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아빠가 좋은 거야? 안 좋은 거야?
34개월의 우리 아들은 요즘 호불호가 확실하다. 좋은 것은 좋다, 싫은 것은 싫다고 명확하게 표현한다. 우리 아이에게 블록 놀이, 책 읽기, 젤리는 명백한 호의 영역이고, 치카 하기, 코 자기, 맘마 먹기는 명백한 불호의 영역이다. 이제는 사람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명확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낯을 가리지 않았는데, 이제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경계심을 가지며 이 사람이 좋은지 안 좋은지를 따지고 있다.
그런 우리 아이에게 확실한 호의 인물이 있다. 바로 엄마이다. 아이에게 엄마는 가장 사랑하는 존재로 엄마가 아무리 혼을 내도 엄마가 제일 좋다. 그래서 아이는 늘 얘기한다. "엄마 좋아" 그럼 아빠는 어떨까? 아이에게 아빠 좋은지 물어본다.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
아빠 이번에는 안 좋아
엄마처럼 아빠도 아이를 혼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아무리 엄마가 혼을 내도 엄마는 좋다고 하면서, 아빠가 혼을 내면 아빠는 안 좋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야근으로 늦게 집에 가게 되면 마찬가지로 "아빠 안 좋아"하면서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기까지 한다.
그러다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을 가지고, 책도 읽어주고 하면 아이의 마음이 풀어진다. 그때 다시 한번 물어본다. 아빠가 좋은지. 그러면 다시 돌아오는 대답.
아빠 이번에는 좋아
아니 엄마는 늘 좋으면서 왜 아빠는 좋았다가 안 좋았다가 하는 걸까.
마치 슈뢰딩거가 사유로 실험한 고양이 마냥 아빠는 아이의 세상에서 좋았다가 안 좋았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아니 슈뢰딩거의 아빠가 된 것만 같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자역학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가 제시한 사유 실험이다.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은 인간이 인식하는 물리학적 개념과 상반된다. 빛과 물질이 '입자면서 동시에 파동'이라는 것인데 이는 직관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중 슬릿 시험 등을 통해 입증되어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정하는 물리 이론이 바로 양자역학이다.
이러한 양자 이중성을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 양자 중첩(Quantum Superposition)이다. 전자와 원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자의 위치를 정확히 표현할 수 없다. 전자는 입자와 파동의 상호 별개 상태인데, 이들이 겹치고 겹쳐서 새로운 상태를 만들게 된다. 이처럼 미시세계에서는 전자가 파동이 되었다 입자가 되었다 하며 우리를 혼란하게 만들고 있다. 심지어 '관측'이라고 하는 외부 요인에 따라 입자와 파동 상태가 정해진다.
이러한 양자 중첩 개념은 막스 보른(Max Born)과 닐스 보어(Niels Bohr)가 속한 학파가 주장한 코펜하겐 해석에서 시작되었다. 양자의 상태는 관측 여부에 따라 사후에 결정된다는 것. 관측하지 않을 때는 파동의 형태로 존재하던 입자가 관측하는 순간 입자가 된다는 이 해석은 사람의 직관에 상당히 어긋난다. 이에 반기를 들고 나타난 사람이 바로 슈뢰딩거이다. (슈뢰딩거 역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다.)
슈뢰딩거는 양자 중첩에 대한 개념에 이의를 제기하며 다음과 같은 사유 실험을 이야기한다. 고양이와 원자가 밀폐된 상자에 있다고 가정하자. 원자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입자일 수도 있고 파동일 수도 있다. 이때 원자를 이용한 실험 장치를 하나 추가하자. 원자가 입자이면 실험 장치는 움직이지 않지만, 원자가 파동이면 실험 장치는 움직이게 되고 독약이 든 병을 깨트리게 된다. 그러면 고양이는 사망하게 될 것이다. 원자가 중첩 상태라고 가정한다면 상자 속 고양이는 살아있는 것인가 아니면 죽어있는 것인가?
