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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민연금 이야기

자,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이제 우리 선택을 내리자.

by 박세환

일전 정치사회를 논하며 '응가 vs 토사물'식의 뒤틀린 양자택일이 매번 강요되는 현실을 개탄하곤 했는데, 이 끔찍한 양자택일이 다소 불가피한 영역도 존재한다. 바로 경제이다. 경제는 지극히 물리물질적이고 실질적인 영역이며, 수학적 수치가 비교적 깔끔하게 떨어지는 분야이다. 그렇기에 한정된 재원을 누구에게 어떻게 분배 할당할 것인지에 대한 제로섬적 고민이 꽤 노골적으로 강요되곤 한다.


큰 틀에서 보면 두 개의 서로 다른 방법론이 있는데

1. 하나는 필자와 같은 시뻘갱이들이 좋아하는 '사회주의적' 방법론이다. 이 방법론에서는 메마르고 죽어가는 취약자들에 대한 보살핌 책임을 사회 전체의 몫으로 강제한다.

2. 다른 하나는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시장 자유 능력 경쟁의 방법론이다. 이 방법론에서는 너가 굶어 죽건 얼어 죽건 너의 생존은 그저 지극히 너 혼자 스스로의 책임이고 너의 몫이라 사회는 여기에 개입하지 않는다. 모든 구성원들은 시장에서 내 보인 '가치'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으며, 그렇게 받은 대가가 삶을 존속하기에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면 그냥 닥치고 혼자 굶어 죽어야만 한다. 그것이 공정, 정정당당한 처사니까ㅇㅇ


경제 이념에도 수많은 가지갈래들이 있다지만 결국 본질은 이 1번과 2번 방법론을 어떤 층위에서 어떻게 배합하느냐의 문제이지 저 1, 2번과 완전히 다른 제3의 갈래 같은 건 아예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 마르크스, 애덤스미스, 케인즈, 하이에크, 전부 다 저 두 가지 방법론을 어떻게 배합하느냐의 문제 속에서 존재하는 잔가지들인 것이다.





자꾸 미시적이고 디테일한 전문용어 섞어서 복잡하게 말 할거 없이, 지금 개'악'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다는 국민연금 역시 이 딜레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노동 능력을 상실한, 가난한 노동계급 노인들의 잔여수명에 대한 책임을 누가 어떻게 질 것인가? 사회 전체가? 아니면 개인과 가족이 알아서?


당연히 박세환과 같은 시뻘갱이들은 그 생존 부양에 대한 책임을 어떤 식으로 건 사회 전체에 강제한다. 차피 필자는 한 사회가 생산해 낸 재화 서비스의 절반을 뚝 잘라서 모두 복지를 위해 투입되어야만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국민연금의 기금이 고갈되건 어쨌건 수혜자들에 대한 '약속된' 보상은 국가재정을 투입해서라도 끝없이 보장될 것이며, 국민연금이 없다 하더라도 어떤 방식의 복지를 통해서건 그들의 삶은 공동체가 책임지게 될 것이다. 어차피 자본주의 기술발전의 치하에서 개별 구성원당 재화 서비스의 생산역량은 계속해서 우상향 하지 우하향하진 않는다. 대규모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아니고서야 말이다.

(참고로 젊은 세대의 불만은, 쥐어 짜이기만 할 뿐 정작 그 자신은 혜택을 누릴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으로부터 유발된다. 때문에 이 부분도 '사회주의적으로' 약속되어야만 한다. 너희가 늙고 병들었을 때, 그것에 대한 부양 역시 국가 공동체가 어떤 식으로 건 해 줄 것이라는 걸 믿을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그게 싫다면,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식 약육강식! 적자생존! 능력! 경쟁! 을 밀어붙이면 된다. 국민연금은 기금이 고갈될 것이니 그냥 폐지한다. 취약한 노인들의 삶은 이제 각자가 알아서 책임을 져야만 할 것이다. 굶어 죽던가 얼어 죽던가 자식이 지게 지고 고려장 하던가. 하비에르 밀레이는 이런 스타일의 정부운영을 통해 대규모의 취약자들을 아사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대신 정부재정을 건전(?)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다시 말 하지만 이는 철저하게 제로섬적인 문제이며, 이것도 저것도 아닌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은 떡 같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당신도 선택을 내려야만 하는 것이다. 자, 응가냐 토사물이냐 이제 선택을 내려라.




설령 내가 내는 돈이 나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지금' 노인들에 대한 보상으로 끝난다 하더라도 사실 '그 노인들은' 우리 엄마 아빠이기도 하다. 내가 내는 국민연금으로 우리 엄마 아빠가 보상을 받는 상황이라 할 수 있는데, 사실 나는 이 편이 비교할 수 없이 더 이득이기도 하다. 지금 엄빠가 국가로부터 받고 있는 연금과 노인복지는 지금 내가 내는 쥐꼬리만 한 국민연금과 세금에 비할 바 없이 크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이 '하비에르 밀레이식으로' 소멸해 엄빠를 내가 직접 부양해야만 한다면, 내 삶은 지금 수준도 유지될 수 없을게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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