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지막으로 젖 주는 날이다.
아침수유를 마지막으로 끝낼 거라, 남편에게 수유하러 갈 거라고 조용히 해달라는 암묵적인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모유수유에 대한 감도 없고, 감정도 이해할 리 없는 남편은 수유 중에 옆에 와서 뭐라 뭐라 신나게 이야기를 했다.
나에게는 한 번뿐인 마지막 모유수유인데!
이 마지막 순간을 온전히 즐기고 싶은 내 맘을 왜 모르는 걸까! 이 순간을 오롯이 느끼고 싶은 마음에 마음이 급했다. 그래서 말이 퉁명스럽게 '방에서 일단 나가주시라'고 남편에게 말했다가 괜히 투닥거렸다. 마지막 모유수유가 이렇게 끝나다니. 못내 너무 아쉽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한 번도 모유수유를 해보지 않은 남편은 이 마음을 모르는 게 당연하다.
우리 축복이가 젖을 먹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프고 속상하다. 하지만 감성에 젖은 나를 단번엔 정신 차리게 할 말이 있으니, 바로
이렇게 안 먹는데도 모유수유 고집할 거야?
그래, 우리 축복이는 밥을 안 먹는다. 안 먹어도 너-무 안 먹는다. 밥 안 먹는 걸 생각하면 단유는 반드시 해야 한다. 소아과 선생님께서는 우리 축복이의 먹는 양을 들으시더니 '이러다가 곧 영양실조에 걸릴 판'이라고 하셨다.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그래, 아쉬워도 이쯤에서 마무리해야지, 하는 시원섭서한 마음에 마지막으로 젖 먹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두기까지 했다. 그러나 축복이도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핸드폰 카메라를 잡으려고 열심히 손을 휘적거리면서 젖을 빨다가 돌연 휙 떠나 버렸다.
이렇게 마지막 수유가 끝나는 건가, 내가 아쉬워서 도망가는 축복이를 잡아다가(?) 다시 젖을 물렸다. 하지만 축복이는 조금 빨다가 이내 도망갔다. 오기가 붙었다. 이게 마지막이란 말이야, 이대로 끝낼 수 없다! 다시 잡아다가 젖 먹이는 자세를 취했지만 축복이는 안간힘을 쓰고 벗어나려고 했다.
짜식, 꽤 쿨하네
그리고 그 이후에도 하루 종일 젖을 찾지도 않았다. 내 계획은 냉장고에 붙여놓은 곰돌이 단유 달력에 X표를 치고 '곰돌이에게 쭈쭈를 줘야 한다'고, '쭈쭈는 빠빠이 하자'고. 설명할 만반의 준비를 다 했지만, 정작 축복이는 젖 달라는 기색이 전혀 없었서 준비한 이 모든 것을 할 타이밍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본업에서 준비한 수업 하듯이 나는 꾸역꾸역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했고, 축복이는 솔직히 그걸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사실은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냥 냉장고에 붙은 곰돌이 그림을 좋아하는 것 같았을 뿐이다. 이쯤 되니 모유수유를 두고 어째 아기보다 엄마가 더 질척거리는 것 같다. 이 광경을 지켜본 남편은 왜 젖을 찾지도 않는 애한테 젖 얘기를 해서 생각나게 하냐며 나를 놀렸다.
그래도 나 하고 싶은 거 다 할 거야! 마지막 모유수유 날이니까!
모유를 끊은 축복이의 변화,
이제야 '백일의 기적 같은 게 일어났다.
아기 돌보기가 백일까지는 힘들다가 백일 후에는 '백일의 기적'이 찾아오면서 슬슬 통잠도 자고 수유텀도 일정해진다고들 한다. 우리 축복이에게는 백일에도, 이백일에도, 아니 돌이 되어도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젖을 끊고 나니, 그런 기적 같은 게 찾아왔다. 확실히. 새벽에도 3~5번 깨던 축복이가 8시 30분에 자기 시작하면 새벽 5시 정도까지는 깨지 않고 잔다. 그리고 젖을 물고 자는 게 습관이었지만 그것도 고쳐졌다. 아직도 잠들기 전에 젖 달라고 울긴 하지만 그래도 젖을 빨지 않으면서 잔다. 젖물잠과 모유수유 동시에 끊은 것이다. 이런 쾌거가 있다니! 생각보다 너무 수월해서 놀랐다.
아, 물론. 이게 엄마인 나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모유수유 자체는 온전히 나의 영역이었다면, 단유는 남편의 공이 컸다.
또 다른 변화는 축복이가 잘 먹는다는 것이다. 워낙 까다롭고 예민한 아기라 다른 아기들만큼 잘 먹는 것 같진 않다. 하지만 '한입도' 안 먹던 아기가 이제 뭐라도 먹긴 하니 이제 이런저런 음식을 해줄 맛이 난다. 이게 엄마로서 얼마나 큰 기쁨인지!
나는 알아주는 커피 러버였는데, 임신과 출산, 수유 기간을 거치면서 커피는 입에도 안 대는 사람이 되었다. 막상 커피를 끊고 보니 좋은 점도 많아서, 앞으로도 커피를 마시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오늘은 마지막 모유수유 날이니까!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었다. 스타벅스 윈터스카치바닐라라떼. 이름도 거창한 시즌음료로 집에서 자축해야지. 목구멍으로 흘러들어오는 커피가 진하게 느껴졌다. 하, 이게 얼마만인가. 이게 바로 커피 향이지.
캬, 수고했다, 나 자신. 400여 일 동안 모유수유를 했다. 우리 축복이가 400일 동안 열심히 모유를 먹어준 덕이었다. 완모의 길은 힘들다고들 하는데 결국 끝까지 달려와버렸다. 산후조리원에서는 몰랐다. 모유수유, 아기한테 좋다는데 그까이꺼 아기를 위해 못할 거 뭐 있나, 하면서 호기롭게 시작했다. 하지만 내 살로 맞닥뜨린 완전모유수유는 고행길이었다. 모유성분 자체는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유수유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어려움 때문에 정말 1년 간 나의 육아난이도는 가히 '최상'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뿌듯함보다도 더 큰 건 못 미더움이다. 내 모유가 질이 좋았어야 축복이한테 좋은 영향이 갔을 텐데 그에 대한 확신이 없어 아리송하다. 식단조절을 더 했었어야 했는데, 출산 후 내 입맛이 너무 변해 인스턴트 위주, 단 음식 위주로 먹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축복이가 덜 컸나 싶어 속상한 것도 있다.
어쨌든, 우리 축복이는 더 이상 '젖 먹는 아가'가 아니다. 이제 어엿한 한 살로서 걷고 뛰는 건강한 아가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