슈뢰딩거는 이러한 역설적 상황을 가정하며 양자 중첩을 부정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은 거시세계에 대한 양자 확률과 양자 중첩의 개념을 설명하는 좋은 예로 바뀌었다.
실제로 슈뢰딩거가 가정한 고양이는 거시세계의 존재이다. 거시세계의 고양이 생사는 중첩되지 않는다. 미시세계의 양자는 파동이 구분할 수 있기에 중첩이 자연스레 발생할 수 있지만, 거시세계 고양이의 파장은 너무 짧아 둘 중 하나의 확정된 상태를 가지게 된다.
내가 연구하는 인공지능 분야를 비롯한 컴퓨터 분야에서 꼽고 있는 궁극의 기술이 있다. 바로 양자 컴퓨팅(Quantum Computing)이다. 0과 1을 가지는 현재의 컴퓨터 비트(bit)를 퀀텀 비트(quantum bit)로 바꿔 연산하는 것으로, 퀀텀 비트, 줄여서 큐비트(qbit)라고 부르는 존재는 0과 1의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가 관측 순간 0 또는 1로 결정된다.
현재 알파벳,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빅테크 기업들은 이미 양자컴퓨팅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고 있고, 스타트업도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아이온큐(IonQ)라는 양자컴퓨팅 스타트업은 기업가치가 20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양자컴퓨팅이 상용화되면 오늘날의 난제들은 손쉽게 해결될 수 있다. 특히, 현재 인공지능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인 높은 연산 부하와 메모리 사용 한계는 양자컴퓨팅 적용으로 해결 가능해진다. 그래서 양자컴퓨팅에 전 세계 국가들과 대학, 빅테크 기업들이 발 벗고 개발에 나서고 있다.
여전히 많은 기술적 난관이 양자컴퓨팅에 존재하고 있다. 얼마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초전도체 역시 개발만 된다면, 양자컴퓨팅의 난관을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주목받은 바 있다. 하지만 초전도체를 비롯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수히 많기에 양자컴퓨팅은 여전히 연구적인 측면에서만 진행이 되고 있다. 양자컴퓨팅의 전문가인 메릴랜드 대학의 산카르 다스 사르마(Sankar Das Sarma) 교수는 현재 양자 컴퓨팅이 어느 단계에 도달했는지에 대해 본인도 모른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현재 양자컴퓨팅은 어느 정도 단계일까? 1903년의 라이트 현제 수준일까? 1940년대에 첫 번째 제트기가 등장했을 정도일까? 어쩌면 아직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비행기를 구상했던 16세기 초반에 머무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잘 모르겠다. 아마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다시 슈뢰딩거의 고양이, 아니 슈뢰딩거의 아빠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렇다면 슈뢰딩거의 아빠는 어떤 상태일까? 아빠 역시 거시세계의 존재이기에 '좋음' 혹은 '안 좋음'이라는 둘 중 하나의 상태로 고정이 될 것이다. 좋으면서 안 좋은 중첩의 상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거시세계에 존재하는 아빠의 상태이다.
하지만 아이가 아빠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은 미시세계의 관념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이에게 아빠에 대한 감정은 좋으면서도 안 좋은 중첩 상태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좋아한다는 관념을 미시세계로 치환할 수는 있는 것일까? 양자의 세계와 감정의 세계는 다른데 말이다. 이쯤 되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도 모르는 상태까지 온 것이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아이와 놀아주고 있는데, 아이가 또 이야기한다.
아빠 갑자기 좋아졌어
분명 퇴근했을 때만 해도 '아빠 이번엔 안 좋아'라고 이야기했었다. 아빠가 늦게 퇴근해서 아이에게 아빠는 '안 좋은' 상황이었다. 그러다 아이와 놀아주니 아이의 심경이 변화한 것이다. 마치 관측자가 관측하는 순간 양자가 파동에서 입자로 변화하듯이, 아빠가 아이와 성심성의껏 놀아주니 아빠의 상태가 '안 좋음'에서 '좋음'으로 변화하였다.
더 이상 아빠의 상태가 중첩되지 않도록, 아이와의 시간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이제 쓸데없는 생각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