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놀라게 하는 아빠: 아빠들은 다 장난꾸러기야?

265일 차 아기 육아일기

by P맘한입

몇 년 전, TV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쌍둥이 아이들을 키우는 이휘재 씨 방송분을 봤다. 촬영날은 엄마 없이 아빠가 오롯이 두 아이를 전담하는 날이었는데, 아빠는 아들들에게 이렇게 말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빠는 엄마하고는 완전히 달라.

아니나 다를까, 육아 초보 이휘재 씨는 조금은 프리하게 아이들을 돌봤다. 오죽하면 장염 걸려 과일을 먹으면 안 된다는 의사의 경고를 잊고 아기에게 바나나를 주기까지 했다. 엄마의 섬세함이 그리워지면서도 아빠의 엉성함과 장난스러움이 재미를 더하는 에피소드였다.




우리 집에 기린이 왔다. 우연히 선물 받은 건데, 안전벨트 커버란다. 하지만 0세 아기에게 안전벨트 커버는 필요하지 않으므로 인형으로 쓰기로 했다. 아직 우리 집에는 큰 인형이 없어서, 우리 집에 온 첫 큰 인형이었다.



'기린'이라는 동물 특성답게(?) 꽤나 큰 녀석이다. 크기가 우리 축복이 만하다. 그래도 푹신한 게, 귀엽게 생겼으니 아기가 좋아하겠지 싶었으나...


축복이는 예상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축복이는 기린을 보자마자 눈을 감고 얼굴을 땅에 파묻더니 엉엉 울었다. 왜 그러지?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축복이는 필사적으로 기린과 멀어지려 했다. 그걸 보고 나는 깨달았다.

아, 축복이가 기린을 무서워하는구나.


그 모습이 너무 황당하고 귀여웠다. 인형을 무서워할 거라곤 생각조차 못했다. 기린의 어떤 부분이 무서운 걸까? 거대한 크기? 아니면 동그란 눈?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는 녀석인데도 기린을 축복이에게 가까이 대자 축복이는 소스라치며 도망갔다. 이 모습을 놓칠 리가 없는 분, 바로 우리 남편이었다.


축복이가 놀라는 모습이 귀엽다면서 자꾸 기린을 땅 위에 세우고는 축복이를 위협(?)했다. 내가 아기가 트라우마 생긴다고 말렸지만 틈만 나면 기린을 빼들고 '이제는 안 무서워할지 모른다'며 자꾸만 시도를 했다. 하지만 축복이는 좀처럼 기린과 친해지지 못했다.


아, 물론, 축복이의 그런 모습이 귀엽긴 하다. 그래도 안쓰럽다. 하지만 남편은 웃기고 귀여워서 깔깔대며 웃는다. 그러면서 기린을 또 축복이 앞으로 들이민다. 못 말린다, 정말.

침대 밖에서 갑자기 날아든 기린. 물론 저 손은 아빠의 손이다.^^;;


아빠의 육아에 대하여 말들이 많다.


아빠는 아기를 놀아주는 게 아니라 아기를 가지고 논다.
아빠는 아기를 몸으로 놀아준다.


내가 아기를 낳기 전에는 그런가, 하고 긴가민가 했는데 남편과 함께 육아를 해보니 알겠다. 정말 그렇다. 나 혼자만 키운다면 절대 할 일 없는 일들을 남편은 아기에게 한다. 기린으로 놀라게 하기 뿐 아니다. 축복이 헹가래하기(아기의 순간 표정으로 봤을 때 매우 무서워한다), 바가지에 물 담아 물 끼얹으며 머리 감기기(이 또한 매번 울기에 싫어하는 게 분명하다), 레슬링 하듯이 아기 감싸서 못 나오게 만들기(이 또한 울며 불며 난리가 난다) 등 쓰다 보니 언뜻 생각나는 것만 해도 이 정도이다. 다시 생각해도 아가가 안쓰럽다. 나는 사랑스러운 아기가 혹시나 다칠까, 몸 상할까 싶어 정말 깃털 다루듯이 다루는데, 아빠라는 사람이 이럴 수 있는 건가! 괘씸한 마음마저 든다. 그리고 혹시나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영 걱정이다.


그런데 들리는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집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비슷한 것 같다. 아기에게 장난치는 아빠들. 도대체 왜들 그러는 걸까! 불안한 마음에 엄마인 내가 육아를 전담하겠다고 하고 싶지만 또 실제로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리고 육아에 있어 아빠의 역할이 중요한 시대이지 않는가. 참 난감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렇게 놀아주는 게 아기의 사회성 발달에 나쁘지 않다는 연구가 있단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마음이 좀 풀린다.


여자와 남자는 다르고, 엄마와 아빠는 다르기에 육아에서도 서로 생각이 다를 때가 있다. 하지만 두 면모 다 아기에게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방식만이 옳은 것도, 남편의 방식이 위험하거나 장난스럽기만 한 것도 아니니까. 우리의 치열한 고민으로 인해 육아에 있어 가장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기를, 그래서 축복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해줄 수 있길 바라본다.


남편, 그래도 우리 축복이 살살 다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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