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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바다 Dec 31. 2023

1. 강아지 입양을 해도 될까.

이번 주에 누나와 함께 동물보호센터에 가서 강아지를 입양했다. 음성 쪽 동물병원에서 임시보호 중인 새끼 강아지가 누나 눈에 들어왔나보다. 동물병원에서 보니 쌍둥이였다. 한 마리는 남자, 한 마리는 여자였는데 그 중 누나는 여자애가 더 마음에 든다고 해서 여자 아이를 데리고 왔다. 입양신청서를 작성하면서 동물병원 수의사는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하는 거라고 하시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어차피 입양자를 찾지 못한 아이들은 안락사 시켜요."


나는 안락사라는 것이 그저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인지 알았지만 알고 보니 단순히 말해 죽이는 것이었다. 10일 안에 입양자를 찾지 못하면 죽는다는 말을 에둘러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데려간 아이가 아닌 나머지 한 마리 새끼 강아지는 곧 죽을 위기에 있다. 다행히 아직 보호소 입양공고는 있다. 하지만 어미견은 아예 입양공고에도 올리지 않았다.


데려온 아이의 이름은 룽지다. 누룽지. 입양신청서에 아이의 이름을 기입해야 한다고 하여 누나가 지은 즉흥적인 이름이다. 아마 이 이름으로 계속 부를 것 같다. 룽지는 위치는 어딘지 모를 컨테이너 밑에서 발견됐었다고 한다. 어미개와 두 마리의 새끼 강아지가 발견되어 보호소에서 보호를 하고 있었다는데, 아직 한 달도 안 된 강아지로 보였다.


처음 강아지를 입양한다고 했을 때도 누나와 의견이 갈렸다. 나는 적어도 3개월 이상의 강아지를 찾는 것이 좋다고 했지만, 누나는 어렸을 때부터 길러야 정이 든다며 어린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했다. 내가 즐겨보는 강아지 채널 유튜버분들은 적어도 3개월 정도는 어미와 같이 지낸 강아지를 입양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물론 유기견이나 기타 분양견들은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리며 보호를 받지 못한다. 길바닥 혹은 번식소에서 강아지들은 태어나며, 이들은 어디로 보내져야만 한다.


룽지를 입양하기 전에 누나는 우리 지역에서 개인이 비숑을 분양한다는 글을 보고 문의를 했는데 입양비 90만원을 불렀다고 한다. 너무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어떤 강아지들은 필요가 없어 죽임을 당하는데 어떤 강아지들은 그런 비싼 돈을 주고도 사고 팔리니 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강아지들을 사고 파는 것을 좋게 보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강아지를 반려견이라고 생각하지만 법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아직은 강아지는 소유물이다. 강아지는 소유물로서 보호되고 있다.


전에 공부를 하러 절에 갔던 적이 있다. 거기엔 강아지 2마리가 있었는데, 내가 사는 방 양 옆에서 나와 거의 같이 지내게 되었다. 이름은 살구와 비로. 절에는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인다. 당연히 좋은 사람들도 오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안보이는데서 살구나 비로를 향해 발길질을 하는 사람도 제법 있었다. 여럿이 모이는 곳에 있는 강아지들의 삶은 그닥 좋지는 않은 것 으로 보였다. 마음은 다 혼내주고 싶지만 내 강아지가 아니니 그저 바라만 봤을 뿐이다.


아빠가 내 짐을 옮겨주시러 내가 사는 절을 방문했을 때 아무 말 하지 않다가 어찌저찌 딱 한 마디 한 것이,

"저 강아지들한테 너무 정 주지 마라."였다.


아빠는 알고 계셨던 모양이다. 나와 다른 삶을 살았던 아빠는 아픈 현실을 더더욱 빨리 이해하셨을 것이다. 마음은 마음이나 실상은 마음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집에 룽지를 데리고 오니 하신 말씀이 "새끼 강아지를 어미개랑 떨어뜨려놓고 뭐하는 짓이냐, 책임지지도 못할 거 뭣하러 데리고 왔냐"였다. 의외로 아빠는 정이 많으신 것 같다. 하지만 정이 많으신 만큼 냉소적이시다. 다른 이에게 정을 주면 감당하지 못할까 두려워 아예 그런 정을 주시지 않으신다. 나도 약간은 그런 성격이다.


하지만 나는 아빠와 다른 삶을 살고 싶다. 삶을 냉소적으로 보고 싶지는 않다. 분명 현실은 냉소적으로 보인다. 강아지, 혹은 동물들은 항상 어디에서든 태어나며 필요가 없으면 폐기처분된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다른 세상에서는 비싼 돈을 주고도 팔리는 강아지들이 있다.


한켠으로는 '내가 이 강아지 단 한 마리만 데리고 온다고 하여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나에게만 중요한 한 마리의 강아지가 생긴 것이다. 실상은 나도 필요에 의해서 강아지를 받아온 것이고 따라서 나는 위선자'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가끔은 그 의도보다는 결과를 바라봐야 할 때도 있는 것 같다. 작게나마 누나와 내가 그 강아지를 입양하게 되어 "적어도" 한 마리가 구해졌다는 사실을 위안 삼을 뿐이다.



<- 첫 입양을 하고 데리고 오면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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