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일 차 아기 육아일기
육아로 인해 집에 갇혀 있는 나를 위해 대학 동기 친구들이 집에 와준단다. 오늘의 모임이 더 기대되는 이유는 친구의 아기를 처음 만나는 날이기 때문. 친구 아기는 우리 축복이와 같은 달에 태어난 동갑내기 아가이다.
요리에 서툰 새댁은 아무리 손님이 온대도 음식을 차리는 건 어림도 없다. 대신에 베이킹을 좀 해보기로 했다. 요즘 베이킹에 빠져 있으니까 내가 연습했던 걸로 대접해 볼까!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바나나빵과 최근에 맛 들인 에그타르트를 선보이기로 했다. 당일은 정신없을 것에 대비해 모임 전날 반죽을 하기로 했다. 하필이면 육퇴(육아퇴근)가 늦어 밤 12시가 넘어서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타르트지를 만들 때 반죽을 해놓고 냉장고에 30분 이상 식혀야 하는데 반죽만 끝냈을 뿐인데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져 갔다. 결국 냉장고에 반죽을 넣어두고 나머지 작업은 초대 당일에 일어나서 하리라.
오후 1시에 오는 친구들을 맞기 위해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일했다. 방청소도 하고 미관을 해치는 것들은 벽장 안에 밀어 넣었다.
그런데 이 에그타르트라는 것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타르트지 반죽만 만들어 놓으면 거의 다 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타르트지를 만드는 것 만 해도 시간이 엄청 걸렸다. 어찌나 바쁜지 하나 만드는 데 시간을 제면서까지 바삐 움직여도 12구 한판을 다 만드는데 30분은 걸렸다.
이 정도 속도라면 바나나브레드까지 만들기는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하던 중 축복이가 깼다. 축복이를 홈캠으로 바라보면서 에그타르트 마무리 작업을 하다가 깨어 있는 아기에게 갔다. 다행히 아기는 혼자 놀고 있었는데 글쎄 이마 왼쪽에 빨간 상처가 나 있었다.
울음소리도 나지 않았고 홈캠으로 계속 살폈다고 생각하는데 언제 상처가 났을까? 이제는 자유자재로 잘 뒤집는 축복이가 침대에 난간에 부딪혔나 싶었다. 이렇게 되니 괜히 잘하지도 못하면서 베이킹을 한답시고 아기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 같아 속상했다.
한 30분쯤 지나자 빨간 상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축복이가 왼쪽으로 주로 뒤집기 때문에 이마를 땅에 대고 있느라 생긴 자국이었던 것 같다.
하여튼 오늘 깨달은 것은 아기가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 베이킹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는 것. 뒤집기만 해도 이런데 베이킹하다가 눈을 잠깐이라도 떼는 바람에 아기가 다치면 큰일 날 거 같다.
하지만 P엄마의 벼락치기 준비는 끝나지 않았다. 바로 외모 단장. 오늘 오전에 미용실이 예약되어 있었다.
출산하고 한 달 후에 바로 매직을 해서 친정 엄마에게 한소리 들었다. 하기야 머리를 하고서 어딜 나가거나 사람들과 교류를 하지 않았으니 그렇게 유난 떨 필요는 없었던 거 같다.
하지만 그때 머리를 한 지도 꽤 지나서 지금은 다시 지저분한 모습이 되었다. 그러니 처음 매직했던 게 아까워서라도 관리된 모습으로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다.
내가 5개월짜리 아기를 키우면서 사람들을 얼마나 만나겠나. 그러니 조금은 대충, 어린 아기 키우는 엄마답게, 수더분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만나도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가끔 사람을 만나는 그때라도 예쁜 엄마이고 싶은 마음이다. '출산하고 변했다', '아기 낳더니 아줌마 다 됐다'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아니 스스로도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누가 들으면 참 유난스럽고 어떻게 보면 강박적이라고까지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준비된 모습으로 친구들을 맞고 싶었다. 그래서 친정 부모님 찬스를 써서 친구들이 오기 직전에 머리를 자르고 드라이를 받았다. 토요일이라 얼마나 또 미용실에 사람이 많은지 시간을 맞추지 못할까 봐 두근두근했다.
아기 낳기 전이나 지금이나 왜 이렇게 내 인생은 급하고 여유가 없지? 이게 다 미리미리 하지 않는 P라서 그런 거 같다. 이건 좋은 말로 포장한 거고, 결국 게을러서 그렇지 뭐.
제발 미리미리 하자!
아기가 있는 친구가 첫 손님이었다. 멀리에서 오느라 오자마자 기저귀를 갈겠다고 해서 우리 매트 한 자리를 내어줬다. 그리고 막 졸려하던 참인 우리 축복이를 데려왔다. 두 아기의 첫 만남은 과연 어떨까!
3, 2, 1
으앙!
우리 집이 낯선, 친구 아기가 울자 우리 축복이도 덩달아 같이 울었다. 이런 장면은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와 친구는 엄청나게 웃었다. 우리의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아기들의 울음소리는 더 커졌다. 우리 집이 삽시간에 정신없는 집이 되었다.
친구 아기는 한 시간 반 정도를 칭얼대고 울었다. 우리 집과 또 새로 보는 사람들에 익숙해지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그 이후에는 살짝 미소도 보이며 나름대로 즐겁게 놀았다.
우리 축복이도 처음에는 친구의 울음에 반응했지만 나중에는 그러려니 하고 혼자 마이웨이를 갔다. 이모들이(내 친구들이) 예뻐해 주면 예뻐해 주는 대로, 수다 떨면 수다 떠는 대로 크게 울거나 보채지 않고 잘 있어 주었다. 친구 아기는 사진 보다도 귀엽고 예뻤다. 정신없이 바쁘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 시간이었다.
축복이는 MBTI E,
딱딱이(친구 아기)는 I인가 봐.
진짜 그럴지도 모른다. 축복이는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말을 걸어주니 발을 동동 구르고 행복해했다. 이모들에 둘러싸여 헤헤거리고, 처음 보는 이모에게 잘 안겨 있는 바람에 나는 친구들이 와 있는 동안 축복이를 안지 않아도 되었다.
반면에 친구 아기는 말을 걸면 무서운지 울어버리고 우리의 관심이 떠나가면 그제야 우리가 궁금한지 수줍게 쳐다보았다. 외출을 거의 안 했던 아기라 더 그런 걸 수도 있다.
아기들은 매일매일이 다르기 때문에 달라질 수도 있다. 다음에 만나면 어떤 모습이려나.
친구들이 가고 나니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와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와 아무런 관련 없는 코미디언 박나래 씨가 갑자기 떠오른다. 그분은 정말 대단한 분이다.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을 매일같이 초대하지. 나는 집에서 나래바 같은 걸 운영할 성격은 아닌가 보다. 한 번에 초대로 진이 다 빠진다.
하지만 앞으로 1, 2년 정도는 집에 사람을 초대하지 않으면 혹은 집으로 놀러 가지 않으면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렇게 육아 때문에 집에 처박힌(?) 나를 찾아주는 것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