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처음으로 뒤집기를 했어요

133일 차 육아일기

by P맘한입 Mar 08. 2025

우리 딸 축복이의 하루는 2배속인가. 

일주일 전만 해도 손에 쥐지 못했던 딸랑이를 이제는 어렵지 않게 쥔다.  그저께는 '엄마', '아빠'라는 말에만 웃었었는데 이제는 '예뻐'라는 말에도 웃는다. 어제는 치발기를 잡고 자꾸 눈에 갖다 대서 눈 주위에 상처가 났는데 오늘은 입에 잘 넣는다.


2주쯤 전부터는 모로 누운 자세를 많이 했다. 일명 '나이키 자세'라고 하는데 영락없는 나이키 모양이다. 그래서 그제야 준비를 했다. 아기가 자주 누워있는 아기침대와 거실 매트 위에 홈캠거치대를 이용해 홈캠을 '제대로' 설치했다.


제대로? 제대로가 아니면 어땠는데? 출산하면 바로 필요하다고 해서 출산 들어가기 직전에 급하게 주문한 홈캠. 막상 조리원에서 나오니 어디 매달아 둘 데가 없고 딱히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사람 엉덩이 높이의 공기청정기 위에 놔두니... 뭐가 보이겠는가. 하여튼 그렇게 방치되던 홈캠. 너, 이제 빛을 발할 때가 왔어!



130일이 넘었는데 안 뒤집는 우리 축복이. 언제쯤 뒤집으려나 가슴이 콩닥콩닥했다. 주변 친구들 아기와 조리원 동기 아기들은 전부 뒤집는데 왜 우리 아기만 안 뒤집는가. 무슨 문제가 있나? 내가 너무 몸으로만 놀아줬나? 아기에게 책만 많이 읽어줬나? 터미타임을 열심히 안 시켜서 그런가? 120일이 넘어가면서부터 별 생각을 다하며 뒤집기를 기다렸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척했지만 내심 걱정이 되어 연휴 동안에는 아기 발달 관련된 육아서적까지 읽은 터였다.





그런데, 뒤집기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일어났다.


저녁 먹기 전, 친정 엄마가 와주셔서 엄마와 나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아기를 보고 있었다. 아기는 여느 때처럼 나이키자세를 취했고, 어제는 모로 누워 다리를 못 넘겼으나 오늘은 넘기는 엄청난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다리를 넘겼으니 팔만 빼면 되는데 그게 어려웠다. 나는 아기에게 계속 "팔 빼", "팔 빼"했지만 팔을 빼는 건 영 쉽지 않아 보였다. 급기야 울기 시작하는 우리 딸.


보다 못한 친정엄마는 옆에서 "머리를 들어야 해, 머리를!" 외치셨다. 그런데 아기가 그걸 알아들은 건지 머리를 들어 퉁 하고 땅에 떨어뜨리고, 퉁 들어 땅에 떨어뜨리는 게 아닌가?


될 듯 말 듯, 될 듯 말 듯

"어, 됐다!"

그렇게 뒤집기의 순간은 갑자기 찾아왔다.


나는 너무 갑자기라 놀라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아기가 대견해서 어쩔 줄 모르겠는데 아기는 정작 평온하고 태연한 얼굴이 아닌가. 황당해요, 황당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으앙, 하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 한 아기의 엄마가 되었는데도 나는 아직도 어쩔 수 없는 엄마의 아기인가 보다. 눈물부터 나오는 걸 보니. 벅차오르는 감정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우리 아기 장하다고, 칭찬해 준다고 부둥부둥 안고 울었다.


행복하고 대견하고 안도감이 드는 마음이 한데 섞인 눈물이었다.





나는 MBTI에서 P성향, 즉 즉흥성향이 강하다. 그러나 여느 P와는 다르게(?) 마감기한에 닥쳐서 해도 할 건 다한다. 그런 내 성향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뭐 좋은 거라고 딱히 자랑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부정할 수가 없다. 이번에도 증명되었다. 홈캠은 아기가 뒤집기 이틀 전, 너무 늦지 않게 설치되었으니 말이다.


나의 P지만 결국은 하긴 하는 성격 덕분에(?) 이 생생한 뒤집기 현장을 담을 수 있었다. 영상으로 만들어 남편도 보내주고 가족들에게 자랑자랑을 했다. 내가 아는 친구들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카톡방에 도배를 해도 모자를 만한 흥분이 일었다.


하지만 꾹 참았다. 아기가 없는 친구에게 말한다면, 부모에게 뒤집기가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기에 말해도 감흥이 없을 것이다. 또 육아 동지 친구에게 말한다면, 혹시 그 친구 아기는 뒤집기를 했을 수도, 못했을 수도 있는데 우리 아기를 비교의 대상이 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아기가 빠른 거라면 친구가 불안함을 느낄 수 있고, 우리 아기가 늦은 거라면 괜히 내가 기분이 안 좋을 테니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테지만 나 혼자 오바하며 복잡하게 생각하는 거 인정한다. 어쨌거나 나는 가족 외 누구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이렇게 글로나마 적고 있다. 이렇게 해서라도 그 감격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다.







사람이 태어났으면 뒤집는 거? 당연한 거다. 그런데 그 당연한 거 하나라도 우리 아기가 했을 때는 너무 대견하고 감사하게 된다. 부모가 된다는 건 당연한 일에 아주 큰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건가 보다.


이제 뒤집었으니 한 시름 놓았다. 그런데 우리 아기, 한쪽으로만 뒤집는 거 같은데 그게 왼쪽이다. 손아귀 힘도 왼손이 더 센데, 왼손잡이려나? 또 다른 걱정 시작이다. 이렇게, 아이는 기쁨과 걱정을 안겨주며 아이는 커가나 보다.








P여도, 일만 있으면 울고 보는 아직 우리 엄마에겐 아기라도, 어찌어찌 엄마역할을 해나가고 있다. 한참 부족한 엄마지만 P맘은 매일매일 그 일상을 글로 담아보려 한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