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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운 Nov 13. 2023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룬 아이

블록 조립에서 생각해 본 과학 혁명

만 2세, 34개월 우리 아들은 여느 아이처럼 블록 조립을 좋아한다. 예전에는 발산적 사고를 통해 블록을 여기 갖다 붙였다, 저기 갖다 붙였다 하면서 외형을 키우는데 집중을 했었는데, 최근에는 조금 작은 크기라도 목적하는 모양을 만드는데 집중을 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블록을 조립하는데 아이에게 생긴 원칙 하나가 있다.


대칭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아래 사진과 같이, 과거 대비해서 만든 블록의 크기는 줄었지만, 상하좌우 대칭을 완벽하게 만드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칭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블록을 한참 찾더니, 대칭을 만들고는 뿌듯한 미소를 짓는다.


대칭을 위한 블록을 찾는 중 / 대칭을 완성하고 뿌듯해함 (동영상 캡처라 화질이 안 좋습니다)


인류는 미술, 건축, 음악 등 예술 분야는 물론 수학과 과학, 공학의 영역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대칭성의 아름다움을 추구해 왔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 나타난 대칭에 대한 사랑이 아이에게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이든 집단무의식이든 다양한 이론으로 이를 해석할 수 있겠지만, 이론이 무엇이든지 간에 대칭을 자연적으로 추구하는 아이의 모습은 인류가 대칭에 본능적으로 끌린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대칭이 주는 아름다움, 심미적인 관점에서 출발한 위대한 발견들을 살펴볼 수 있다. 가장 유명한 사례 중 하나가 바로 코페르니쿠스(Copernicus)가 주장한 지동설일 것이다.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1781년 발표한 그의 저서 <순수이성비판>에서 자신의 사상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이야기한다. 칸트는 기존의 사람 이성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바꿔버린 자신의 위대한 인식론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깨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게 한 이론이나 사상에 자주 수식어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코페르니쿠스는 무엇을 했길래 이러한 비유의 대상이 된 것일까?


폴란드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는 1543년 당시 정설로 받아들여지던 천동설(지구중심설)을 뒤집는 지동설(태양중심설)을 발표했다. 과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그래도 지구는 돈다'로 유명한 갈릴레이가 태어나기도 전이다. 그래서 코페르니쿠스는 패러다임을 바꾼 대명사로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지동설 모델이 과거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모델보다 부정확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제 지구상에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천동설이 지동설보다 더 정확하다는 말에 반감이 들 수밖에 없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지동설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지동설 모델'이 천동설 모델보다 관측 결과를 설명하는데 더 부정확하다는 말이다.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과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주장한 천동설은 많은 수정을 거쳐오며 당시까지 관측된 우주 현상들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지금에서야 태양이 중심인 것을 알지만, 당시 지구 중심의 사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천동설은 절대 불변의 진리였다. 그래서 천동설을 통해 관측현상을 설명하려고 하니 모델이 상당히 복잡해지는 문제점이 발생하게 된다. 아래의 왼쪽 그림과 같이 16세기 무렵의 천동설에서 나타난 행성들의 궤도는 복잡함을 넘어 아스트랄하다. 그리고 천동설로도 설명할 수 없는 관측 결과들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철학적, 그리고 미학적 직관에서 시작하였다. 코페르니쿠스는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구와 태양 그리고 행성의 움직임이 심미적으로 봤을 때 아름답지 않았던 것. 그의 우주 모형은 고대 그리스 사상에 기반한 미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완벽한 대칭의 형태인 원의 형태로 간단하게 표현이 된다. 아래 두 그림을 얼핏 보더라도 미적으로 지동설이 더 뛰어남을 알 수 있다.


(좌) 천동설의 복잡한 궤도 / (우) 코페르니쿠스의 아름다운 지동설 모형



우리는 보통 지동설이 박해받고 천동설이 정설로 남아있었던 이유를 가톨릭에서 찾는다. 신과 그를 따르는 인간이 중심이 되는 중세 세계관에서 지구가 돌고 있다는 사실은 신성모독으로 취급되었다고 배워왔다. 물론 이러한 배경이 없지는 않았지만 지동설이 정설로 채택되지 않은 이유는 코페르니쿠스 모형의 수학적 모델의 부재가 컸다.


천동설은 행성들의 궤도를 상당히 복잡하게 가져가며 당시 관측된 현상들을 수학적으로 '대부분' 설명할 수 있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원 궤도로 지구를 비롯한 행성들의 궤도를 설명하였고 천동설 대비 정확도가 조금 떨어지게 된다. 결정적으로 연주시차라고 하는 개념을 설명하는 데에도 실패하고 만다.




그렇다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대칭과 심미에만 집착하다 실패한 모형일까?


위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이 되고 끝이 난다면 칸트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당시 관측 결과를 완벽하게 설명해주지는 못했지만 그가 던진 이론의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이후 인류의 우주관은 바뀌기 시작한다. 코페르니쿠스로부터 영향을 받은 갈릴레이와 티코 브라헤(Tycho Brahe), 그리고 그의 조수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의 관측과 이론 정립으로 지동설은 천동설을 앞지르기 시작하고, 고전 역학의 끝판왕 아이작 뉴턴(Issac Newton)이 제안한 역학 체계로 '모든 우주의 역학'이 동일함을 설명하게 되며 천동설은 비로소 폐기된다.


여기서 한 가지 역사가 재밌는 것은 코페르니쿠스 모형을 보완한 케플러의 모형이다. 심미적 관점에서 완벽한 대칭 형태인 원에만 집착한 코페르니쿠스의 모형과 달리 케플러의 모형은 타원의 개념을 도입한다.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가 거부한 비대칭의 전형, 타원 궤도를 도입하며 지동설을 완벽하게 수학적으로 설명하게 된다.


케플러가 도입한 타원 궤도 (출처: 문명여행자 유튜브)


2013년 톰 지크프리트(Tom Siegfried)가 사이언스뉴스(ScienceNews)에 기고한 기사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인류 역사상 가장 혁명적 이론으로 꼽혔다. 진화론, 양자론, 상대성이론을 제치고 지동설이 1위에 오른 것이다. 얼핏 보면 다른 이론들이 더 혁명적인 것 같지만 지크프리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It's Number 1 because it was the first


그리고 이에 부연하기로 혁명(revolutionary)이라는 말 자체도 코페르니쿠스가 자신의 저서 제목(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에 사용하기 전까지 거의(rarely)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인류 역사를 바꾼 과학의 시발점이 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지동설. 


인간의 대칭에 대한 심미학적 믿음에서 시작해서 비대칭의 타원이 완성한 이론을 통해, 우리는 대칭과 비대칭 그 어느 중간에서 끊임없이 진리를 탐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며칠 전 야근을 마치고 집에 가보니 아이가 신이 나있다. 아빠의 손을 잡아끌며 자신이 만든 작품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기차 모형이다. 평소에는 기다랗게 기찻길을 마구 늘여놓고 기차를 운행했는데,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놨다. 코페르니쿠스가 그렇게 갈망하던 완벽한 형태의 원 모양으로 철로를 만들어놓고, 기차를 무한으로 운행시키고 있었다. 아이가 만든 완벽한 원형의 기찻길에서 기차는 태양의 주위를 도는 지구처럼 일정 속도로 무한히 공전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는 타원이 아닌 완벽한 원형의 궤도로.


잘 만든 작품 앞에서는 늘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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