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을 추모하며. 삶과 죽음과 아픔과 눈물과 그리고, 또 그리고..
엄마 세 자매는 각각의 개성이 뚜렷했는데, 이를테면 작은 이모는 왈가닥이었다. 자기 주관이 강하고 어딜가시건 당찬, 소위 현대적 여성상에 보다 부합할 법한 분이었다. 반면 큰 이모는 정말 조선시대 여성상 그 자체. 사람이 그렇게 착하고 고왔다. 간혹 내가 엄마 모시고 찾아뵐 때면 "어이구 우리 세환이 왔누. 이모가 해줄 게 없어서 어떡하누"하시다가도 돌아갈 때가 되면 따라 나오셔서 손에 귤 몇 점이라도 주어주시며 "우리 세환이 엄마 모시느라 고생이 많다. 이거라도 가즈가 무래이"하시곤 했는데, 그 말투와 손길에는 늘 설명할 수 없는 온기가 있었다.
긴 투병생활이 힘겨워 삶을 원망하는 말씀을 하시던 엄마도, 나름의 이유로 삶의 고단함을 한탄하시던 아빠도, 모두 큰 이모의 삶 이야기가 나올 때면 짐짓 숙연해지곤 했는데 이는 나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학교폭력, 사회부적응, 히키코모리 등등으로 나름 한 불쌍(?) 한다고 자부하던 나도(내 글들이 종종 가시 돋아 있는 건, 이 세상으로부터 피해를 당했다는 의식이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래도 그런 측면이 좀 있다.) 큰 이모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때만큼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모진 채찍질 속에 자기 몸집모다 3배는 될 법한 통나무 십자가를 매고서 말없이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무고한 죄인의 모습을 곁에서 실제로 지켜보는 느낌. 그 앞에서 만큼은 감히 누구도 자신의 어쭙잖은 아픔들을 전시하며 불행을 과시할 엄두가 안나 그저 고개를 숙인 채로 숙연함에 빠저 들었던 것이다.
세상 사람들 염치없고 악랄해 남의 돈 빼먹을 생각밖에 안 한다고, 자기돈 자기가 챙겨야 한다 말씀하시던 아빠는, 유독 큰 이모집에 대해서 만큼은 '그쪽에서 먼저 손 벌리지 않았음에도' 우리가 조금 힘들어서라도 그분들 좀 도와줘야 하지 않겠냐 하셨다고 한다.
작년 봄에 적었던 아래 글에는 빼어난 외모에 공부도 잘했던, 그런 팔방미인이어서 주님이 일찍 데리고 간 사촌형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 사촌형의 어머니가 바로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그 큰 이모님이시다. 큰 이모는, 그 고난한 삶 골고다 언덕의 정점에서 희망이었던 아들자식마저 당신의 심장에 묻어야 했다.
그리고 올해 2025년. 큰 이모는 많이 아팠다. 이미 연로하셨고,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몸은 차도가 없었다. 그렇게 이틀 전 새벽. 짤방의 글을 적은 지 1년 9개월 뒤. 결국 큰 이모는 먼저 떠나보냈던 당신의 자식과 재회하기 위한 긴 여정을 떠나셨다. 아픔과 눈물과 상처와 고난이 뒤섞인 아름다운 이야기 한 편이 이렇게 엔딩을 맞이하게 된 것이고, 남겨진 이들은 거기에 각자의 이야기를 이어가게 될 것이다. 떠나보낸 이들과 다시 상봉하는 그날까지.
... 당신께서 남겨진 형제자매들을 보살피심에
그들을 당신의 따뜻한 품으로 안아주소서
그들이 설령 빈곤과 아픔과 추위와 그리고 사무치는 외로움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에도
당신의 따스한 온기를 떠올릴 수 있게 하소서.
부디 너무 아파하지 않게 하시고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당신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하소서.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 요한계시록 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