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석이 무서워요
어린 시절, 세계 7대 불가사의와 같은 미스터리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집에 있던 전집에는 이러한 미스터리만을 모아놓은 책들이 있었고, 세계 7대 불가사의 이외에도 버뮤다 삼각지대 같은 이야기도 어린아이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중에서 가장 관심이 갔던 미스터리는 바로.
공룡 대멸종의 원인이었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공룡 멸종의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었다. 당시 읽었던 책에서는 공룡 멸종의 원인으로 소행성 충돌, 화산 폭발과 함께 외계인이 공룡을 납치해 갔다는 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게다가 당시 TV에서 보던 만화에서는 외계인이 아기공룡둘리를 납치해 초능력을 탑재해 주었다. 그래서 외계인 납치설 역시 당시 어린 나에게는 매우 그럴듯해 보였다.
기원전 6600만 년 경 일어난 생물의 대멸종 사건인 백악기-팔레오기 멸종(K-Pg 멸종)은 공룡을 비롯해 지구상의 육상 생물종 75%를 절멸시켰다. 현재는 이러한 대멸종의 원인을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소행성과 지구의 충돌로 공룡이 멸종했다는 것은 1980년대부터 제기된 주장이다. 하지만 대멸종을 불러온 충돌이면 당연히 있어야 할 크레이터가 발견되지 않아 소행성 충돌설이 주류 의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다 1990년대 멕시코에 있는 유카탄 반도에서 크레이터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2018년 독일 함부르크 대학의 울리히 릴러(Ulrich Riller)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유카탄 반도의 크레이터가 공룡 멸종과 연관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에 발표한다. 또한, 2020년에는 미국 예일대의 핀셀리 헐(Pincelli Hull) 연구팀이 6600만 년 전 공룡을 사라지게 한 대멸종의 원인은 소행성 충돌이라는 결과를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에 공개했다. 반론 의견들도 있긴 하지만, 현재 학계의 주류 견해에 따르면 공룡 멸종은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떨어진 소행성 때문이다.
유카탄 반도에 떨어진 소행성의 잔해는 전 지구를 뒤엎었으며, 몇 시간 만에 대부분의 육상 생명체가 목숨을 잃는다. 또한 충돌 후폭풍으로 먼지와 그을음이 하늘을 뒤덮게 되어 태양 빛이 지표면에 닿지 못하게 된다.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진 긴 겨울로 많은 생물들이 멸종하고 만다.
이제 35개월이 된 우리 아들은 자동차와 우주를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허나 최근에는 공룡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공룡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고,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은 자동차와 공룡이 결합된 '고고 다이노'이다.
몇 달 전 함께 우주 다큐멘터리를 시청할 때, 아이는 공룡이 사는 지구에 운석이 떨어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 이전글 참고 : 블랙홀에 빠지면 누가 구해주나 ) 그 장면이 꽤나 충격적이었는지 이후 아이는 공룡 사망 사건에 대해 자주 물어보곤 했다.
아이 : 아빠 공룡 왜 죽었어?
아빠 : 우주에서 돌멩이가 떨어져서 공룡들이 죽었어
아이 : 우주에서 돌멩이 떨어져? 지금?
아빠 : 지금은 안 떨어져
아이 : 우주에서 돌멩이 떨어지면 집에 가야 해!
책상 밑으로 가야 해!
책상 밑에 종이와 연필 가지고 갈 거야.
그림 그리고 있을 거야.
(TMI. 어린이집에서 지진 대피 훈련을 받은 다음부터, 책상 밑, 식탁 밑이 제일 안전한 장소라고 믿고 있는 4살 어린이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영화 <그래비티>를 아빠와 함께 보고 나서 우주에서 돌멩이 떨어지는 것을 무서워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공룡들이 돌멩이가 떨어져서 죽었다는 소식에 조금 슬퍼하다가, 지금 사는 지구에도 우주에서 돌멩이가 떨어지면 어떡하나 걱정을 하고 있다. 그러고는 자신이 가장 안전하다 생각하는 책상 밑에 숨어있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냥 숨으면 심심하니 그림 그릴 수 있는 도구도 함께 가지고 가겠다고 한다. 벌써부터 대피 계획을 세우고, 대피 시 가져가야 할 물품을 챙기는 어린이다.
그럼 우리 아이가 걱정하는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사건은 또 벌어질까?
2023년 콜로라도 대학교의 오스카 푸엔테스-모뉴스(Oscar Fuentes-Muñoz)가 <천문학 저널(The Astronomical Journal)>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앞으로 천년 동안은 지구와 소행성 충돌 가능성이 없다고 한다. 푸엔테스-모뉴스가 이끄는 연구팀은 1km 이상 크기의 소행성 천 여개의 궤도를 서기 3000년까지 모델링하였다. 그 결과 충돌 위험이 가장 높은 소행성은 '1994 PC 1'이라는 천체로, 앞으로 천 년 안에 지구와 달 사이의 궤도로 들어올 확률이 0.00151%인 것으로 나타났다.
1km 이상 크기의 소행성들은 NASA에서 목록으로 작성하여 관리 중이다. 그들 모두의 궤적을 향후 1000년 이후까지 모델링했을 때까지의 결과이니 소행성 충돌에 대한 걱정은 조금 덜어도 괜찮을 것이다. 공룡이 멸종했을 때에도 10km 크기의 소행성이 충돌하였을 것이라 추정하니 대멸종 사태 같은 것이 벌어질 확률은 서기 3000년까지는 사실상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예 위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개수가 훨씬 더 많은 크기 1km 이하의 소행성들은 여전히 지구를 위협하고 있다. 2013년 러시아 상공에서 20m 유성이 폭발(지구에 충돌한 것도 아님)했을 때에도 수천 명이 부상을 입었다. 1908년의 러시아 퉁구스카 대폭발 역시 혜성이 공중에서 폭발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렇듯 크기가 작은 물체라도 우주에서 날아와 지구에 충돌하게 되면 큰 충격을 주게 된다. 지름 140m 크기의 소행성이 지구에 떨어지면 도시 하나쯤은 너끈히 파괴된다. 그래서 NASA를 비롯한 곳에서는 작은 크기의 소행성들의 궤도까지 예측하기 위한 관측과 연구를 진행 중이다.
며칠 전 아이는 다시 공룡의 멸종에 대해 아빠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이 : 아빠 공룡 왜 죽었어?
아빠 : 우주에서 돌멩이가 떨어져서 공룡들이 죽었어.
아이 : 돌멩이 맞아서 아야 한 거야?
아빠 : 직접 맞은 게 아니고, 돌멩이가 지구에 떨어져서 큰 불이 나서 공룡들이 도망을 갈 수 없었어.
아이 : 공룡 일어서!!라고 하면 살 거야!!
아빠 : 응?
아이 : 아빠랑 윤우랑 가서 공룡 일어서!! 도망가!! 하자
돌멩이가 떨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던 아이는 이제 공룡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돌이 떨어져서 공룡이 죽은 것이 꽤나 안타깝나 보다. 아빠와 함께 공룡에게 가서 '일어서' '도망가'를 해주면 공룡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이의 동심을 위해 아빠는 아이와 함께 공룡 장난감들에게 가서 '도망가'를 외쳐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