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위한 합종연횡

제11장 로마 곡물 거래에서 카카오까지, 기업결합의 역사

by 오후한시오분

기원전 30년, 옥타비아누스가 이집트를 정복하며 로마 제국은 지중해를 '내해(Mare Nostrum, 로마 제국이 지중해를 지칭하던 표현)'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깐, 로마는 곧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100만 명이 넘는 로마 시민들을 먹여 살려야 했던 것입니다. 이집트의 비옥한 나일강 유역에서 생산되는 곡물은 로마 제국의 생명줄이었지만 그 곡물을 운송하고 유통하는 과정에서 소수의 거대 상인들이 시장을 독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을 보면 이는 현대 경쟁법에서 '기업결합(企業結合)'이라고 부르는 현상의 가장 오래된 형태 중 하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대기업들의 인수합병도 본질적으로는 같은 맥락입니다. 더 큰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고 경쟁자를 제거하며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려는 욕망이 2000년 전 로마의 곡물상들과 21세기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로마 제국의 곡물 독점에서 시작해 현대의 기업결합 규제에 이르기까지 권력을 위한 합종연횡의 역사를 추적해 보겠습니다.


1. 로마 곡물 거래와 최초의 기업결합


로마 제국의 곡물 공급망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기적이었습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출발한 곡물선들이 지중해를 가로질러 로마의 포르투스 항구에 도착하기까지 복잡하고 정교한 유통 네트워크가 가동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소수의 대상인들이 점차 시장을 장악해 나갔습니다.


기원전 1세기경, 이집트 곡물 무역을 주도하던 대상인들은 소규모 곡물상들을 차례로 흡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수법은 교묘했습니다. 먼저 자본력을 바탕으로 곡물 구매 가격을 인위적으로 올려 소규모 상인들의 경쟁력을 약화시켰습니다. 그다음에는 운송선박과 창고 시설에 대한 독점적 접근권을 확보하여 경쟁자들의 사업 기반을 무너뜨렸습니다. 마지막에는 파산 직전에 몰린 소규모 업체들을 헐값에 인수하는 방식으로 시장 통합을 완성했습니다.

Gemini_Generated_Image_37rgcq37rgcq37rg.png ▲ 곡물 카르텔을 표현한 이미지 / AI 생성

이러한 과정을 통해 몇 개의 거대 곡물 카르텔이 형성되었고 이들은 사실상 이집트에서 로마로 향하는 곡물 공급을 독점하게 되었습니다. 로마 정부는 이들의 독점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곡물 가격 결정권과 공급량 조절권이 민간 대상인들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이는 현대 경쟁법에서 말하는 '수평결합(Horizontal Merger)'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업종의 경쟁업체들이 결합하여 시장 지배력을 강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욱 주목할 점은 이들 곡물 카르텔이 단순한 가격 담합을 넘어 '수직결합(Vertical Merger)'까지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곡물 생산에서부터 운송, 저장, 유통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일부 대상인들은 이집트 현지의 농장을 직접 소유하거나 임차하기 시작했고 자체 선박단과 창고 시설을 구축하여 경쟁자들이 시장에 진입할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했습니다.


이러한 기업결합의 결과는 예상할 수 있듯이 파괴적이었습니다. 곡물 가격은 급등했고 공급 불안정성이 증가했으며 로마 시민들의 생활은 소수 대상인들의 이익에 좌우되게 되었습니다. 특히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이들이 곡물 공급을 중단하거나 제한할 경우 로마 제국 전체가 혼란에 빠질 위험이 상존했습니다.


2. 현대 기업결합 규제의 탄생


현대적 의미의 기업결합 심사제도는 1976년 하트-스콧-로디노법(Hart-Scott-Rodino Act)으로 확립되었습니다. 이 법은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결합에 대해 사전 신고 의무를 부과하고 경쟁당국이 심사할 수 있는 대기 기간을 두도록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1981년 공정거래법 시행과 함께 유사한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기업결합 심사는 결합 유형에 따라 수평결합, 수직결합, 혼합결합으로 분류됩니다. 수평결합은 같은 시장의 경쟁업체 간 결합으로 가장 엄격하게 심사됩니다. 수직결합은 생산과 유통 등 상하위 단계 간 결합으로 시장 봉쇄 효과를 중점 검토합니다. 혼합결합은 서로 다른 업종 간 결합으로 잠재적 경쟁 저해나 지배력 전이 가능성을 살펴봅니다.


