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분리된)당신 자신과 결혼해 살아갈 수 있습니까

완전히 돌아버리기까지 맨정신 버티기 며칠 가능?

by 박세환

제목은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접한 인상 깊은 게시물의 질문이다. 그 아래는 가능가능쌉가능이라는 주옥같은 댓글들로 도배되고 있었다. "세상에서 나와 가잘 잘 맞을 수 있는 이는 나 하나뿐"이라는, 지극히 현대 젊은 세대적 감각은 이렇게 또 한 번 존재를 드러냈다. 그걸 보면서 의문이 들었지.


'정말?'


사실 나 역시 그런 상상을 안 해본 건 아니나 깊게 생각할수록 그건 기쁨보단 또 다른 종류의 절망일 거라는 판단이 더욱 앞서나와 그냥 심중 깊숙이 추슬러둔 망상이었다. 하지만 같은 질문 아래 이렇게 많은 이들이 남녀 할 거 없이 목청 높여 가능가능씹가능 합창을 부르는 걸 보며 그것이 정녕 자신감일지, 아니면 객관적 판단력의 결핍에서 비롯된 어리석은 치기인지가 궁금해졌던 것이다.




분명히 '같은 나' 임에도 내가 찍은 내 모습과 친구가 찍어준 내 모습은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달라 보인다. 당연하다. 내가 나를 찍을 땐 눈코입을 전천후로 비틀고 뒤틀어대며 얼굴의 흉한 약점들을 감추고 최대한 미화된 장면으로 컷을 잡아내는데(심지어 거기다가 뽀샵까지;;) 친구가 찍어줄 땐 그딴 거 얄짤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통 너 나 우리는 친구가 찍어준 'X 같은 이상한 출처불명의 오징어'는 금방 지워버리고 내가 창조해 낸, 나라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판타지 캐릭터를 '나'라고 악착같이 우겨대며 기어코 그 사진으로 SNS를 채우게 된다. 그리고 그 개인적 판타지로 떡칠된 비현실적인 가상 캐릭터를 '진짜 나'일 것이라 굳게 믿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둘 중 어느 쪽이 '진짜 진실'에 가까울까?





조물주는 참 신기하게도 (거울과 같은 별도의 도구가 없이는) 절대 스스로를 바라볼 수 없도록 인간을 만들어냈다. 때문에 남은 알아도 자기 자신을 알기는 참 어려운 것이다. 그 덕택에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대부분 실체가 없는 상상으로 디자인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모종의 계기로 인해 그 환상이, 판타지가 깨어질 때 우리는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ex : 친구가 찍어준 내 사진).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친구의 유령이 스크루지를 끌고 다니며 악착같이 "진짜 자신의 모습"을 직면시키는 장면은 '그 충격'을 묘사해 낸 명장면 중의 명장면이다.


스크루지 : 그..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 저건 내가 아니야! 보고 싶지 않아! 알고 싶지 않아! 그만! 그만해 제발...

친구의 유령 : 아니, 저것이 바로 너야. 너의 실체이지! 그리고 너는 너 자신의 본모습을 있는 있는 그대로 직면해야만 해!


내가 분리되어 비로소 자신을 타자의 시선이라는 끔찍하게 객관적인 장면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되는 순간, 그동안 애써 진실로부터 고개를 돌리며 쌓아왔던 자신에 대한 인식들이 사실은 실체가 없는 거짓된 판타지에 불과했음이 드러나는 순간, 그렇게 판타지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며 그간 '내가 나라서' 그냥 손쉽게 이해해 주고 용서해 주며 속 편하게 살아왔던 그 모든 순간들을 비로소 외부의 객관적 실체로 마주하게 되었을 때..

그때 우리가 느끼게 될 감상은 과연 희열일까 절망일까?


(여기서 한마디 덧붙이자면 슈레기 Dog 같은 모습을 보더라도 그게 쌩판 남이면 차라리 그러려니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또 '나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그냥 속 편하게 넘어가기는 몇 곱절 더 힘들어진다. 스크루지가 '자신의 실재 모습'을 직면하고서 멘털이 아작 나 가루가 되다 못해 액체상태로 곱게 빻아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질문을 해 보고자 한다. 당신은 '분리된' 당신 자신과 결혼해 살게 되었을 때,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멘털붕괴로 정신병원에 실려가지 않고서 일주일을 맨 정신으로 버텨낼 자신이 있는가? 만약 여기까지 와서도 입에서 '가능'이 나올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이 어쩌면 예수님 부처님에 꽤 근접한 상태가 아닐까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것이다.


+조물주가 '스스로를 바라볼 수 없도록' 우리를 디자인했던 건 우리의 멘털유지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삶에 비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도, 가끔씩이나마 '나'라는 존재에 대해 의심해 볼 줄 알기 때문일 것이다.(그때 느껴지는 감정이 바로 부끄러움. 수치심이다.) 자아가 없는 대다수의 동물들은 그러한 성찰이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아무 데서나 속 편하게 먹고 싸제끼며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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