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정치를 망치는 건 정서가 아니라 어쭙잖은 이성주의 코스프레
*아니 브런치 줄 바꿈 시스템 다 망가졌네? 브런치 운영진은 이거 패치 수정 안 함? 줄 바꿈이 제멋대로 이상하게 적용된다고!
1.
정치사회 논의의장에서 어떤 대상에 대해 ‘완벽하게 이성적으로' 논할 수 있으려면, 대상에 대한 ‘완전한 인식’이 선행돼야 한다.
이를테면 '유교'라는 대상에 대해 완벽하게 이성적으로 논해보겠다면 당연히 '논어'정도는 독파하고 와야 할 것이다.
'이슬람'이라는 대상에 대해 완전하게 이성적인 평가를 내리려 한다면, 최소 꾸란정도는 완독해야 할 것이고
'페미니즘'에 대해 이성적으로 완벽한 결론을 내려주려 한다면, '우리'가 지겨울 정도로 들어왔듯 '시몬 드 보부아르/주디스 버틀러 공부'정도는 하고 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좌파경제를 '이성적으로 완벽하게' 논할 수 있으려면, 마르크스 자본론에서 케인스주의까지는 그 내용을 완전히 습득, 이해하고 있어야겠지.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정치사회 논의의장들에서 유교를, 이슬람을, 페미를, 좌파경제를 두고 치고받는 그 무수한 이들 중 '저 과정'을 철저하게 다 거치고 온 이가 몇이나 될까? 솔직히 말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그렇지 못하다. 기독교, 이슬람교, 자유주의, 사회주의, 좌파경제, 우파경제, 페미니즘, 신좌파, 등등 우리는 대부분의 대상들을 ‘이성적으로 완전히 인식한 상태'에서 '완벽하게 이성적으로’ 논하지 못한다.
2.
박사학위까지 받은 엘리트 전문가가 아닌 우리 대중 대다수는 상당 부분 비이성적 요소들에 기반하여 정치사회적 사안들을 논하게 된다.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인상비평, 특정 이미지에 대한 감성적 호불호, 정서적 반응, 감정적 잔상, 무의식적 집단심리 등. 그리고 이건 부끄러워해야 할 잘못이 아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주의란 글조차 모르는 이에게도 정치적 판단과 발언의 권리를 주는 체계이다. 정치는 전문가만의 것이 아니라, 시민권을 가진 누구에게나 허용된다. 이런 체제에서 "완벽하게 공부하지 않은 다중이 인상비평과 무의식적 정서에 기반하여 대상을 피상적으로 논하는 현상"은 오히려 불가피하고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것을 부정하면 결국 민주주의까지 부정되고, 결국 우리는 초인에 의한 엘리트독재를 긍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3.
문제는 '비이성적 호오'가 아닌 ‘이성 코스프레’에서 생긴다. 사안에 대해 솔직히 자기도 개뿔도 모르면서 “나는 너희 감성충 개돼지들 따위와 다르다.”라는, 근거 없는 '자칭 이성주의' 자부심 말이다.
불행히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자신을 “AI처럼 이성적인 사람”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이런 '자칭 칸트들'이 넘쳐난다. 이들은 "나만 정답, 너희 개돼지들은 갬성충이라서 당연히 오답"이라는 절대적 신념(?)으로 모든 의견교류를 원천 차단해 버리고서 오직 자신의 일방적인 가르침만을 강요하곤 한다. 자신은 감정으로 말하는 다수의 ‘민중’과 달리 “절대 이성적”이라 자부하는 어설픈 계몽주의자들.
하지만 전술했듯 정치사회 논의는 언제나 '정서'의 기반 위에서 이뤄진다. 그 안에서 이성은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수단이지, 정답을 강요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4.
수년 전 내 페북에 자주 출몰했던, 자신을 경제학 엘리트로 자부하던 한 페친이 있었다.
그는 능력 경쟁 약육강식의 우파경제가 왜 열등 갬성충들의 좌파경제보다 우월한지 알려주겠다며 매번 등장했지만 막상 들어보면 스스로 그토록 추구하던 자유지상주의경제와 박정희식 관치경제도 잘 구분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야말로 계몽자이고 필자와 필자의 다른 페친들을 모두 감성에 휘둘리는 미개한 좌파라 확신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는 매번 대화가 아닌 강연을 시도했고, 그 사람을 규탄(?)하는 다른 페친들의 컴플레인(?)이 빗발치자 결국 난 그를 페절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게 비단 우익우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정치는 정서의 장이다. 그건 잘못된 것도,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그저 "그 사안에 대해 나는 이렇게 '느껴진다'."라고 솔직하고 쿨하게 말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왜 그런 대중적 정서가 형성된 것인지,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심리학적 층위에서 논하면 된다.
반복해 말 하지만 진짜 문제는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 괜히 혼자 자신의 정서 감정을 부끄러이 여기고선 그 방어기제로 자신을 완벽한 이과 이성주의자라고, 완벽한 미분적분 절대정답만을 논하는 거라고 바락바락 우길 때 발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