미국은 2023년 12월 기업결합 가이드라인을 대폭 개정하여 심사 기준을 강화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소비자 이익보다 반독점법 집행에 중점을 두는" 기조를 명확히 하고 경쟁제한성이 추정되는 기준을 하향 조정했습니다. 또한 연속적인 기업결합의 누적 효과를 고려하고 플랫폼이나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까지 심사 범위에 포함시켰습니다.

Gemini_Generated_Image_tvh1vytvh1vytvh1.png ▲ 기업결합을 표현한 이미지 / AI 생성

최근 우리나라 기업결합 동향은 디지털 경제 전환과 글로벌 기업결합 심사 강화 흐름에 맞춰 심사 기준과 제도를 선진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2023년 기준 공정거래위원회가 심사한 기업결합 건수는 전년 대비 9.7% 감소한 927건으로, 2년 연속 감소세를 보였습니다. 이는 고금리와 경기침체 우려로 인한 거래 감소가 주된 원인으로 분석됩니다. 반면 기업결합 금액은 일부 대규모 국제 기업결합의 영향으로 전년 대비 105조 원 증가한 431조 원에 달했습니다. 국내기업 간 결합은 739건, 금액은 55조 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37건, 3조 원 감소했습니다.


공정위는 디지털 플랫폼 등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들의 기업결합이 활발해지는 추세에 맞춰 2023년 말부터 기업결합 심사기준 개정안을 추진했습니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법 개정사항을 반영해 신고의무자 조항을 삭제하고, 영업양수의 신고 기준금액도 50억 원에서 100억 원을 상향했습니다. 또 신고대상이 아닌 거래유형도 추가하고 신고가 면제된 1/3 미만 임원 겸임을 간이심사 대상에서 삭제했습니다.

스크린샷 2025-09-19 230530.png

특히 기업결합 신고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경우 사전 협의를 요청할 수 있을 명시하기도 했습니다. 향후 공정위는 경쟁제한 우려가 극히 미미한 기업결합에 대해서는 신고를 면제하고 반대로 경쟁제한 우려가 있는 결합에는 시정방안 제출제도를 도입해 기업이 자율적으로 시정방안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하며 시정방안을 고려해 시정조치를 부과할 예정입니다.


3. 현대 기업결합 규제의 탄생


SM엔터테인먼트와 카카오의 기업결합은 국내 엔터테인먼트 및 음원 시장에서 다양한 형태의 결합이 동시에 발생한 대표적 사례로 평가됩니다. 특히 혼합결합의 관점에서 설명하면 카카오와 SM의 결합은 단순히 같은 시장(수평결합)이나 상하위 관계(수직결합)를 넘어 서로 다른 사업영역이 맞물려 시장 지배력이 확대될 수 있는 구조를 보입니다.


카카오는 메신저(카카오톡), 음원 플랫폼(멜론), 굿즈·이모티콘 등 다양한 디지털 서비스와 콘텐츠 사업을 영위합니다. 반면 SM은 K-POP 콘텐츠 기획·제작, 팬 플랫폼(디어유 버블 등)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핵심 사업자입니다. 두 회사의 결합으로 인해, 예를 들어 카카오톡·멜론 등 카카오의 플랫폼과 SM의 팬 플랫폼 서비스가 결합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이는 서로 다른 시장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 간 결합, 즉 혼합결합에 해당당합니다.

