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재운 Aug 30. 2023

우리 아이의 거짓말

돼지꿈 결과는??!!

지난주, 이제 32개월이 된 우리 아들이 돼지가 춤을 추는 꿈을 꾸었다고 아빠에게 말했고, 아빠는 그 꿈을 젤리 한 봉지로 샀다. ( 돼지꿈 산 아빠 이야기: 링크 )


퇴근길에 위 링크에 나온 챗GPT가 찍어준 로또 번호로 로또를 한 장 사고는 까마득하게 까먹고 있었다. 주말 내내 워터파크 방문, 이모님 댁 방문 등으로 정신없이 보내다 일요일 저녁 동생과의 통화에서 다시 기억이 난 돼지꿈 사건과 로또! 결과를 확인해 보니 두둥!! 낙첨!!





이렇게 32개월 아들의 돼지꿈 해프닝은 낙첨으로 마무리되었나 했지만, 그 여파는 아직도 남아있다. 지난 금요일 아침,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잠에서 깬 아들에게 물어본다.


아빠 : 잘 잤어? 좋은 꿈 꿨어?
아들 : 젤리 줘!!


아니 이게 무슨 동문서답인가??!!


비몽사몽이어서 그런지, 아직 논리적 추론 과정이 완벽하지 않아서인지 우리 아들의 추론 과정에서 중간 과정이 많이 생략되었나 보다. 아빠가 꿈 이야기를 물어보면, 돼지꿈을 꿨다고 이야기를 하고, 이걸 아빠에게 팔면 젤리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 같은 우리 아들. 하지만 중간 과정이 다 생략이 되어버리고 바로 결론부터 나와버린 것.


아빠는 아들에게 바로 젤리를 달라고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며, 지난번에 젤리를 받게 된 이유는 돼지꿈을 팔아서였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이해를 했는지 안 했는지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그날 아침의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낮잠을 잔 아들과의 대화.


아빠 : 잘 잤어?
아들 : 돼지꿈 꿨어. 젤리 줘!!


아니 이건 젤리를 받기 위한 아들의 거짓말??!!!!!

중간 과정이 생략되었다고 이야기를 해서일까. 돼지꿈 꿨다는 이야기를 하며 바로 원하는 걸 요구하는 32개월 아들.




일반적으로 32개월, 만 2세 아이는 거짓말 개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2세 아이는 '진실'과 '거짓'의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의 말을 거짓말로 간주하기 전에 왜 그런 상황이 발생했는지를 유심히 볼 필요하기 있다. 특히 아이는 상상력을 발휘하거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표현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성인이 생각하는 '거짓말'과 유사하게 보일 수 있다.


돼지꿈을 꾸고 아빠에게 이야기하면 젤리가 나온다는 것을 터득한 32개월 소악마. 그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황을 왜곡하기로, 성인이 느끼기에는 거짓말로 느껴질 수 있는 대화를 시도한다. 이러한 소악마의 시도는 거짓말을 '의도적'으로 했다기보다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간단한 하지만 본능적인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혹은 아빠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


아이는 자신의 말에 어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해하고 이를 끊임없이 확인한다. 돼지와 꿈을 꿨다는 이야기를 하면 아빠는 또 반응을 할지 시험을 해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와 유사한 것이 요즘 우리 아이는 '아빠 싫어', '아빠 좋아'를 반복하며 아빠의 반응을 살펴본다. 어른이 봤을 때는 거짓말이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단순히 주변 환경과의 상호 작용을 탐색하는 방법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과연 우리 아이가 돼지와 춤을 췄다고 하는 꿈 이야기는 사실일까?


돼지꿈을 샀다고 글을 쓰긴 했지만 애초부터 우리 아이의 꿈 이야기는 신뢰도가 떨어진다. 무슨 꿈꿨는지 물어보면 늘 최근에 봤던 그림책에 나오는 동물 이야기를 한다. 혹은 잠자리에 들면서 가지고 놀았던 인형의 종인 동물이 꿈에 등장했다는 이야기를 할 때도 있다. 최근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는 '아기 돼지 3형제'이다. 특히 막내 아기 돼지가 튼튼한 집을 지어 늑대가 나타나도 끄떡없었다는 걸 이해하고 나서부터는 "튼튼한 집을 지읍시다" 하면서 블록을 쌓고 있다. 또한, 어린이집에서 배운 춤도 자주 춘다. 최근의 관심사인 '돼지'와 '춤'. 이것이 아이의 무의식에서 결합한 게 돼지꿈의 정체가 아닐까?


아이는 활발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아이가 말하는 것은 현실이 아닌 상상 속에서 경험한 것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이야기하는 것은 거짓말일까? 이는 거짓말이라기보다는 아이의 상상력이라 볼 수 있다.




아이의 거짓말 아닌 거짓말 사태를 보면 자연스레 또 다른 아이(AI), 인공지능의 거짓말이 떠오른다. 챗GPT의 경우에도 의도치 않은 거짓말,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이라고 부르는 환각 현상 때문에 논란이 종종 벌어진다. 인공지능, 특히 챗GPT의 할루시네이션 이슈에 관해서는 브런치 가입 초창기에 쓴 글에 잘 정리가 되어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해 보시길.


글 링크 : [챗GPT] 이제 세종대왕은 맥북을 안 던진다




우리 아이의 젤리를 받기 위한 깜찍한 거짓말은 아이가 세계를 이해하고, 상호작용하고, 표현하는 방식을 배워가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아이가 한 깜찍한 거짓말을 들을 때는 아이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챗GPT의 세종대왕 맥북 투척 사건 역시 재미를 위한 대화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면, 웃으며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아이의 거짓말, 인공지능의 거짓말로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문제가 유발된다면 이를 진지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아이가 의도적으로 '거짓'의 개념을 익힌 상황에서 눈앞의 현실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추후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아이가 '거짓'을 알고 이야기하는지 아닌지를 부모는 잘 판단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접근 방법이 조금 다르다. 인공지능은 아이와 달리 일부러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진짜 모르고 거짓말을 한다. 따라서 판단은 사람이 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대화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반드시 크로스체크를 하고 팩트를 체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공지능의 할루시네이션으로 인해 많은 문제가 벌어질 수 있다. 인공지능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유념해야 할 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