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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운 Oct 05. 2023

과거부터 이어진 기계에 대한 사랑

AI를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 - 과거

33개월의 우리 아들은 카봇을 사랑한다. 카봇은 자동차와 로봇의 합성어로 아이들에게 선풍적으로 인기 있는 장난감 중 하나이다. 아직 카봇 애니메이션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음에도 선물 받은 카봇 장난감만으로도 이미 사랑에 빠졌다. 마트에서 보는 모든 로봇 장난감은 우리 아이에게 카봇이다. 그리고 카봇 주제가도 상당히 좋아한다. (노래만 실컷 듣고 아직 애니메이션은 못 본 불쌍한 녀석) 이번 추석 연휴, 악동의 친가와 외가에서는 쉴 새 없이 '헬로 카봇' 주제가가 나왔고, 우리 악동은 그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엉덩이를 흔들고 춤을 춘다. 이를 보는 가족들은 모두 배를 쨌다. 


이처럼 우리 아들은 로봇을 사랑한다. 과거 안면도에 여행을 갔을 때에도 구석에 방치된 로봇에 푹 빠진 바 있다. 우리 아이뿐만 아니라 다수의 아이들이 로봇 혹은 인형에 푹 빠진다. 사람과 같은 모양의, 하지만 사람은 아닌 창조물에 대한 사랑은 누구나 한 번 거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만든 창조물에 대한 사랑은 현대 장난감들이 보급되며 나타난 현상일까? 그건 아니다. 인간이 만든 창조물과 사랑에 빠지는 주제의 작품들은 고대부터 여러 문화와 문학에서 다뤄지고 있다. 


현재의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시선은 극단적이다. 인공지능이 인류를 절멸시킬 것이라는 극단적 생각부터 인공지능이 우리의 동반자를 넘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다수 존재한다. 우리와 인공지능의 관계 정립을 위해 다양한 관점에서 방법들을 고민해야겠지만, 그중 하나는 인류가 그동안 다뤄온 인공지능, 넓게는 기계에 대한 사유를 정리해 보는 것이다. 먼저 인류가 그동안 기계 그리고 인공지능을 긍정적인 시선에서 바라본 예술 작품들을 살펴보며 인공지능과 인간의 미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지 고민해 보자. 




인간이 직접 만든 창조물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유명한 예로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피그말리온(Pygmalion)이 있다.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만든 여성상에 반하게 되고 그녀를 인간으로 만들어주기를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기원한다. 소원은 이루어졌고 피그말리온은 인간이 된 조각상 갈라테이아(Galateia)와 결혼하여 자녀도 두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피그말리온 신화는 이후 여러 문학 작품과 연극, 영화 등에 영향을 주게 된다. 특히 조각상이 인간이 된다는 핵심 아이디어는 이후 나타나는 수많은 작품에서 변형되어 재창조된다. 

피그말리온 신화를 표현하는 작품 중 하나


피그말리온 신화 이후, 대중 작품에서 나타난 가장 유명한 인간이 만든 창조물 이야기는 바로 <피노키오>와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양철 나무꾼' (Tin Woodman) 일 것이다. 이 둘은 너무 유명하니 간단하게만 살펴보자. 


피노키오(Pinocchio)는 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콜로디(Carlo Collodi)가 1883년 출간한 소설 <피노키오의 모험> (Le avventure di Pinnocchio)에 등장하는 나무 인형으로 그의 창조자는 할아버지 제페토(Geppetto)이다. 피노키오는 거짓말도 하고 장난도 치며 말썽을 부리지만 여러 경험을 통해 성장하여 결국 진짜 소년이 되어 제페토 할아버지와 행복하게 살게 된다. 피노키오는 인간의 창조물이 진짜 인간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통해 인간성, 성장 그리고 창조물에 대한 책임을 탐구한다. 