sm 카카오.jpg ▲ 카카오, SM엔터테인먼트 로고 / 각 홈페이지 캡처

공정거래위원회는 카카오와 SM의 결합에서 수평결합(가수 매니지먼트 등), 수직결합(음원 제작과 유통), 그리고 혼합결합(플랫폼 서비스와 팬 플랫폼 연계 등)이 모두 발생한다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사업영역이 결합될 경우 두 회사가 각자의 시장 지배력을 다른 시장으로 확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심사에서 주요 관건이었습니다. 특히 카카오가 SM의 인기 음원을 경쟁 음원 플랫폼에 적시에 공급하지 않거나 자사 플랫폼인 멜론에서 자사 음원을 우대하여 경쟁을 저해할 가능성을 우려했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유와 aespa가 동시에 컴백한다고 할 때 카카오가 자사 플랫폼인 멜론에는 두 아티스트의 음원을 즉시 제공하지만 경쟁 플랫폼(지니, 벅스 등)에는 이들의 음원 공급을 지연시키거나 제한적으로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음원 제작, 유통, 플랫폼 시장 전반에서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시장 진입 장벽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정위는 혼합결합에 따른 경쟁 제한 우려를 염두에 두고 플랫폼의 자사우대 방지, 독립적 점검기구 설치 등 시정조치를 조건으로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이는 혼합결합이 시장 경쟁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효과를 막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4.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도전


21세기에 들어 기업결합의 양상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산업 경계가 무너지고 혼합결합이 기업결합의 주요 형태로 부상했습니다. 2024년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가 심사한 기업결합 798건 중 혼합결합이 422건(52.9%)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플랫폼 기업들의 혼합결합은 기존과는 다른 특성을 보입니다. 첫째, 생태계 구축을 목적으로 합니다. 검색, 쇼핑, 결제, 콘텐츠 등 다양한 서비스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하여 사용자가 플랫폼을 벗어날 이유를 없애려고 합니다. 둘째, 데이터 독점을 추구합니다. 서로 다른 영역의 데이터를 결합하여 더 정교한 사용자 프로파일을 구축하고 시장 지배력을 강화합니다. 셋째, 잠재적 경쟁자 제거에 활용됩니다. 아직 작은 스타트업이지만 장래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을 미리 인수하여 경쟁 자체를 차단합니다.

Gemini_Generated_Image_1zrnap1zrnap1zrn.png ▲ 페이스북의 SNS 인수 / AI 생성

대표적인 사례가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2012년)과 왓츠앱(2014년) 인수입니다. 당시 두 인수 모두 미국과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의 승인을 받았지만 이후 페이스북이 소셜미디어 시장을 독점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특히 실증분석 결과 페이스북의 왓츠앱 인수 이후 페이스북 계열 앱들의 이윤이 경쟁 앱들보다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플랫폼 기업들의 혼합결합이 활발합니다. 카카오의 지그재그 인수, 네이버의 V-LIVE와 위버스 통합, 야놀자와 인터파크 결합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지난 2023년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플랫폼들의 혼합결합으로 인한 진입장벽 증대효과, 지배력 전이 가능성 등이 엄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라고 밝히며 심사 기준 강화 방침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로마 제국의 곡물 독점에서 시작하여 디지털 플랫폼의 혼합결합에 이르기까지, 기업결합은 인류 경제사의 지속적인 주제였습니다. 역사가 보여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적절히 규제되지 않은 기업결합은 시장 경쟁을 훼손하고 소비자 후생을 감소시키지만 지나친 규제는 효율성 증대와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만화경으로 표현한 기업결합 / AI 생성

그렇다면 경쟁당국은 어떤 기준으로 기업결합을 판단해야 할까요? 첫째, 동태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단순히 현재 시장 점유율만 보는 것이 아니라 기술 변화와 시장 진화 가능성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둘째, 효율성과 혁신 효과를 균형 있게 평가해야 합니다. 기업결합이 가져오는 경쟁 제한 효과와 효율성 증대 효과를 정교하게 비교 분석해야 합니다. 셋째, 글로벌 관점에서 일관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한 국가의 규제만으로는 다국적 기업들의 행동을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플랫폼 기업결합 심사 기준을 강화하고 있지만 혁신과 규제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로마 제국이 곡물 독점을 방치했다가 제국의 안정성을 위협받았던 것처럼 디지털 독점을 방치하면 경제 전체의 혁신 동력이 훼손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과도한 규제는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킬 위험도 있습니다. 결국 기업결합 규제의 핵심은 경쟁과 효율성의 균형입니다. 2000년 전 로마의 곡물상들이나 오늘날의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이나 모두 더 큰 시장 지배력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경쟁이 사라지고 혁신이 멈춘다면 결국 모든 이해관계자가 피해를 보게 됩니다.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며 지혜로운 규제 정책을 만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11화답안지를 돌려보는 경쟁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