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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지만 혼자인 벚꽃 나들이

171일 차 아기 육아일기

by P맘한입

주말에 비소식이 있다. 조리원 동기 언니와 아기를 데리고 벚꽃 구경을 가기로 했는데 미루게 되었다.


벚꽃엔딩을 받아들이며 혼자 아기띠를 하고 외출해 보기로 했다. 유모차를 구입한 후 유모차 산책은 4번 해봤는데, 아기띠 산책은 처음이다.


안 그래도 아기가 잘 때마다 안아 재워야 해서 어깨가 잔뜩 뭉쳤다. 그런데도 아기띠를 하고 나가는 게 맞는가. 스스로도 반신반의하며 나갔다.


날이 좋다 하니 두껍지 않은 벚꽃색 가디건을 꺼내 입었다. 이 얼마만의 가디건인가! 임신, 출산 기간 동안 입은 칙칙한 색의 옷에서 드디어 벗어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축복이는 외투 없이 옷을 입히려니 괜히 감기에 걸릴까 싶어 내복을 입히고 그 위에 연보라색 원피스를 입혔다.


화사한 옷을 입고 두 모녀는 신나서 벚꽃 나들이에 나서는데...

신난 모녀. 아니 정확히는 신난 엄마. 현관에서 셀카를 찍어댄다.


헉헉 너무 덥다.


내가 생각한 따뜻하고 산뜻한 느낌을 넘어서 너무 더웠다. 아기띠 특성상 축복이와 나의 가슴이 완전히 밀착될 수밖에 없는 데다, 가디건이 필요 없을 만큼 따뜻한 날씨였다. 축복이 이마를 만져보니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이제 벚꽃은 안중에도 없다. 빨리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싶었다. 나의 힐링장소인 스타벅스로 걸음을 재촉했다. 의자에 앉으니 축복이도 나도 땀범벅이었다.


아기띠를 푸르고 내 가디건을 벗고, 축복이의 원피스를 하나 벗겨주었다. 그러고 앉아있는데 음료가 나왔다. 받으러 가야 하는데 곤란했다.


그 잠깐 때문에 아기띠를 다시 입기도 번거롭고, 그렇다고 아기를 잠깐 내려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아기띠를 앞에만 매고 뒤 버클은 채우지 않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음료를 받아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휴, 아기와 외출하면 음료 받는 것도 일이구나.


아이스 유자민트티가 빠르게 바닥을 드러낼 무렵, 축복이가 칭얼대기 시작했다. 내 경험상 축복이가 칭얼대는 경우는 두 가지다. 졸리거나 배고플 때. 수유는 나오기 직전에 하고 왔으니 졸린 모양이었다. 더 많이 칭얼대며 울음을 터뜨리기 전에 얼른 카페를 나서야 했다.


간신히 더위만 식혔을 때, 또 나갈 준비를 했다. 축복이의 보라색 원피스를 다시 입혀주고 내 분홍 가디건은 팔에 걸치고 가기로 했다. 카페에서 나오니 축복이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유모차를 타고 산책 나온 네 번 모두 잠들었는데, 아기띠를 하고 나온 오늘도 역시 잠이 든 상태로 귀가하는군. 오늘도 벚꽃은 나 혼자 봤다.


늘 그랬듯이 벚꽃은 아름답다. 하지만 남편도 없이 혼자 보는 벚꽃은 아무런 느낌이 없다. 그래서 올해의 벚꽃은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하다. 내년엔 아장아장 걷는 축복이와 온 가족이 함께 벚꽃을 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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