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에 몸을 맡겨 흘러가다 보면 어느새 바다에 도착해 있는 것처럼, 변화는 알게 모르게 찾아온다. 그리고 모든 변화 앞에는 ‘마지막 순간’이 있다.
우린 모두 변화의 순간을 겪었다. 좋아하는 노래의 재생버튼을 마지막으로 눌렀던 순간, 몇 시간씩 서로의 고민을 나누던 친구와 마지막으로 통화했던 순간, 학교 가기 전 마지막으로 엄마가 머리를 묶어줬던 순간, 아끼는 옷과 립스틱을 마지막으로 골랐던 순간, 좋아하는 배우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검색했던 순간.
우린 그게 마지막인 줄 몰랐지만, 상관없다.
변화의 시작은 원래 그렇다.
인생의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과거에 비해 참 많은 게 변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어울리는 사람들, 내가 먹는 음식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시간을 보내는 것들이 달라져 있을 때. 그런 기분이 들 때면 울적하다.
한때 나는 두려운 것 없이 내 생각과 목소리를 크게 내던 당돌한 아이였는데.
한때 나는 동기들과 대학가 술집에서 시끌벅적 젊음을 이야기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었는데.
한때 나는 …
졸업논문 발표회가 끝나고 이제 정말 졸업이라는 생각을 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신입생 때는 대학이 나와 동기들의 것만 같았는데. 이곳에서 보낼 앞으로의 4년이 든든하게 느껴졌는데. 이전에 들렸던 학교는 나보다 다섯 살은 어린 학생들로 가득했다. 익숙한 건물이지만 그곳을 채운 사람들은 달라져 있었다. 이곳에서 밀려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더 이상 나의 세상이 아니구나.
얼마 전 <모던 패밀리>를 다 봤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0년에 걸쳐 촬영한 미국의 가족 드라마다. 어렸던 자녀들은 연애를 하고, 대학을 가고, 결혼을 하고, 직장을 구하고, 아이를 낳고, 집을 나간다. 조부모님은 하나둘 돌아가시고, 부모님은 늙어간다. 이런 흐름은 자연스러워서 영상을 볼 때는 알아채기 힘들다. 회상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은 흐른다”라고 말했다.
변화는 불가피하다.
변화는 필연적이다.
우리는 변화하는 세상 속에 사는 변화하는 존재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고, 모든 것은 변해있다.
좋은 변화도 있고 나쁜 변화도 있겠지만 변화의 속성이 어떻든 난 변화가 달갑지 않다. 작별의 시간도 안 주고 새로운 세상으로 내 손을 잡아당기는 변화가 원망스럽다. 흠뻑 젖고 나서야 비가 왔구나 날 바보로 만드는 가랑비 같아서 야속하다.
가끔은 지금에 오래 머물고 싶다. 모든 것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다. 내가 바라는 지금도 어떤 변화의 결과겠지만, 내일의 변화한 나는 변화를 원할지도 모르겠지만.
타성에 젖지 않을 만큼만 날 기다려주길.
마음의 준비와 작별의 시간을 남겨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