1900년 발간된 미국의 판타지 소설 <오즈의 마법사> (The Wonderful Wizard of Oz)에서는 '양철 나무꾼'이 등장한다. 그는 처음에는 진짜 나무꾼이었으나 마법에 걸려 몸의 각 부분이 양철판으로 교체되며 완전히 양철로 된 인간 형태가 되어버린다. 양철 나무꾼은 심장이 없다. 그는 심장을 가지고 싶어 하고 이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느끼고 싶어 한다. 이로 인해 양철 나무꾼은 '캔자스 외딴 시골집에서 어느 날 잠을 자고 있을 때 무서운 회오리바람 타고' 나타난 도로시(Dorothy)와 함께 오즈의 마법사에게 심장을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여정을 떠나게 된다. 


양철 나무꾼의 여행은 인간성과 감정에 대한 성찰이라 볼 수 있다. 양철 나무꾼은 심장을 가져 인간의 감정과 연민을 느끼고 싶어 한다. 이는 인간이 만든 창조물이나 인공지능이 진정한 인간의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고민과도 연결될 수 있다. 


이렇듯 여러 문화와 시대에서 인간과 그 창조물에 대한 고민은 지속되었다. 인간의 창조물에 대한 사랑이나 애착, 그리고 질투와 분노의 감정은 인간의 창조력과 욕망,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깊은 탐구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아직 인공지능이 등장하지 않은 1900년 이전에도 이처럼 인간의 지능과 감정을 가진 기계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인류의 사고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유사한 면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고민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미래를 조망해 봐야 하는 것이다. 


(좌) 월트 디즈니 버전 피노키오 / (우) 초딩 시절 즐겁게 본 오즈의 마법사 애니




마지막으로 다뤄볼 작품은 위의 작품들보다는 조금 덜 유명하지만, 소프라노 조수미의 영상을 보면 떠오를 수도 있는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The Tales of Hoffmann)이다. 오페레타를 주로 써온 자크 오펜바흐(Jarques Offenbach)의 유일한 오페라로 그가 죽기 직전까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지만, 초연 무대 몇 달 전 사망하여 무대를 보지는 못한 비극적인 스토리도 가지고 있다.  


'호프만의 이야기' 오페라는 호프만의 3가지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중 하나가 미친 과학자 스팔란차니가 만든 귀엽고 사랑스러운 기계인형 '올림피아'에 관한 이야기이다. 올림피아는 자동인형이고 부르는 노래는 박자에 맞지 않고 태엽을 감는 기계적인 동작을 하는 등 인간답지 않은 모습을 계속 보이게 된다. 하지만 호프만은 일종의 증강현실이라고도 볼 수 있는 기계 안경을 쓰고 있어 올림피아에게 사랑에 빠져있다. 그러다 안경이 깨지고 나서야 비로소 실체를 깨닫고 환상에서 깨어나는 것이 주 내용이다. 


기계인형 올림피아와 호프만의 사랑 얘기를 두고 보통은 당시 사회를 풍자하는 것으로 해석을 한다. 인형처럼 화려하게 치장한 딸을 부자 손님들에게 보여주는 행위가 만연했던 당시 파리 사교계 현실을 올림피아에 빗대어 돌려깐 것이다. 그리고 올림피아는 이러한 풍습을 대변하는, 감정 없이 노래만 부르는 인형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좀 더 간단하게 해석해 보자면 호프만은 위선 가득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기계를 사랑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고도 볼 수 있다. 마치 훗날 나오게 될 영화 <Her>가 연상되지 않는가?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전부터 인류는 기계에 대한 사랑을 생각하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는 인공지능 개념이 등장한 후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예술 작품에서 나타나는 인공지능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 소프라노 조수미가 부른 <인형의 노래>를 감상해 보자. '인형의 노래'는 올림피아가 부른 노래로 '호프만의 이야기'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노래이다. 


https://youtu.be/-v8oHikKRoY?si=HpfZeEIJsOfri-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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