 건가 싶다. 우리 아이와 핑계를 대는 모습은 비슷했지만 핑계가 나오는 기저는 명백히 다른데 말이다. 그래도 기왕 이 녀석과 대화를 시작한 김에 한 번 현 상황에 대해 물어보자. 아이가 이제 거짓말을 하고 핑계를 대기 시작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이다. 육아를 위한 방법을 챗GPT에게 물어보니 정석적인 답변이 돌아온다.
좋은 답변이다. 하지만 육아에 초보인 입장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출처를 확인해 원문을 보고 싶어 진다. 챗GPT가 출처가 불명확한 내용으로 답변을 하는 경우가 많아, 여러 번 이슈가 된 바 있다. 이번에도 출처에 대해 물어보니 뭐라 대답은 해주는데 정확하지가 않다. 알려준 책들은 모두 검색이 되지 않는다. 아직 챗GPT를 전적으로 믿고 활용하기 힘든 점이 바로 이러한 점들이다. 뭔가 그럴 듯 한 대답이 돌아오지만, 한 층 더 깊게 파고들면 아직 신뢰도에 있어 물음표인 경우가 많다. 챗GPT는 아직 주력이 될 수 없고 보조적인 수단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전히 우리 아이는 밥을 잘 안 먹으려 한다. 그래서 김을 싸주기도 하고, 좋아하는 고기만 주기도 하고 각종 수단을 동원한다. 그리고 아이의 입으로 밥 숟가락을 가져가며 이야기한다.
아빠 : "자, 마지막! 마지막 한 입만 더 먹자."
아들 왈
마지막 아니잖아!!
두둥! 이제 우리 아들은 엄마와 아빠의 거짓 수단을 눈치채 버렸다. 매번 마지막, 마지막 하면서 줬던 숟가락이 마지막이 아녔다는 것을 학습해 버린 것이다. 어쩌면 우리 아이가 거짓으로 핑계를 대는 것도 엄마, 아빠의 모습을 봤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바로 위에 언급한 챗GPT와의 문답을 보면 부모는 진실을 말하는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무심코 아이를 위해 하는 거짓말이 아이에게 안 좋은 습관을 만들게 되지는 않을지 반성해 본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는 법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