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개월 아기 육아일기(422일 차)
한 살밖에 안 된 내 새끼가
내 말을 안 듣는다면?
오만한 말인 걸 알지만, 나는 우리 아기가 내 말을 안 듣는다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왜냐고? 그냥! 깊게 생각한 게 아니다. 막연히 '내 딸인데 내 말을 안 듣겠어?' 단순하게 생각한 거다.
많은 육아맘들이 말한다.
18개월엔 정말 18, 18 욕이 나온다고.
그만큼 아기의 자아와 고집이 세지는 시기라는 거다. 우리 아기 채채는 지금 14개월. 점점 18개월로 향해 자라 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의 막연하고 안일한 생각을 뒤집을 일이 요즘 꽤 일어난다.
기저귀 갈이대는 신생아 키우는 집에 필수템이다. 일명 '기갈대'. 아무것도 몰랐던 초산모라 기갈대가 왜 필요한지 체감하지 못했는데, 정말 허리를 구원해 주는 효자템이다. 작은 아기침대만 한 크기로, 부피가 장난이 아니게 커서 보통은 6개월 미만으로 사용하고 처분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인테리어를 포기한 자. 허리를 지켜주는 기갈대 사용을 돌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고수하고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가만히 있던 신생아 때와는 달리, 14개월 아기는 기갈대를 싫어한다. 절대 안 누우려고 하고 억지로 눕혀놔도 반대로 뒤집어버리거나, 잡고 앉아버리기 일쑤다. 물론, 소리도 지른다. 그래서 채채가 응아를 하면 나는 심호흡을 해야 한다. 한바탕 전쟁을 치를 때이니까.
그런데 오늘 남편이 채채의 응아를 치우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나랑 똑같이 기갈대에서 하는데, 채채는 울지 않았다. 뒤집지도 않았다. 앉지도 않았다. 아무런 저항이 없고 평온했다.
그때 친정 엄마가 우리 집에 오셔서 채채를 봐주던 날 하시던 말씀이 머리를 스쳤다.
아기가 응아 치워줄 때도 너무 순하게 가만히 잘 있더라.
우리 채채 너무 착해!
그때도 의아했다. 채채가 그럴 리가 없는데, 응아를 할머니가 닦아주시는 게 익숙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나라서' 말을 안 듣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우리 채채가?
진짜?
내 말을 안 듣는다고?
나는 너무 놀랐지만 애써 부정하며 이번에도 넘기려고 했다. 우리 채채가 내 말을 안 들을 리가 없어. 주양육자가 나인걸?
이제 채채가 잘 시간이 되었다. 잠들기 전 꼭 넘어야 할 있으니, 바로 양치다. 한 10개월 정도까지는 채채가 양치를 좋아했는데, 그 이후로부터는 영 싫어한다. 그래서 치약을 묻힌 칫솔을 채채에게 건네주고, 한참을 입속에서 갖고 놀게 한 다음 내가 이를 닦는 걸로 마무리한다. 그런데 이때도 채채는 소리 지르고, 도리도리 하고, 얼굴을 피하고, 칫솔을 쥐고 안 준다. 그래서 전쟁이다. 다른 아기들도 양치를 싫어한다기에 이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런데 남편이 때마침 한가해 보이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편에게 처음으로 치카 업무를 맡겨보았다.
채채는 너무나 평온하게 입을 벌리고
아빠의 칫솔질에 몸을 맡겼다.
황당 그 자체였다. 내가 채채와 치카 하는 장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남편은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고 반문했다. 이제 남편의 육아 업무가 하나 추가 되었다. 뭐 그건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하지만 채채가 내 말 보다 남편 말을 고분고분 따른다는 게 확실시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내가 뭘 잘못했는가. 고민이 시작되었다. 채채가 나를 만만하게 보는가? 한 살짜리 어린 아기도 엄마인 내가 자기를 무한정 사랑해 준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건가? 채채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은 지구상에서 나하나뿐이다. 그런데 그런 채채가 나의 말을 듣지 않는다니. '원래 말을 안 듣는 아이'로 치부해 버리면 이 일이 더 쉬운 일이 되었겠지만, 남편 말과 할머니 말은 잘 듣는다니?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말을 잘 듣는 선생님이 있다. 카리스마가 있든지, 권위가 있든지, 아이들이 좋아하든지,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유독 말을 안 듣는 선생님도 있다. 슬프지만 진실이다. 나도 초임 때는 그런 선생님이어서 굉장히 애를 먹었다. (그래도 그 아이들에게 다시없을 사랑과 정성을 쏟아서 그런지 아직도 나를 많이 기억해 주고 찾아준다. 말을 잘 듣는 것과 아이들과 잘 지내는 건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초임 티를 벗으면서 느낀 건, 무한정한 사랑도 좋지만 적당한 카리스마와 단호함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카리스마와 단호함을 조금 장착하고서야 나는 아이들과 조금은 밀당할 수 있는 교사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래서 이를 육아에 적용을 해야 하나 싶다. 내 사랑과 가르침을 채채가 온전히 받으려면 버릇없는 아이, 멋대로인 아이가 되면 안 되는 것 같다. 일단 그렇게 되면 그 후에 가르치기는 너무도 어렵다는 걸, 나는 교직에서의 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부드러움 속 단호함.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기에게 내가 보여야 할 태도인 것 같다. 평소에 내가 그렇지 않았는지 의아하긴 하다. 행동을 하기 전 더 생각해야겠다.
육아는 끝없는 자기 탐구의 길이자, 인격수양의 길.
내가 기쁨으로 가야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